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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 음식과 식탁] 다과와 안주

by 롱카이 2026.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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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자靑瓷와 백자白瓷로 만든 병甁와 잔盞

청자 주전자
청자 주전자

술이나 차 등 음료를 즐길 때면 주전자酒煎子나 병甁에 액체를 담아 잔盞에 따라 마십니다. 고려高麗 때도 이런 일상은 마찬가지였지요. 때문에 고려高麗 귀족과 승려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병甁을 특별히 만들어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마침 당唐의 고운 청자靑瓷 문화가 신라新羅 말에 전해져 고려高麗 때 빛을 발했으니 청자靑瓷로 각종 아름다운 병甁과 잔盞을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했지요. 고려高麗의 청자靑瓷 기술은 국제적으로 가장 뛰어난 기술로 인정받아 일본日本과 송宋, 거란契丹, 금金, 심지어 멀리 대월大越에도 수출되었지요.

고려 백자
고려 백자

그렇다고 고려高麗가 청자靑瓷만 생산하고 소비한 건 아니었습니다. 송宋의 사대부들이 좋아한 백자白瓷 역시 받아들여 생산하고 이용했지요. 다만 백자白瓷는 검소한 멋 때문에 유학자들이 좋아했고, 귀족과 승려는 청자靑瓷를 주로 선호했습니다. 검소를 강조한 유학보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멋을 추구한 불교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죠.

잔과 탁이 있는 잔탁
잔과 탁이 있는 잔탁

또한 잔盞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과 살짝 달랐습니다. 지금이나 조선朝鮮 때와 달리 잔 받침이 있었지요. 이를 잔탁盞托이라 불렀습니다. 마치 프랑스와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컵 아래에 컵 받침이 있듯이 말이죠. 이런 잔탁盞托 문화는 중국에서 불교가 가장 융성하던 남조南朝 때 인도의 잔 문화를 모방하며 등장했습니다. 그러다 수隋와 당唐 때 사라져가다 송宋 때 뜻밖에도 유학을 숭상하는 사대부들이 검소하면서 은은한 차茶를 즐기며 잔탁을 부활시켰지요. 불교 문화의 정수인 잔탁盞托 문화가 송宋에서 시작해 주변국으로 퍼진 것입니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은제유금잔탁
화려함의 극치였던 은제유금잔탁

때문에 고려高麗 역시 송宋을 따라 잔탁盞托을 만들어 차茶 문화를 즐겼지요. 다만 수수한 백자白瓷로 잔탁을 만든 송宋과 달리 화려함을 추구한 고려高麗 귀족은 비싼 청자靑瓷나 금은金銀으로 잔탁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발견된 고려高麗 잔탁에는 유기柳器와 은銀을 섞어 화려하게 만든 은제유금잔탁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사치를 부린 것이죠.

고려 침몰선에서 발견된 죽소반
고려 침몰선에서 발견된 죽소반

또한, 최근에 발견된 특이한 소반小盤인데, 대나무를 엮어 만든 죽소반竹小盤입니다. 잔탁盞托 두 세개만 겨우 들어갈 정도의 매우 작은 소반小盤인데 승려나 귀족이 손님에게 차茶를 대접할 때 잔탁盞托과 소소한 다과茶果를 대접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푸른 대나무 색상과 청자靑瓷의 비색翡色이 잘 어울리네요.

 

 

 

  • 찻잎을 찍어 만든 단차團茶를 즐긴 고려高麗 사람들

증기에 찐 찻잎을 동그랗게 빚어 말린 단차
증기에 찐 찻잎을 동그랗게 빚어 말린 단차

지금처럼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음식을 그대로 보관했다가는 부패해서 먹지 못했습니다. 이는 찻잎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찻잎을 오래 보관하고 필요할 때 차茶로 우려 마시기 위한 기법이 연구되었습니다. 고려高麗 때는 단차團茶로 보관했다가 차茶를 우려 마셨지요. 단차團茶는 어린 찻잎을 증기로 푹 쪄서 부드럽게 만들고 틀에 맞춰 모양을 빚은 뒤, 불에 구워 수분기를 날려 보관하던 저장 방법입니다.

