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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 주거 가옥] 우리 상식과 많이 다른 고려 가옥

by 롱카이 2026.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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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분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도구, 주거 환경

유명한 강남 빈부격차 짤
유명한 강남 빈부격차 짤

아무리 귀한 옷감과 장신구로 온 몸을 치장하고 남들이 평생 보지도 못하는 진귀한 것들을 소유하고 즐길 수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신분과 부를 가장 확실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집, 더 나아가 주거 환경입니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냉혹한 진리이죠. 누구는 간단한 청소나 쓰레기 버리는 일도 집사들이 대신 해주는 시그니엘에서 안락하게 여유를 즐기고, 누구는 물도 나오지 않아 공동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용변을 처리하며 새벽부터 밤까지 혹사시킨 몸을 간당간당한 판자집에 뉘어야 합니다.

고려시대 백정은 움막에 살았지만 귀족은 궁궐보다 더 큰 저택에서 호사를 누렸다
고려시대 백정은 움집에 살았지만 귀족은 궁궐보다 더 큰 저택에서 호사를 누렸다

이처럼 주거 환경은 빈부격차와 신분격차를 심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반도에서 이 격차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고려高麗였지요. 화려함을 강조하는 불교 문화가 귀족 문화와 만나며 있는 귀족들은 집을 더더욱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황제의 외척은 황제가 머무는 궁궐보다 더 큰 저택을 소유했다고 하지요. 반면에 가난한 백정들은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 나오는 그런 움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한 쪽은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대저택에서 떵떵거리고 다른 한 쪽은 땅을 파고 기어들어가 시커먼 곳에서 평생을 지냈지요.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집필한 서긍도 이 빈부격차를 보고 놀랄 정도였습니다.

고려의 중심지 개경에서도 백정들은 움집에서 살았다
고려의 중심지 개경에서도 백정들은 움집에서 살았다

백정들은 초가집에서는 안 살았냐고요? 우리가 아는 초가집은 고려高麗 때에는 중인이나 잘 사는 백정들이 사는 고급 주택이었습니다.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조선朝鮮에 들어서야 백성 대부분이 초가집을 지어 살았지요. 이렇게 의식주衣食住: 주거 가옥 편에서는 이렇게 고려高麗 때 신분과 권력 별로 주거 환경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달랐는지 볼 겁니다.

 

 

 

  • 우리가 아는 한옥과 완전히 달랐던 고려高麗와 조선전기朝鮮前期 한옥

입식 문화였던 한반도
입식 문화였던 한반도

그동안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기를 방바닥 전체를 따뜻하게 데우는 온돌 문화를 가지고 있고, 덕분에 바닥에 눕는 좌식坐式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건 소빙하기라는 대재앙이 전세계를 휩쓸고 난 뒤 꽃피운 조선 후기 때 이야기이고, 그 전에는 한국 주거 문화도 입식立式 문화였습니다. 우리도 중국, 월남, 그리고 유럽이나 미국과 동일하게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습니다. 방바닥이 차가웠기 때문이죠.

온돌 전에는 구들장 위에 직접 올라가 누웠다
온돌 전에는 구들장 위에 직접 올라가 누웠다

온돌도 없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방바닥 전체를 깐 온돌이 아닌 일부 구역에 무슨 화덕처럼 깐 구들장 위에 직접 올라가 눕는 구들장 문화였습니다. 추후에 다루겠지만 구들장은 병약한 환자나 어린 아이, 노인이나 이용하는 시설로 여겨 젊은 사람들은 이용하는 걸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고려高麗와 조선 전기朝鮮前期가 특별히 겨울에도 따뜻한 건 아니었기에 구들장 대신 이용하는 다른 난방 시설이 발달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저택은 복층이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저택은 복층이었다

그리고 온돌이라는 난방 체계가 없다보니 무거운 돌을 깔 필요가 없어 층이 2층인 복층 집이 발달했습니다. 그 이유는 추후에 자세히 다룰 겁니다. 이유가 많고 복잡해서요. 여튼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한옥은 단층이지만, 고려高麗와 조선 전기朝鮮前期만 해도 좀 잘 사는 집은 복층 구조를 따랐습니다. 지금도 충청도와 경상도의 외진 곳에 아주 가끔 조선전기朝鮮前期 복층 한옥이 남아있지요.

