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로 평생을 먹고 산 몽골이 전한 육식

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억세고 작은 풀만 나 있는 몽골 초원은 도저히 채식을 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이런 곳에 사는 몽골 사람들은 채식은 포기하고 양을 방목한 뒤 양을 도축해 양고기와 피를 먹으며 영양을 보충했지요. 특히 피와 간, 내장은 살코기에서 얻을 수 없는 비타민과 무기질의 저장고여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히 먹었으며 단백질은 고기로 보충했습니다. 덕분에 오히려 육식만 하는 몽골인이 채식 위주 식사를 하는 정주민보다 영양 불균형이 심하지 않아 건강했지요.

이렇게 균형잡힌 영양을 바탕으로 강한 근력을 가진 몽골인은 어릴 때부터 익힌 기마 궁술을 발휘해 세계를 집어삼켰지요. 그리고 폐허가 된 터전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몽골 문화를 전수했습니다. 특히 몽골이 제국을 이루고 전세계 무역로를 장악해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 점령한 영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나라에도 몽골의 식문화를 퍼트렸지요. 고려高麗 역시 몽골 식문화를 낭낭하게 받았습니다.
- 몽골이 전한 다양한 고기 요리

소수의 귀족들만 가끔 고기를 먹던 고려高麗에 전해진 몽골 식문화는 당연 고기 위주의 육식 문화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잡고기와 뼈를 물에 넣어 푹 끓여서 남은 영양분도 모조리 뽑아 먹는 슐루ᠰᠥᠯᠡ였습니다. 몽골인은 양을 도축한 뒤 뼛조각과 뼈에 달랑달랑 남아있는 잡고기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냇가에서 물을 떠 와 붓고는 푹 고와서 먹은 슐루ᠰᠥᠯᠡ를 항상 챙겨 먹으며 무기질 같은 영양분도 챙겼습니다. 그게 고려高麗에 전해진 것이 설농탕雪濃湯, 즉 설렁탕이죠.

또다른 음식은 순대입니다. 다만 순대 유래는 설이 두가지인데, 고구려高句麗가 북위北魏와 교류하며 양의 대창에 양고기, 피, 쌀밥, 밀가루 등을 섞어 양념한 속을 넣어 찐 양반장자해羊盤腸雌解을 받아들인 것이 순대라는 설과, 몽골이 고려高麗를 유린하며 피순대를 같이 전했다는 설입니다.

그리고 고구려高句麗 때 존재했으나 고려高麗로 넘어가며 사라진 고기 구이 문화도 몽골 덕분에 되살아났습니다. 된장으로 양념한 돼지고기를 구운 맥적貊炙은 고구려高句麗 고유의 음식이었으나, 고려高麗 건국 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몽골이 도축법과 고기 구이 방법을 알려주자 개경開京에서 고기 구이 요리가 새로 등장했습니다. 설야멱적雪夜覓炙 또는 설하멱雪下覓으로 불리는 요리로, 눈이 오는 추운 날 고기를 굽다 잠깐 식히고 다시 굽기를 반복하며 부드럽게 익혀 먹는 구이였습니다. 당시에는 품종 개량 전이라 고기가 질겼기에 온도 차를 줘 고기 힘줄을 끊어가며 구워야 부드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선회를 좋아하는 고려高麗 사람들은 육고기도 날로 먹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렇게 육회가 등장했습니다. 몽골군은 양고기를 다져놓고 주머니에 넣어 들고 다니다 불을 피우고 즉석에서 구워 먹었는데, 이 고기 다짐을 응용한 것이 육회이죠. 고기를 잡은 뒤 결의 수직 방향으로 잘게 다져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고는 참기름과 마늘로 고기 잡내를 잡아 날로 먹은 것이 육회입니다. 비슷한 다른 요리는 유럽의 타르타르가 있지요.
- 제주도에 전해진 몽골 식문화

한반도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면, 제주도에는 비슷하면서 더 몽골풍에 맞는 식문화로 발달했습니다. 몽골 침입 시기 제주도는 탐라耽羅라는 나라였지만, 삼별초가 무단으로 점령해 몽골군에 대항했습니다. 그러다 고려-몽골 연합군이 제주도에 상륙해 삼별초를 토벌했는데, 몽골이 보기에 드넓은 제주도는 말을 키우기 좋은 목초지였습니다. 그래서 몽골이 세운 원元은 탐라耽羅를 멸망시키고 제주도를 원元의 영토로 편입했습니다. 그리고는 군마를 키우는 목초지로 활용했지요.

