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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 도시와 촌락] 통제된 구역 향·부곡·소鄕·部曲·所

by 롱카이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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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 어려운 땅을 강제로 개간한 향鄕과 부곡部曲

황무지를 개척해 농사를 짓게 하기 위해 향과 부곡을 만들었다
황무지를 개척해 농사를 짓게 하기 위해 향과 부곡을 만들었다

고려高麗 땅 중에서 살기 좋은 땅이 있는가 하면 좁고 척박해 살기 어려운 땅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땅을 놀리자니 세금을 걷어낼 기회를 날리는 아까운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땅에 사람을 강제로 밀어넣고 어떻게든 개간시켜 세금을 거두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향鄕과 부곡部曲입니다. 향鄕과 부곡部曲은 신라新羅 때 등장한 행정구역으로 여전히 척박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많자 이를 개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었습니다.

해안 방비를 위해 해안가와 섬을 향과 부곡으로 지정해 사람을 보냈다
해안 방비를 위해 해안가와 섬을 향과 부곡으로 지정해 사람을 보냈다

이런 황무지는 보통 늪지대나 척박한 돌산 지역도 있지만, 해안가가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염분이 가득해 사람들이 잘 살지 않아 황량한 해안가는 왜구 등 해적의 본거지로 활용되었기에 신라新羅 때 해안가 일대를 향鄕과 부곡部曲으로 만들어 강제로 사람을 밀어넣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땅에는 누구도 가지 않으려고 저항할 것이 뻔했기에 신라新羅는 삼한일통三韓一通 과정에서 흡수한 백제 사람과 고구려 사람을 이 땅에 밀어넣었습니다. 고려高麗 때는 왕건에게 저항한 호족이나 궁예를 여전히 따르던 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향鄕과 부곡部曲으로 보내 처벌도 할 겸 토지를 늘려갔습니다.

향과 부곡은 정치범수용소처럼 감시 하에 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향과 부곡은 정치범수용소처럼 감시 하에 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척박한 땅에 끌려간 사람들은 저항을 했을 겁니다. 중앙도 이를 잘 알아서 향鄕과 부곡部曲 주변에 군사를 배치해 이들이 저항하거나 탈주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또한 이 쪽 주민은 역적이기에 다른 곳으로 운좋게 도망가도 들키면 바로 잡혀 되돌려지거나 처형당했습니다. 때문에 끌려간 주민들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살기 위한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토목공사를 하고 농경지로 개간하는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려高麗는 척박한 땅을 사람이 사는 땅으로 만들어갔습니다.

 

 

 

  • 높은 세금을 납부해야 했던 향鄕과 부곡部曲

향과 부곡은 황실에 납부할 모시와 삼베 등을 키워 옷을 만든 뒤 공납했다
향과 부곡은 황실에 납부할 모시와 삼베 등을 키워 옷을 만든 뒤 공납했다

고려高麗 조정은 향鄕과 부곡部曲을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강제로 하는 수용소이자 역적을 가두는 감옥으로 활용하며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사용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내는 세금인 쌀과 보리, 기장, 조는 기본이었고 거기에 또다른 특산물도 같이 바치게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는 황실에서 사용할 옷감이었습니다. 모시, 삼베 그리고 비단을 바치게 했습니다. 그럼 향과 부곡部曲에서는 식물을 심고 누에나방을 기른 뒤 이걸로 옷감을 짜 만들어 세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옷을 물들이고 불화를 그리며 건축물을 장식할 원료를 특산물로 바쳤다
옷을 물들이고 불화를 그리며 건축물을 장식할 원료를 특산물로 바쳤다

그것으로는 부족해 또다른 공물도 요구했는데 옷과 함께하는 원료를 요구했습니다. 황실에서 입을 옷을 물들이고 황족이 화장을 하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찰이 불화를 그리는 등 다양한 곳에 사용할 원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향鄕과 부곡部曲 사람들은 곡물이나 말린 꽃, 과일을 빻아 염료를 만들고 이를 바쳤습니다. 쌀과 옷감 뿐만 아니라 각종 조세가 추가되니 살기 어려웠지요.

