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식立式 문화인 고려高麗

조선朝鮮 때나 혹은 20세기, 더 나아가 21세기 시골에서는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앉는 좌식坐式 문화가 자리잡아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선朝鮮 전 고려高麗 때까지만 해도 실내에서 바닥에 앉는 것이 아닌 의자에 앉는 입식立式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개인 별로 의자를 가지고 있어 높은 책상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생활했지요.

신기하게도 한반도는 삼국시대부터 고려高麗까지 입식立式이다 조선朝鮮,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朝鮮 후기부터 좌식坐式으로 바뀌었습니다. 반면 중국은 남북조南北朝 시기까지 좌식坐式이다 당唐부터 입식立式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때문에 고려高麗부터 조선朝鮮 전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모두 입식立式을 고수했지요. 참고로 월남은 각종 벌래와 뱀이 지나다니는 밀림지대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입식立式을 유지했고, 일본은 습해 다다미畳를 깔았기에 처음부터 좌식을 유지했습니다. 여튼 고려高麗 때 일상은 입식立式을 표준으로 했기에 반상 문화 역시 입식立式이었습니다.
- 현대와 비슷한 듯 달랐던 밥상 문화

슬프게도 지금 현존하는 고려高麗 당시 상탁床卓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풍속화와 불화 등에서 고려高麗의 상탁床卓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요. 그림으로 추적한 고려高麗의 상탁床卓은 송宋의 것과 유사합니다.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으로 웇칠해 멋스러움을 살렸으며, 다리가 길고 가늘어 학처럼 우아합니다. 그럴만도 한게 저 당시에는 송宋에서 시작한 우아한 상탁床卓이 유행이어서 고려高麗 뿐만 아니라 거란契丹, 금金, 서하西夏, 대월大越도 따라했거든요. 당시의 유행이죠.

여튼 고려高麗는 높은 상탁床卓 위에 바로 밥과 반찬을 올려놓고 먹기도 했지만, 고려도경高麗圖經 기록에 따르면 그 위에 작은 소반小盤을 얹고 그 위에 밥과 반찬을 차렸다고 합니다. 이 때 손님의 신분에 따라 소반小盤 3개에서 5개를 올려놓고 먹었다고 하네요. 신분이 높을 수록 소반小盤을 더 높이 쌓았다고 합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 손님께 예를 차린다고 소반小盤을 깔아 더 높이 쌓아올린 것 같습니다. 높을수록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고려도경高麗圖經 기록에 따르면 밥상을 줄 때는 작은 소반小盤 위에 밥과 반찬을 다 담아 통채로 들고 가 차려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한 소반小盤에서 밥을 먹었고, 소반小盤 위의 밥을 다 먹으면 그 다음 소반小盤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건 송宋과 거란契丹의 문화와 다르거든요. 송宋과 거란契丹은 큰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 큰 밥상에 놓고 다같이 먹었습니다. 중화는 겸상 문화였지요. 반면 고려高麗는 독상 문화였습니다. 사실 한국전쟁으로 고유의 문화 명맥이 끊기기 전 한반도의 밥상 문화 전체가 독상 문화였지요.

이런 차이가 난 이유는 밥상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송宋과 거란契丹은 크고 무거운 상탁床卓에 밥을 차려놓고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탁床卓을 움직일 수 없어 지금의 코스 요리처럼 시종이 큰 그릇에 음식을 가득 담아 상에 차렸고 음식이 떨어지면 다음 음식을 그릇에 담아 줬습니다. 그리고 상탁床卓의 크기만큼 여럿 사람이 둘러 앉아 겸상했지요. 반면 고려高麗는 소반小盤에 모든 음식을 담아 상탁床卓 위에 올리는 형태였기에 작은 상탁床卓 위 더 작은 소반小盤에 담긴 음식만 먹는 독상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음식도 코스 요리가 아니라 한번에 다 주는 형태였고요.

귀족과 승려, 황실 뿐만 아니라 백정도 형편이 된다면 소반小盤을 구해 앉아서 먹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보통 집집마다 3개에서 5개 정도 보유해 한 두개 정도 쌓아 올려서 식사를 했습니다. 매우 가난한 집안이라면 그냥 땅바닥에서 먹었고, 어느 정도 사는 중인 계급이라면 소반小盤을 쌓아 식사했지요.
- 화려하던 고려高麗의 그릇

한반도 문화에서는 밥과 반찬을 그릇에 담아 먹었습니다. 백정이라면 보통 나무를 깎아 만든 목기木器나 흙을 대충 구워 만든 텁텁한 토기吐器로 만든 그릇으로 식사했지요. 하지만 귀족은 고려高麗 때 번성한 청자靑瓷로 만든 그릇에 밥과 반찬을 담아 식사했습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요. 청자靑瓷는 귀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청자靑瓷를 승려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불교佛敎가 국가 종교여서 승려의 지위가 높았기에, 승려 역시 청자靑瓷로 만든 발우 그릇을 들고 다니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유학자들이 검소해야 하는 승려들이 청자靑瓷를 주렁주렁 들고 다니며 사치한다며 비판하기도 했지요.

더 나아가 권세가나 황실은 청자靑瓷보다 더 위에 있는 그릇인 유기鍮器, 즉 놋그릇을 이용했습니다. 놋그릇은 조선朝鮮 때도 귀해 왕실이나 외척 정도는 되야 이용할 수 있었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생산량이 말도 안되게 향상되어 서민도 좋은 도자기를 맘껏 쓰는 지금도 진짜 놋그릇은 재벌이나 쓰는 그릇이라는 인식이 있지요.

또한 숟가락과 젓가락은 고려高麗 때 금속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한자문화권에서 금속 젓가락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지요. 중국, 월남, 일본 모두 나무나 플라스틱 같은 가벼운 젓가락을 씁니다. 이는 옛날에도 비슷했지요. 송宋과 대월大越은 여럿이서 겸상하면서 기름진 볶음 요리나 뜨거운 국물에서 건더기를 건져 먹기 위해 대나무를 깎아 만든 긴 나무 젓가락을 이용했으며, 일본은 독상에서 절임 채소를 잡고 생선가시를 발라 먹기 위 삼나무에 옻칠한 짧고 뾰족한 나무 젓가락을 이용했습니다. 반면 고려高麗는 독상 문화로 젓가락이 길 필요가 없고 음식이 뜨겁지 않으며 기후가 습하지 않아 금속 젓가락과 숟가락이 오래 보관하기 좋아 금속으로 만들어 이용했습니다.

허나 고려高麗 때는 금속 젓가락을 쓰는 민족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북방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거란契丹이었습니다. 거란족은 여럿이서 둘러싸 겸상하는 문화를 지녔지만,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양을 도축하거나 사냥감을 잡아 구워 먹을 때 쇠젓가락으로 잡아 찢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기를 고정해 잘 굽기 위해 작은 쇠꼬치도 들고 다니며 사용했지요. 거란契丹의 육식 문화를 모방하던 고려高麗는 이를 따라 쇠꼬치를 개인 도구로 이용하며 고기나 절임 채소를 꽂아 먹었습니다. 하지만 젓가락이라는 더 훌륭한 도구가 있고, 육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쇠꼬치는 금방 사라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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