때문에 몽골인이 직접 제주도에 가 현지인과 교류하며 살았고, 자연스럽게 제주 문화와 몽골 문화가 융합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요리는 몸국과 돔베국수입니다. 몸국은 양고기와 양 뼈로 만든 몽골의 슐루ᠰᠥᠯᠡ를 제주 섬의 환경에 맞춰 재해석한 음식입니다. 양고기와 뼈 대신 돼지고기와 뼈에 당근 같은 비타민은 모자반으로 대체해 푹 끓여 영양을 보충한 음식이 몸국이죠. 그리고 돼지 뼈만 푹 고운 뒤 거기에 면을 넣은 것이 돔베국수입니다.

또한 한반도 육지의 순대는 유래가 두가지 설이 있지만 제주의 돗수애는 몽골에서 유래된 것이 거의 확실한 음식입니다. 양의 대창에 양 피를 굳힌 선지와 간 등을 넣어 만든 게데스 쵸스ᠭᠡᠳᠡᠰᠦ ᠴᠢᠰᠦ를 제주도의 돼지 창자에 돼지 피와 메밀, 보리를 다져 같이 넣은 것이 돗수애이죠. 비슷하게 말이 흔해 말고기 육포도 제주도에 자리잡았습니다.

제주도의 전통 음료인 쉰다리 역시 몽골의 쉰다라크ᠰᠢᠨᠡ ᠲᠠᠷᠠ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쉰다라크ᠰᠢᠨᠡ ᠲᠠᠷᠠᠭ는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하얀 유제품을 가리키는 몽골어입니다. 제주도에 정착한 몽골인이 양을 키워 양의 젖을 얻기 힘들자, 찬밥에 누룩을 섞어 만드는 막걸리의 중간 단계의 뽀얀 물을 보고 그걸 꺼내 즐기고는 쉰다라크ᠰᠢᠨᠡ ᠲᠠᠷᠠᠭ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때문에 쉰다리는 알코올이 살짝 있는 제주 전통 음료가 되었지요.

상화병霜花餠 역시 몽골이 제주에 전한 음식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만 원대元代에 고려高麗 본토와 원元의 영토인 제주 모두에게 전해졌는데, 한반도에서 조선朝鮮이 건국되며 상화병霜花餠이 사라져 제주도에만 남는 음식이 되었지요. 찐빵과 매우 유사한 음식으로 곱게 간 밀가루에 설탕을 넣고 고기나 호박, 팥, 쑥, 버섯, 나물 등을 넣어 찐 음식입니다. 초기에는 몽골의 보즈ᠪᠤᠤᠽ처럼 고기를 넣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고사리나 호박 등 채소를 넣는 식으로 현지화되었습니다.
- 양고기에서 소고기로

몽골 지배기 이전 고려高麗 사람들은 도축을 하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송宋과 요遼로부터 말린 양고기 포를 수입해 탕에 끓여 부드럽게 풀어 먹었지요. 하지만 몽골이 고려高麗를 지배하며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고려高麗 황실은 어릴 때 몽골 궁궐에서 강제로 생활해야 했고, 권문세족은 자발적으로 몽골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몽골의 육식 문화를 받아들였고, 현지에서 도축해 신선한 고기를 얻는 과정까지 함께 배웠습니다. 그리고 도축법을 배운 고려高麗에서는 있지도 않는 양 대신 흔히 볼 수 있는 소를 도축해 먹는 문화로 발전했지요. 그것이 조선朝鮮에 이르러서는 소를 너무 많이 잡아 소를 잡지 말라는 법이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동물의 젖을 먹는 문화도 몽골에서 배웠지요. 몽골 지배기 이전에도 동물 젖의 존재는 알았지만, 귀한 약재로만 쓰지 평상시에는 먹을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그러다 몽골인이 양의 젖으로 각종 유제품을 만들어 즐기는 걸 보고 권문세족과 황실이 따라했지요. 이들은 우유소牛乳所라는 구역을 따로 만들어 암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 가공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대표적인 유제품은 수유酥油와 타락駝酪이 있지요. 수유酥油는 치즈나 버터를 부르는 한자말입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윈난雲南 일대에서 야크 젖으로 짠 치즈 겸 버터로 쓰는 고농축 지방 덩어리를 수유酥油라고 부릅니다. 버터와 치즈 두 형태 모두 있는 음식이죠. 타락駝酪은 요구르트를 뜻하는 몽골어 타락ᠲᠠᠷᠠᠭ에서 따온 말로 순수한 우유나 우유에 쌀가루를 섞어 걸쭉하게 가공한 유제품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 몽골을 통해 고려高麗에 전해진 식물

