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693 [종교 사회宗敎司會 : 불교와 사찰] 승려들의 일상 출가로 시작하는 승려僧侶의 삶다른 불교佛敎 사회와 마찬가지로 고려高麗 때 승려僧侶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집에서 출가해 절로 들어가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불교佛敎 귀의를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청소년기 이상은 뜻을 품고 출가를 했으며, 전란이나 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 아기들은 승려僧侶나 신도가 절에 데리고 가 그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동자승으로 자라게 했습니다.이 때 절에서는 출가의 뜻을 밝힌 중생이나 어린 아이를 받아 먼저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작은 칼로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머리 위에 있는 머리카락은 번뇌를 상징하며 사회에서 사람의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잘라냄으로써 번뇌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사회에서 어떤 존재였던 간에 절에.. 2026. 9. 3. [종교 사회宗敎司會 : 불교와 사찰] 승려들이 입은 의복 가장 낮은 위치에서 고통을 함께 하는 승려僧侶의 의복왕자로 태어났지만 세상의 고통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고통의 본질을 깊게 탐구한 고타마 싯다르타는 화려한 궁궐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곳에서 수행했습니다. 이 때 그가 선택한 곳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숲속으로 야생동물들이 뜯어먹으라고 버려둔 시체들 주변에서 고행했습니다. 그는 시체를 감싼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6년 간 먹지 않으며 극단적인 고행을 지속했습니다. 굳이 시체가 입은 옷을 선택한 것은 누구나 죽어 사라진다는 무상無常의 개념을 이해하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으며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자비와 사랑을 배푸는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초기에 그는 시체의 물집이 나와 얼룩진 분소의糞掃衣에 진흙을 발라 탁한 색으로 만들었지요.이 분소의糞.. 2026. 9. 2. [종교 사회宗敎司會 : 불교와 사찰] 고려의 불교 교파와 통합운동 교종敎宗이 태동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마우리아 제국 이후 인도 전역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불교佛敎 가르침이 전해졌습니다. 이 때는 승려들이 직접 가르침을 전하러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며 설법으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인도 북부에서 시작된 불교佛敎는 승려의 발자취를 따라 아프가니스탄, 이란, 그리스, 스리랑카 등으로 전해졌고 일부는 돈황敦煌(현대 중국어: 둔황敦煌)이 있는 타림 분지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비단길의 거점 도시였던 돈황敦煌을 방문한 중국인을 통해 중국으로 불교佛敎가 전해졌지요.중국에 불교佛敎가 전해진 시기는 난세인 위진남북조 시대로 한창 도교道敎가 발달한 시기였습니다. 이 때는 일부 승려가 설법으로 불교佛敎를 전하거나 중국인에게 낯선 산스크리트어로 적힌 경전만이 전해졌습.. 2026. 9. 1. [종교 사회宗敎司會 : 불교와 사찰] 정부 대신 사회를 책임진 불교 고통을 먹고 자라 연꽃을 피운 불교佛敎수많은 왕조가 난립한 고대 인도에서 한 왕국의 왕자는 세상의 고통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없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고통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세상의 순리를 설법하니, 이것이 바로 불교佛敎였습니다. 석가모니는 세상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며 고통 뿐만 아니라 기쁨 같은 모든 감정은 그저 한순간의 동요일 뿐이니 마음을 고요히 내려놓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고통에 집중한 불교佛敎는 세상에 큰 고통이 번질 때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고대 마우리아 제국𑀚𑀁𑀩𑀼𑀤𑀻𑀧의 아소카 대왕은 잔혹하고 거침없는 성격에 야망도 커 인도 아대.. 2026. 8. 31. [의식주衣食住 : 화폐와 유통] 특별편: 상업이 천시받은 이유와 자본주의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천시받은 상업商業우리는 고려高麗나 조선朝鮮이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따라 상업商業을 천시해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상업을 지금의 주식회사들이 하는 제조업과 무역업, 혹은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로 보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인데, 저 당시에 상업商業은 무역업이나 장사보다는 유통업에 가까웠습니다. 왜냐면 공工이 제조와 장사 모두 했거든요. 대장장이나 도자기 장인 등 물건을 생산하는 공인工人들은 자기만의 작업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길가를 바라보는 방향에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판매업까지 겸업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인工人이 직접 땀을 흘려 만든 물건을 직접 판매하는 행위는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오히려 공인이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 것이기에 믿고 구매했습니다.반면에 .. 2026. 8. 14. [의식주衣食住 : 화폐와 유통] 기축 통화의 몰락이 불러온 파장 끝없는 약탈로 돌아간 몽골제국 경제척박한 몽골 초원의 전사들에게 부유한 정주 민족의 도시는 약탈해 팔아먹을 물자가 가득한 보물 창고였습니다. 예로부터 몽골 초원에 살던 유목민은 여름에는 양 때를 방목해 양젖과 고기를 먹으며 하루를 보내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는 한 도시를 약탈해 얻은 보물을 다른 도시에 팔아 식량과 의복 등을 구입해왔습니다. 그래서 매 해 큰 겨울이 찾아오기 전 도시 단위로 약탈하고 초원으로 유유히 사라졌지요. 한漢이 상대해야 했던 흉노부터 당唐을 위협한 돌궐, 송宋에게 치욕을 준 거란 등 몽골 초원에 살던 유목민들은 모두 동일한 수법을 수행했습니다.이렇듯 날이 추워지기 전에 도시를 약탈하는 것은 이전부터 유목민의 특징이었는데 칭기즈칸 휘하의 몽골군은 그 규모가 압도적으로 거대해 그만큼.. 2026. 8. 13. 이전 1 2 3 4 ··· 11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