 

 

 

  • 기술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둔 소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인 이유는 고대 그리스 때 대장장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서였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인 이유는 고대 그리스 때 대장장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서였다는 설이 있다

특정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전문직이었습니다. 특히 국가 간 교류로 어디에서나 자원을 얻는 지금과 달리 국가 안에서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해야 한 옛날에는 더더욱 귀했지요. 때문에 국가는 장인들을 관리하고 대접했습니다. 문제는 대접을 해도 장인이 싫증이 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릴 수 있었고, 국가 입장에서 큰 손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특정 구역 안에 밀어넣고 평생 거기서 살게 속박했는데 그걸 소所라고 부릅니다. 여담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대장장이 등 기술자들이 다른 도시로 가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렸는데, 이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인 설정에 영향을 미쳤을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옛날에는 어떻게든 기술자를 붙잡아야 했지요.

소금은 국가에서 독점하는 자원이었기에 염소를 둬 소금을 생산했다
소금은 국가에서 독점하는 자원이었기에 염소를 둬 소금을 생산했다

그래서 철이나 금 등 각종 광산을 캐는 광산, 나전칠기를 만들 조개가 가득한 해안, 소금을 만들 염전이 있는 갯벌 등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소所가 세워졌습니다. 특히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갯벌은 절대 대장원大莊園을 거느린 귀족에게도 주지 않았습니다. 소금은 오직 황제만이 관리하는 자원으로 해안 갯벌 지대에 여러 염소鹽所를 세워 소금을 국가에서 생산하고 황제 직속 관리들이 철저하게 통제했습니다. 소금을 생산하는 기술자 역시 출생부터 이동, 사망까지 국가에서 전부 기록하고 관리했지요.

장인이 모인 소에서 각종 공예품을 생산했다
장인이 모인 소에서 각종 공예품을 생산했다

그 외에도 청자를 만드는 소所, 금속 공예를 담당하는 소所, 나전칠기나 각종 상자를 만드는 소所, 철을 다루며 농기구와 병기를 만드는 소所 등 수많은 목적을 가진 소所를 국가에서 운영했습니다. 고려高麗의 공업은 소所에 모여 산 장인들을 굴리며 운영했지요. 그리고 장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군대를 파견해 감시하고 대를 이어 공업에 종사하게 했습니다. 허나 너무 가혹하게 굴리면 파업을 하거나 봉기를 해 국가적 손해를 입힐 것이 분명했기에 세금을 면제하거나 훌륭한 공예품을 만드는 소所에는 식량과 옷감을 하사하는 등 유화책도 제공했습니다.

 

 

 

  • 특산물을 바쳐야 하는 소所

어소에서는 바다 물고기를 잡아 말려 진상해야 했다
어소에서는 바다 물고기를 잡아 말려 진상해야 했다

허나 소所에는 장인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소所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나는 특산품을 바치는 소所도 있었습니다. 황실에서 먹고 즐길 물고기나 고기, 차와 과일을 바치는 소所가 그 지역이었지요. 어소漁所는 강가에 잡히는 송어, 쏘가리, 메기 등 큰 물고기 뿐만 아니라 거친 바다에 나가 명태, 숭어, 조기, 새우, 전복, 굴 등을 잡아 진상해야 했습니다.

유자나 밤 등을 진상한 소
유자나 밤 등을 진상한 소

육지 산간에 속한 소所는 과소果所로 분류되어 과일을 특산품으로 진상했습니다. 밤과 대추, 배, 유자를 바쳤는데 그 중 유자를 으뜸으로 쳤다고 합니다. 능금(야생 사과)이나 개복숭아는 달지 않아 특산품 취급은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여튼 과소果所는 황실이 요구한 대규모 과일을 바치기 위해 대규모 과수원을 지어 과일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주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남해안 일대에 크고 맛이 좋은 과일이 많이 자라 그 곳에 과소果所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찻잎을 생산하고 떡차를 만들어야 했던 다소

그 외에도 불교 사회라 차茶 수요가 많았기에 떡차를 생산하는 다소茶所도 존재했습니다. 이도 비슷하게 따뜻한 남해 바람이 찬 산 공기와 만나 습한 전라남도 지리산 일대에 다소茶所를 설치해 수요가 많은 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공납으로 받았습니다. 지금의 하동, 진주, 화순, 장흥 등 지리산 기슭에 섬진강이 흐르는 곳에 다소茶所가 밀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먹거리라도 되는 특산품을 생산하는 다른 소所와 달리 차茶는 생존을 위한 영양가가 없는 순수 기호품이어서 주민들은 차茶를 생산하고도 남는 것이 없어 소所 중 삶이 가장 고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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