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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衣食住 : 주거 가옥] 저택의 실내 전돌을 깐 바닥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고려高麗 귀족지금 우리는 좌식坐式 생활에 익숙합니다. 21세기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의자 위에 앉아 책상 위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등 입식立式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바닥에 온돌 보일러가 있고 집 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걸 무례로 생각하고 있지요. 이는 여전히 좌식坐式 중심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고려高麗, 그리고 소빙하기 전 조선朝鮮까지만 해도 잘 사는 상류층은 입식立式 생활을 고수했습니다. 지금의 중국, 월남, 유럽, 미국처럼 집 안에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지요.이것도 중화 문화의 영향인가 싶지만, 그건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도 본래 입식立式 생활을 하던 민족입니다. 고구려高句麗.. 2026. 7. 15.
[의식주衣食住 :주거 가옥] 저택의 구조와 공간 구성 소실된 당唐과 송宋의 저택참 비참하게도 고려高麗의 저택 중 현존하는 저택은 없습니다. 그러면 보통은 해외 사례로 고려高麗 저택의 모습을 역추적하지요. 이 해외 사례로 딱 좋은 것이 선진 문화를 개발하고 전파한 원조국, 즉 중화의 사례입니다. 문제는 중화에도 고려高麗 귀족이 따라했을 문화 원형이 사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권세가라지만 결국은 황실이 아닌 개인일 뿐인 귀족의 집의 경우는 더더욱 심하지요. 고려高麗가 참고했을 당唐과 송宋의 저택은 모두 중화에 불어닥친 거대한 전란으로 싸그리 사라지고, 지금은 명明과 청淸의 저택만이 남아있습니다.천하질서를 확립하고 세계적인 선진국 지위를 유지한 당唐은 가장 화려한 문화를 이룩하고 주변국에 성공적으로 전파했으나, 정작 본국은 안록산의 난과 황소의 난 등 대규모.. 2026. 7. 14.
[의식주衣食住 :주거 가옥] 크고 화려한 귀족의 저택 고려 저택을 묘사한 기록과 그림냉정히 말해 지금은 고려高麗 때 귀족들이 지은 저택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로 알기 어렵습니다. 잦은 전쟁으로 다 불타버렸기 때문이죠. 특히 홍건적과 왜구가 판을 친 고려高麗 말이면 귀족이고 뭐고 전란에 집을 잃고 떠돌아다녔습니다. 이어 등장한 조선朝鮮이면 검소를 강조하며 저택을 다 철거했고요. 그래서 솔찍히 말하자면 참고할 만한 현존하는 저택 따윈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다양한 기록과 그림이 있지요.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황제는 집의 크기를 제한하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황제 아래의 신분은 집이 50칸을 넘지 못하도록 법을 내렸는데, 귀족들은 이를 대놓고 무시했다고 고려사高麗史에 떡하니 나옵니다. 고려사高麗史 이자겸 편에서는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려 이자겸의 저택을 수리해주고 .. 2026. 7. 13.
[의식주衣食住 : 주거 가옥] 백정들의 집 고려도경高麗圖經이 남긴 고려高麗의 현실왕성이 비록 크기는 하나, 자갈땅이고 산등성이여서 땅이 평탄하고 넓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거주하는 형세가 고르지 못하여 벌집과 개미 구멍 같다. 풀을 베어다 지붕을 덮어 겨우 비바람을 막는데, 집의 크기는 서까래를 양쪽으로 잇대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부유한 집은 다소 기와를 덮었으나, 겨우 열에 한두 집뿐이다. [고려도경 제3권 성읍조 민가]송宋의 사신 서긍은 고려高麗의 수도 개경開京에서 황궁으로 가는 길에 옆 모습을 보고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 기록은 무려 황궁의 정문인 승평문昇平門으로 가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며 남긴 글입니다. 즉, 황궁 바로 옆의 풍경이지요. 고려高麗의 핵심지인 황궁 근처인데도 기록에 따르면 제대로 된 집이 아닌 막 지은 집이었다는 .. 2026. 7. 10.
[의식주衣食住 : 주거 가옥] 우리 상식과 많이 다른 고려 가옥 신분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도구, 주거 환경아무리 귀한 옷감과 장신구로 온 몸을 치장하고 남들이 평생 보지도 못하는 진귀한 것들을 소유하고 즐길 수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신분과 부를 가장 확실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집, 더 나아가 주거 환경입니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냉혹한 진리이죠. 누구는 간단한 청소나 쓰레기 버리는 일도 집사들이 대신 해주는 시그니엘에서 안락하게 여유를 즐기고, 누구는 물도 나오지 않아 공동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용변을 처리하며 새벽부터 밤까지 혹사시킨 몸을 간당간당한 판자집에 뉘어야 합니다.이처럼 주거 환경은 빈부격차와 신분격차를 심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반도에서 이 격차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고려高麗였지요. 화려함을 강조하는 불교 문화가 귀족 문.. 2026. 7. 9.
[의식주衣食住 : 음식과 식탁] 몽골이 전한 육식 문화 고기로 평생을 먹고 산 몽골이 전한 육식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억세고 작은 풀만 나 있는 몽골 초원은 도저히 채식을 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이런 곳에 사는 몽골 사람들은 채식은 포기하고 양을 방목한 뒤 양을 도축해 양고기와 피를 먹으며 영양을 보충했지요. 특히 피와 간, 내장은 살코기에서 얻을 수 없는 비타민과 무기질의 저장고여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히 먹었으며 단백질은 고기로 보충했습니다. 덕분에 오히려 육식만 하는 몽골인이 채식 위주 식사를 하는 정주민보다 영양 불균형이 심하지 않아 건강했지요.이렇게 균형잡힌 영양을 바탕으로 강한 근력을 가진 몽골인은 어릴 때부터 익힌 기마 궁술을 발휘해 세계를 집어삼켰지요. 그리고 폐허가 된 터전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몽골 문화를 전수했습니다. 특.. 202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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