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저택을 묘사한 기록과 그림

냉정히 말해 지금은 고려高麗 때 귀족들이 지은 저택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로 알기 어렵습니다. 잦은 전쟁으로 다 불타버렸기 때문이죠. 특히 홍건적과 왜구가 판을 친 고려高麗 말이면 귀족이고 뭐고 전란에 집을 잃고 떠돌아다녔습니다. 이어 등장한 조선朝鮮이면 검소를 강조하며 저택을 다 철거했고요. 그래서 솔찍히 말하자면 참고할 만한 현존하는 저택 따윈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다양한 기록과 그림이 있지요.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황제는 집의 크기를 제한하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황제 아래의 신분은 집이 50칸을 넘지 못하도록 법을 내렸는데, 귀족들은 이를 대놓고 무시했다고 고려사高麗史에 떡하니 나옵니다. 고려사高麗史 이자겸 편에서는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려 이자겸의 저택을 수리해주고 그의 아들들은 주변 민가를 허물어 내쫒고는 저택들을 연결해 더 거대한 저택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신정권의 최씨 가문은 정문에 십자각을 세워 사병이 정문을 지키고 민가 100채를 허물고 격구장을 만들어 즐겼다는 기록이 있지요.

무신정권기 당시 환관의 집을 묘사한 기록도 장난 아닙니다. 회랑의 칸 수가 200여 칸이 되고, 큰 누각을 세워 벽에 화려한 금칠을 하고 기둥에 붉은 주칠을 하니 궁궐과 같았다라는 기록마저 나옵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고려 귀족들은 먹는 것은 검소하게 먹지만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데 전념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위에 보여준 불화만 봐도 저택이 얼마나 크고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 남한에서 발견된 고려高麗 저택

하지만 역시 가장 확실한 건 유적입니다. 귀족의 저택 터가 발굴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다행히 남한 땅에도 다양한 고려高麗 귀족의 저택이 나오고 기록과 교차검증해서 맞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대전 유성구 상대동에서 2개의 고려 저택 터가 발견되었습니다. 두 곳 모두 축구장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진 대규모 터이죠. 학자들은 고려 중기의 지방에서 유력한 귀족의 저택이거나, 국가 관청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터입니다.

서울에서도 고려高麗 저택이 발견되었습니다. 종로구 신영동에서 신축 공사를 하던 중 고려高麗 저택 터가 발견되어 조사하니 고려 중기에 한 무사가 살던 저택임이 밝혀졌습니다. 남한 땅에서 발견된 저택 크기는 하나같이 거대했습니다. 이걸 보면 북한 땅에 잠들어있는 고려高麗 대저택 터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네요.

저택은 아니지만 저택의 모습과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혜음원惠蔭院도 파주시에 있습니다. 혜음원惠蔭院은 개경開京(현 개성시)에서 남경南京(현 서울시)로 이동하는 관리나 상인들을 위해 황실의 후원으로 건립된 숙박시설입니다. 황실에서 관리하는 호텔이지요. 황제의 권위를 걸고 운영하는 시설이니 웬만한 저택 부럽지 않은 크고 화려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택 유적지에서 기와나 도자기, 각종 전각 장식들이 나오는데 이를 조합하면 녹색 빛이 나는 기와인 녹유와, 파란 색상인 청유와, 검은 기와 등 다양한 색상의 기와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금동이나 은, 순수한 금, 구리 장식 등 각종 화려한 금속 장식으로 건물을 꾸몄다는 사실을 기록과 교차검증할 수 있지요. 이처럼 귀족은 한 집 안에 다양한 전각과 행랑, 별채를 가진 크고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 복층 구조인 귀족들의 저택

또한 아주 극소수이지만, 고려高麗 건축 양식이 남아있는 현존하는 조선 전기朝鮮前期 가옥도 있습니다. 충청남도 아산시에 남아있는 맹씨 고택은 여말선초에 지어진 고택으로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가운데 마루는 단층이지만, 양 옆 방이 복층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이면 시원한 마루에 있다 추운 겨울이면 좁고 따뜻한 방에 들어가 생활했지요.