단차는 차의 향을 가장 잘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단차는 차의 향을 가장 잘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고려高麗 당시 차茶의 향을 보존하면서 장기 보관이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지요. 고려高麗 뿐만 아니라 차茶의 본고장인 송宋도 단차법團茶法으로 차茶를 보관하고 즐겼습니다. 또한 송宋의 중화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응용하며 문화를 발전시킨 요遼 역시 단차團茶를 애용했지요. 그 영향으로 지금도 중국은 차茶를 단차團茶로 보관하고 유통하는 문화가 뿌리깊게 남아있습니다. 다만 월남은 고산지대에서 언제나 향이 좋은 차茶가 생산되어 생 찻잎을 말린 뒤 바로 빻아 즐기는 문화가 발달했고, 일본은 단차團茶로도 보관이 힘들어 아예 고운 가루로 빻아 보관하는 말차抹茶 문화로 발전했지요.

맷돌로 단차를 갈아 뜨거운 물을 붓는 점다법을 그린 송대 풍속화
맷돌로 단차를 갈아 뜨거운 물을 붓는 점다법을 그린 송대 풍속화

여튼 송宋과 고려高麗는 단차로 보관한 차를 마실 때 점다법點茶法을 이용했습니다. 단차團茶를 잘게 쪼갠 뒤, 맷돌이나 절구로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 찻가루를 찻잔에 담은 뒤 뜨거운 물을 붓고 대나무로 만든 차선茶筅으로 빠르게 휘휘 저어 하얀 거품을 만들어 마셨습니다. 송宋에서는 차茶를 누가 더 잘 만드냐를 두고 두차斗茶라는 대결 놀이를 펼쳐 서로 점다법點茶法 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보존된 점다법
일본에 보존된 점다법

이 점다법點茶法을 보면 지금 일본에 놀러가면 배우는 말차抹茶로 하는 점다법點茶法과 동일하죠? 지금 일본에 남아있는 점다법點茶法 맞습니다. 송宋의 차례茶禮인 점다법點茶法은 요遼, 대월大越, 고려高麗, 일본日本에 전해져 차문화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게 시간이 흘러 중국과 월남, 한국의 차茶 문화가 바뀌는 동안 일본은 그 문화를 바꾸지 않고 간직한 것이죠. 단차團茶로 보관하는 것이 아닌 아예 말차抹茶 자체로 보관했다가 바로 꺼내 썼다는 것만 빼면 송대宋代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 귀한 밀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각종 다과茶菓

송에서 즐긴 밀전과
송에서 즐긴 밀전과

화베이華北 일대를 보유한 송宋은 높은 생산력 덕분에 밀가루와 기름, 설탕이 풍족해 평범한 백정도 과자를 즐겼습니다. 길거리에는 주로 탕후루糖葫蘆와 월병月餅을 팔아 백정들도 값을 지불하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지요. 백정이 먹기에는 조금 귀하지만 사대부와 황실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밀전과蜜煎菓도 송宋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자였습니다. 송宋은 당시 압도적인 생산력 덕분에 식량이 넘쳐났고, 과자菓子를 만들어 차茶와 즐기는 것이 평범한 일상일 정도였지요.

과일 즙에 녹말과 꿀을 섞어 굳힌 과편
과일 즙에 녹말과 꿀을 섞어 굳힌 과편

하지만 이건 송宋 이야기이고, 극단적인 여름과 겨울 기후를 가진 고려高麗나 언제나 더운 대월大越, 일본日本은 해당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려高麗 황실과 귀족, 승려는 밀가루와 기름, 설탕, 꿀을 송宋에서 직접 수입해가며 송宋의 선진 문화 모방했습니다. 이렇게 고려高麗에서는 다과茶菓 재료를 수입해서 만들다보니 가격이 매우 비싸 상류층만 즐길 수 있었지요. 먼저 과일을 설탕과 꿀에 푹 절여 굳힌 밀전과蜜煎菓를 모방한 정과正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과일 즙을 설탕물이나 꿀에 넣어 향을 더한 뒤 그 액체 자체를 고체로 굳힌 과편果片으로 응용했지요.