온돌 문화를 너무 띄우다 보니 온돌이 없는 고려, 조선전기 한옥은 이단 취급받는다
온돌 문화를 너무 띄우다 보니 온돌이 없는 고려, 조선전기 한옥은 이단 취급받는다

헌데 온돌이라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역으로 온돌이 없는 복층 집은 한옥이 아니라면서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복층 집을 한옥으로 소개하면 이건 중국 집이네 일본 가옥이네, 우리 한옥은 이렇지 않아 이 매국노야 이러면서 공격하고 힐난하는 희한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는 여론이 무서워서 고려高麗 대의 주거 환경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있지요. 관심도 적어서 대충 고려高麗 때도 당연히 온돌집이었겠지라고 생각하며 조선후기 주거 환경을 떡하니 묘사하기도 하고요.

고려와 조선 전기 가구부터 조선 후기와 완전히 다르다
고려와 조선 전기 가구부터 조선 후기와 완전히 다르다

의식주衣食住: 주거 가옥에서는 그 상식을 전부 깨며 고려高麗의 주거 환경을 추적하려고 합니다. 좌식坐式이 아닌 입식立式이 주거 환경의 기준이었으니 가구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가옥 모습과 싹 다 다릅니다. 그리고 냉난방 시설도 완전 다르지요. 애초에 집이 단층이 아닌 복층이고 온돌이 없으니 집 밖부터 집안 풍경까지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걸 한번 기록과 다른 나라 사례를 함께 보며 알아보도록 할 겁니다.

 

 

 

  • 화려한 정원 문화를 가진 고려高麗 저택

당과 송의 영향을 받아 매우 화려했을 귀족 저택

이것도 구현하면 이단 취급받는 것 중 하나인데, 집을 붉고 화려하게 장식하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네 일본을 맹목적으로 동경하는 친일파네 이런 소리 듣습니다. 근데 의복 편과 음식 편에서도 계속 나오지만 고려高麗 때는 당唐과 송宋의 모습을 열심히 모방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문화를 열심히 따라하고 응용해 K 문화로 발전시키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눈으로 보기에도 중국과 다른 한민족 고유의 문화가 융성한 시기는 사대외교를 하며 중국에게 굴복했다며 그렇게 까이고 비하를 당하는 조선朝鮮입니다. 신라新羅부터 고려高麗 때까지는 중화 문화를 열심히 받아들이고, 조선朝鮮에 이르러 노하우가 쌓여 문화를 재해석하고 한국 고유의 문화로 재생산했지요.

우아한 정원 문화가 발달한 송
우아한 정원 문화가 발달한 송

다시 돌아와서, 고려高麗 때는 화려한 저택 문화가 발달한 만큼 귀족들의 집안은 붉은 주칠과 황금 장식에 각종 비단으로 수놓은 모습이었습니다. 마침 동시대의 선진국인 송宋은 장강長江 일대가 개발되어 인구가 폭증하면서 깨끗한 물과 친해졌고, 검소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맑은 물 주변을 가꾸는 정원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송宋보다 물이 더 깨끗하고 맑은 고려高麗의 귀족들은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냉큼 따라했지요. 고려高麗 뿐만 아니라 대월大越과 일본日本도 바로 따라하며 한자문화권 전체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송의 정원 문화를 간직한 일본
송의 정원 문화를 간직한 일본

물론 이런 정원 문화는 검소를 강조하는 유학儒學이 국가 이념이 된 조선朝鮮에 이르러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정원 문화가 말살 수준으로 간 건 임진왜란과 소빙하기라는 악재의 연속으로 국력이 쇠퇴한 이후였습니다. 당장 죽겠는데 뭔 놈의 정원을 가꿀 여력이 있겠어요. 여튼 이렇게 한반도에서 정원 문화가 소실되었기에, 고려사高麗史 등에 남아있는 기록과 해외에 여전히 살아있는 송대宋代 저택과 정원 문화를 추적하고 합쳐 고려高麗의 정원 문화를 추측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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