심지어 온돌이 보급되어 복층 구조가 사라져가던 조선 후기朝鮮後期에 지은 가옥 중에서도 복층 한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한옥은 상주나 안동 등 경상도에 가면 은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작은 한옥은 단층인데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 좀 크고 넓다 싶은 가옥은 복층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의 북촌댁은 규모가 크고 여러 건축 양식을 보면 조선 후기朝鮮後期 가옥임에도 불구하고 고려高麗와 조선 전기朝鮮前期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더군요. 고려高麗 저택을 재구성할 때 참고하기 좋아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gobev_BRbI
옛날에 고려高麗 저택을 디지털 미디어로 복원한 영상이 있습니다. 위 영상이 그런 영상이지요. 가옥 유적지와 현존하는 가옥의 형태를 토대로 복원한 고려高麗 저택인데, 저택 외양이 매우 수수하고 검소하게 생겼다는 것을 빼면 실내 모습은 거의 제대로 복원한 자료입니다. 추후 냉난방 편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온돌이 아닌 쪽구들을 난방시설로 사용한 고려高麗 때는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기단석을 쌓아 최대한 땅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었고, 화로로 방 안 공기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방을 협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보기 답답한 면이 있긴 하죠.
- 주칠朱漆과 흑칠黑漆에 금동金銅으로 화려하게 꾸민 당풍唐風 저택

근데 뭔가 아쉽습니다. 분명 수많은 기록에서 고려高麗 저택은 붉은 주칠朱漆과 옻으로 검은 흑칠黑漆은 기본으로 하고, 금동이나 순금 등 다양한 장식을 하며 화려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복원하는 저택 모습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수수하게 복원합니다. 아직 조선朝鮮의 검소함이라는 프레임에서 못 벗어난 건지, 혹은 대중의 여론이 무서워서 그런지 고려高麗 저택을 화려하게 꾸미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나마 사치로웠던 모습을 재현한 것은 드라마 [무신]에 나오는 최우 사택 정도였습니다. 저 정도여야 귀족들의 저택이죠. 허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니 결국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교차검증하며 추측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귀족은 중화를 동경했기에 당唐과 송宋을 적극적으로 모방했습니다. 저택 역시 그리했겠지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건 붉은 주칠과 검은 옻칠, 그리고 각종 화려한 금칠입니다. 이게 전형적인 당대唐代 저택 모습이거든요. 그럼 사치스러운 저택 모습은 당唐의 저택과 비슷하게 생겼겠지요? 그래서 해외에 있는 당풍唐風 건축물을 보며 같이 상상해보려고 합니다. 슬프게도 지금 중국에도 당풍唐風 저택이나 주거용 건축물이 별로 없습니다. 황소의 난으로 다 불타고, 그게 아니더라도 너무 오래되어 사라졌지요. 다행히 당풍唐風 기록은 많이 남아있어 현대 중국에서 복원한 것이 있습니다. 뤄양시洛陽市의 상양궁上陽宮으로, 측천무후가 개인적으로 쓰던 별장이었습니다. 보시면 붉은색과 검은색이 조화로운 기둥에 눈에 띄게 대비되는 흰 벽이 있지요. 그리고 간간히 금동이나 등으로 장식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현존하는 건축물 중 당풍唐風을 온전히 간직한 건축물로 일본의 도쇼다이지唐招提寺가 있습니다. 당唐의 승려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 가 지은 절로 전성기 당풍唐風 그대로 지었고, 그걸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추후에 다루겠지만 저 초록색 창살과 흰 휘장이 보이시죠? 그게 당唐과 고려高麗에서 창과 문에 많이 쓰던 양식입니다. 도쇼다이지唐招提寺는 사찰이지만 전각을 보면 고려高麗의 권세가들이 집의 대표 건물로 내세우는 전각이 딱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금성資金城의 태화전太和殿이나 경복궁景福宮의 근정전勤政殿처럼 궁궐에는 황제와 왕이 업무를 보는 대표 전각이 있는데, 고려사高麗史 기록에 따르면 권세가들은 자기 저택에 큰 정전을 만들어 업무를 보면서 황제와 비슷한 행세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신정권과 몽골 지배기로 가면 귀족이 대놓고 황제를 개인 전각에 초대해도 황제가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하고요.

그 외에도 당풍唐風 중에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냉기를 피해 기둥을 높이 세우고 이층에 생활 공간을 만든 건축 양식도 있습니다. 당풍唐風이라 하기도 뭐한게 중국 한대漢代 때부터 있던 양식이죠. 일본 뵤도인平等院에 가운데 전각 양 옆으로 이층 가옥이 보이죠? 뵤도인平等院은 불교 사찰이니 승려들이 집회하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저택에서는 귀족이 여름에 더위를 피해 쉬는 공간으로 쓰거나 개인적으로 부리는 사병이 침입자가 있는지 순찰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 권세가들이 집 정문에 누각樓閣을 세웠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딱 뵤도인平等院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선朝鮮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조선 전기朝鮮前期에 강릉으로 파견한 수령이 집무를 보는 칠사당七事堂이 있습니다. 강릉 관아 안에 있는 집무실로 집 자체가 복층 구조이고, ㄱ자로 뻗은 곳 끝은 아예 지면에서 떨어진 이층 구조입니다. 이런 식으로 조선朝鮮 때도 땅에서 최대한 떨어지려는 복층에 이층 구조가 흔했지요.
- 송宋의 우아한 행랑行廊과 이방耳房