또한 비단길과 해양로를 장악해 전세계 유통망을 꽉 잡은 몽골은 동서의 물품을 반대로 전달하며 활발한 교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덕분에 동방 끝자락에 위치한 고려高麗에 아랍과 아프리카, 유럽의 물품이 유입되었지요. 그 예시로 수박과 당근이 있습니다. 수박은 본래 뜨겁고 물이 부족한 사하라 일대에서 자생한 식물로 기원 전부터 레반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일대에서 재배했습니다. 그러다 몽골이 서쪽 끝에 있는 수박을 동쪽 끝 고려高麗에 전했지요. 당시 고려高麗에서는 이 식물을 서쪽에서 온 박이라는 뜻으로 서박西朴이라고 불렀답니다.

당근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당근은 몽골이 고기 요리를 할 때 넣어 먹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몽골의 식문화와 함께 전세계로 퍼졌고 고려高麗에도 알려졌지요. 이 때 고려 사람들은 중국을 부르는 또다른 명칭 당唐과 뿌리를 뜻하는 근根을 합쳐 중국에서 온 뿌리채소라는 뜻으로 당근唐根이라 불렀습니다.
- 몽골이 전한 새로운 술

몽골은 전통적으로 말의 젖을 가죽 통에 담아다니며 발효시켜 마시는 술 아이락ᠠᠶᠢᠷᠠᠭ을 즐겼습니다. 그냥 말의 젖을 가죽 안에 담은 뒤 말을 타고 며칠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락ᠠᠶᠢᠷᠠᠭ이 되어 있었지요. 몽골이 세계를 막 정복하던 시기에도 아이락ᠠᠶᠢᠷᠠᠭ은 몽골 전사들의 피로를 풀고 사기를 충전시키는 술이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이 이슬람 국가들을 점령하고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이며 아이락ᠠᠶᠢᠷᠠᠭ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당시 이슬람은 연금술이 한창 유행이던 시기로 각종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기법이 발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탁한 액체에서 맑은 액체만 분리하는 증류법으로 아라크عرق라고 불렸습니다. 이 아라크عرق르 아이락ᠠᠶᠢᠷᠠᠭ에 적용해 얻은 것이 아르히ᠠᠷᠢᠬᠢ라는 도수가 강한 증류주이죠.

몽골에서 아이락ᠠᠶᠢᠷᠠᠭ을 아라크عرق를 통해 아르히ᠠᠷᠢᠬᠢ로 바꾸었듯이, 전세계에서 탁한 술을 아라크عرق 기법으로 맑은 술로 바꾸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종교적으로 금주를 지향했으나 유흥을 목적으로 술을 즐겼던 이슬람 세계에서는 사탕수수와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만든 아라크عرق가 술을 뜻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와 스리랑카, 자바 섬에서는 코코넛 꽃이나 사탕수수를 발효시킨 즙으로 아락ചാരായം이라는 술을 담갔습니다.

원元과 고려高麗에서 탁주濁酒를 아라크عرق를 통해 얻은 물처럼 깨끗하고 맑은 술이 아락주阿刺吉酒입니다. 개경開京(현 개성)과 서경西京(현 평양)에서 아락주阿刺吉酒가 널리 퍼져 권문세족과 황실이 즐긴 술이 되었고, 이것이 한반도 전역으로 퍼지며 소주燒酒라는 또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소주燒酒는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에서 널리 사랑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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