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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衣食住 : 화폐와 유통] 잉여 생산물과 상업 고려高麗의 잉여 생산물송宋이 압도적인 농업 생산력으로 부강해지는 동안 고려高麗는 새로운 쌀 품종이 도입되지 않아 거름을 주는 시비법으로 농업 생산력을 끌어올렸습니다. 덕분에 신라新羅 때보다 식량 생산량이 2배에서 3배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문제는 순수 쌀 생산량이 2-3배 증가한 것이 아닌 밭에서 키운 조나 기장, 보리 등 잡곡을 포함해서 상승한 폭이어서 가치가 가장 높았던 쌀 생산량은 매우 높은 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백정들은 곡물 농사 뿐만 아니라 각종 다양한 부업으로 추가 수익을 노렸습니다. 가치가 높은 부업은 배추나 무 등 채소나 돼지 등 동물을 키운 뒤 이를 시전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이건 토지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백정들은 자기 소유의 토지를 보유하지 않.. 2026. 8. 11.
[의식주衣食住 : 화폐와 유통] 번성한 송宋과 화폐의 등장 강남江南 개발과 대월大越에서 수입한 쌀 품종과 폭발한 생산력장강長江(현대 중국어: 창장长江)은 히말라야 고원에서 시작해 황해로 유유히 흐르는 큰 강으로 압도적인 수자원과 밀려오는 비옥한 토양으로 가득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비옥한 만큼 다양한 야생 식물들이 터전으로 노리는 곳이었고, 때문에 장강長江이 흐르는 강남江南 (현대 중국어: 장난江南) 일대는 코뿔소와 남중국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거대한 밀림지대였습니다. 그리고 한漢 때까지만 해도 야생인 남만南滿의 땅으로 여겨졌지요.하지만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손권이 통치한 것으로 유명한 오吳를 시작으로 여러 중화왕조가 강남江南의 가치를 알아보고 오랜 세월에 걸쳐 밀림을 하나씩 밀어내며 인류 문명의 터전으로 개발했습니다. 이후 수隨와 당唐도 강남江南 개발을 국가사업으.. 2026. 8. 10.
[의식주衣食住 : 농업과 경제] 재산 상속의 딜레마 모든 자녀에게 동등하게 재산이 상속된 고려高麗 사회고려高麗의 법과 사회적 풍습에 따르면 자녀에게 재산이 균등하게 상속되었습니다. 장자에게만 물려주는 형태가 아닌 모든 형제자매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줘야 했습니다. 또한 자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동등하게 재산을 받았지요. 고려高麗 때에는 농사를 지을 토지가 곧 재산이었기에 논을 자녀 수만큼 나눠 분배했습니다. 이는 황실과 귀족 뿐만 아니라 백정은 물론 노비와 천민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규칙이었습니다.그리고 재산을 모두가 동등하게 받기에 자녀로써의 의무도 다함께 졌습니다. 부모와 선조를 모시는 제사祭司는 첫째부터 막내까지 돌아가며 지냈지요. 물론 고려高麗 당시의 제사祭司는 유학에서 하는 조상 위패位牌를 모시는 제사祭司가 아닌 부처님께 선조와 .. 2026. 8. 7.
[의식주衣食住 : 농업과 경제] 조세와 수취 국가 운영을 위한 세금과 축적된 조세 노하우우리가 아는 국가를 정의하는 요소 중 하나는 세금으로 돈을 걷어 운영하는 거대한 조직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본격적인 출발을 조세 제도의 등장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요. 화폐가 발달한 근대 시기 전 한자문화권에서는 쌀을 중심으로 세금을 바쳤습니다. 가장 많이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먹기에도 좋은 곡물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수요가 있었기에 봉급으로 가장 좋은 것이 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래서 고대 시대에는 세금을 무조건 많이 거두어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때문에 세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백정들이 높은 세금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모여 봉기하며 조세창을 불태우는 등 저항을 하며 결과적으로 손실을 봤습니다. 한국사에서.. 2026. 8. 6.
[의식주衣食住 : 농업과 경제] 농기구와 농업의 발전으로 증가한 생산력 농기구와 농업 기술의 발전신라新羅 때는 철제 농기구가 비싸 대부분은 돌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삼한일통三韓一通 이후 평화기가 찾아오며 철기가 갑옷과 병기가 아닌 농기구로 제조되며 빠르게 철제 농기구가 도입되어갔지요. 이것이 전국에 도입되어 기본 농기구로 확립된 것은 고려高麗 때입니다. 철제 농기구는 석제 농기구보다 더 단단하고 튼튼해 땅을 더 깊이 갈아엎으며 비옥한 토양을 표면에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또한 쟁기의 보습이 철제로 바뀌어 땅을 더 깊이 파낼 수 있었으며 볏이 추가되어 갈아낸 땅을 옆으로 밀어내 고랑을 깊게 팔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깊은 땅에 잠든 영양분 가득한 땅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 수 있었지요. 지금은 농사의 표준인 깊이갈이가 고려高麗 때부터 가능해진 .. 2026. 8. 5.
[의식주衣食住 : 도시와 촌락] 통제된 구역 향·부곡·소鄕·部曲·所 살기 어려운 땅을 강제로 개간한 향鄕과 부곡部曲고려高麗 땅 중에서 살기 좋은 땅이 있는가 하면 좁고 척박해 살기 어려운 땅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땅을 놀리자니 세금을 걷어낼 기회를 날리는 아까운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땅에 사람을 강제로 밀어넣고 어떻게든 개간시켜 세금을 거두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향鄕과 부곡部曲입니다. 향鄕과 부곡部曲은 신라新羅 때 등장한 행정구역으로 여전히 척박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많자 이를 개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었습니다.이런 황무지는 보통 늪지대나 척박한 돌산 지역도 있지만, 해안가가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염분이 가득해 사람들이 잘 살지 않아 황량한 해안가는 왜구 등 해적의 본거지로 활용되었기에 신라新羅 때 해안가 일대를 향..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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