또한 송宋의 저택 영향도 당연히 받았겠지요? 가장 크게 받은 영향은 정원이지만, 그건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고 지금은 송대宋代 저택 양식 중 행랑行廊에 주목할 겁니다. 한자문화권의 저택은 그냥 큰 하나의 집이 아닌 여러 전각과 가옥이 즐비하게 있는 집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궁궐처럼 말이죠. 이 때 다른 전각으로 이동할 때 그냥 땡볕을 맞으며 이동해도 되지만 귀족이라면 시원한 그늘이 있는 길을 따라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걸 선호했지요. 그래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 햇빛을 가리고 비와 눈을 막아주는 지붕 달린 복도가 발달했습니다. 그걸 행랑行廊이라고 부릅니다. 행랑行廊 자체는 당唐에 익랑翼廊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송宋 때 전성기를 달렸거든요. 쑤저우시蘇州市의 창랑정滄浪亭이 좋은 예시입니다. 전각이 매우 많은 거대한 정자인데 관람객은 행랑行廊을 따라 모든 건축물을 돌아다닐 수 있거든요.

다행히 이런 행랑行廊 양식이 남아있는 곳이 남한에 있네요. 강릉 선교장船橋莊입니다. 조선 전기에 지어져 지금은 한옥 스테이로 활용되는 선교장船橋莊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행랑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 햇빛이나 비바람을 피하며 다닐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 전 경복궁景福宮도 행랑行廊으로 모든 전각을 연결해 왕은 밖에서 이동해도 비와 눈을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튼 다시 돌아와서 송宋의 행랑行廊을 비롯한 저택 양식을 보고 고려高麗 귀족의 저택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송宋과 고려高麗 저택의 차이점은 단층 선호와 복층 선호인데, 온난 습윤한 송宋은 집 대부분을 단층에 사방이 뚫리게 해 시원한 바람이 통하게 했지만,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뎌야 했던 고려高麗는 좁은 복층을 선호했습니다. 이 차이를 감안하고 보면, 다행히 송宋은 많은 기록화를 남겨 저택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쉽습니다.

송宋의 기록화를 보면 땅바닥 위에 기단석을 쌓고, 그 위로 전돌이라는 바닥 벽돌을 깔아 땅의 냉기와 습기를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각十字閣이나 이방耳房 등 다양하게 꾸민 전각을 메인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그 사이를 행랑行廊으로 길을 내 연결했지요. 보기에 당唐보다는 수수하지만 그렇다고 우아한 기품이 전혀 밀리지 않는 송宋만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고려高麗 유학자들이 매우 좋아했을 모습이죠.

여기서 이방耳房을 짚고 넘어갑시다. 아까 본 뵤도인平等院의 양 옆 이층 구조물도 이방耳房에 해당하는데, 이방耳房 뜻은 가운데 건축물 양 옆으로 조금 작은 부속 건축물이 딱 붙어있는 건축 양식입니다. 양 옆 건축물이 마치 귀耳와 같다고 해서 이방耳房으로 이름 붙인 것이죠. 이방耳房은 중국에서 주로 쓰는 표현으로, 한국은 날개처럼 생긴 방이라는 뜻으로 익방翼房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양식은 지금은 중국 푸젠성福建省이나 월남, 싱가포르 등 중국 남부 지역과 화교 문화권에서 많이 보이는데, 이게 유행한 시기가 송宋이어서 그렇습니다.

송宋 때는 유난히 이방耳房 양식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왕조 때는 궁궐 전각은 단일 건축물만 세웠는데, 송宋만 유일하게 이방耳房 건축물들로 도배를 해놨습니다. 복송北宋의 황궁皇宮부터 시작해 남송南宋 황궁皇宮과 덕수궁德壽宮 전부 다 주요 건축물 전부 이방耳房입니다. 평소 궁궐에 관심이 많아 많은 궁을 본 사람들이 보기에 송대宋代 궁궐은 되게 낯설어 보이죠.

때문에 고려高麗 저택은 물론 추후에 다룰 궁궐 전각 모습도 대부분 이방耳房, 한국식 표현으로는 익방翼房 형태일 겁니다. 익방翼房 형태는 조선 전기朝鮮前期에도 주요 전각에 많이 쓰였지요. 주로 수령이 근무하는 관아의 핵심 전각이나, 객사 건축물에 익방翼房이 많이 쓰였습니다. 대부분 자거나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는 생활 공간에 쓰였지요. 때문에 고려高麗 저택 역시 집무 공간은 일부로 화려한 당풍唐風으로 으리으리하게 짓고, 귀족이 자고 밥을 먹는 침소는 큰 익방翼房 전각으로 꾸미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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