현대에는 저렴한 유밀과는 고려시대 때 사치 중의 사치를 상징했다
현대에는 저렴한 유밀과는 고려시대 때 사치 중의 사치를 상징했다

이것만 해도 매우 비싼데, 고려高麗에서 사치 끝판왕인 다과茶菓가 있었습니다. 유밀과油蜜菓라는 과자로, 밀가루를 튀겨 만든 과자를 총칭하는 표현입니다. 유밀과 안에는 유과油菓, 약과藥果, 만두과饅頭果, 매잡과梅雜菓가 있지요. 의외죠, 지금은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저 과자가 고려高麗 때는 사치 중의 사치였다는 사실이요. 무엇보다도 밀과 설탕이 매우 비쌌던 고려高麗 때는 밀가루와 설탕을 말 단위로 부어 빚은 뒤 기름을 콸콸 부운 솥에 튀겨낸다는 것 자체가 돈지랄이었습니다.

매우 귀한 간식이었던 매잡과(매작과)
매우 귀한 간식이었던 매잡과(매작과)

때문에 유밀과油蜜菓는 황실과 귀족, 승려마저도 작정하고 날을 잡아 즐겨야 하는 매우 귀한 간식이었습니다. 황실조차 연등회와 팔관회 두 국가 기념일에나 맛볼 수 있었습니다. 고려사高麗史 기록을 보면 유학자들이 황제에게 백정들의 삶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팔관회 때 유밀과油蜜菓 만들면서 사치하지 말라는 항소문이 흔하게 나올 정도였죠. 동시대의 송宋에서는 백정들이 돈을 좀 모아서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좀 비싼 과자였는데, 고려高麗에서는 황제도 벌벌 떨며서 먹어야 할 정도로 값어치가 차이났습니다.

사찰은 차와 함께 다식을 손님에게 대접했다
사찰은 차와 함께 다식을 손님에게 대접했다

이렇게 설탕과 꿀, 밀가루가 들어간 다과茶菓가 말도 안되게 비싸니 평상시에는 고려高麗 땅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다과茶菓를 즐겼습니다. 누가 오든 따뜻하게 환영하며 차茶와 다과茶菓를 내어주는 사찰은 주로 곡물을 빻아 만든 녹말을 뭉친 다식茶食을 다과茶菓로 내어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다식茶食은 그래도 어느 사찰에서든 저렴한 가격에 금방 만들 수 있는 다과茶菓였지요.

수수에 팥을 추가해 만든 찰전병(부꾸미)
수수에 팥을 추가해 만든 찰전병(부꾸미)

그리고 고려高麗는 역시 쌀이나 수수 등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곡물로 만든 떡을 평상시에 간식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이는 백정들도 만들어서 평상시에 즐길 수 있는 간식거리였죠. 유명한 떡은 산에 있는 쑥을 따 대충 녹말과 섞어 찐 쑥떡, 밤을 주워 백미를 빻은 쌀가루에 섞어 찐 밤설기떡, 찰전병이 있었습니다. 찰전병은 수수로 만든 피에 팥을 빻아 만든 소를 넣고 기름에 지진 고급 떡으로 지금의 부꾸미와 같은 간식이었습니다.

백정들의 간식이던 엿
백정들의 간식이던 엿

그리고 당연히 엿도 있었습니다. 쌀을 심기 전 겨울에 심고 봄에 수확한 보리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뒤 곱게 갈아 물에 끓여 만든 엿기름은 신라新羅 때부터 백정들이 만들어 먹은 식재료였습니다. 그리고 이 엿기름을 고온에 굳혀 고체로 굳힌 엿도 언제든 만들 수 있었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엿을 만들고는 아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엿은 백정들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간식이었죠.

 

 

 

  • 따뜻한 차茶 대신 마시는 차가운 음료

고려 때 얼음은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하는 물건이었다
고려 때 얼음은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하는 물건이었다

차茶는 따뜻하게 마시는 음료입니다. 지금이야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시기도 하지만 차가우면 찻 향이 덜 나고 쓴 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제대로 차茶를 즐기려면 따뜻하게 마셔야 하지요. 하지만 더울 때는 푹푹 찌는 한반도에서 여름에 뜨거운 차茶를 마시는 건 고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운영하는 얼음을 하사받아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귀족이나 유학자는 귀한 얼음으로 차가운 음료를 만들어 즐겼습니다. 고려高麗 때는 황제가 총애하는 신하에게 여름에 얼음을 배급해 나눠줬으며, 권세가는 개인 빙고氷庫를 보유해 원할 때 얼음을 꺼내 먹을 수 있었거든요.

송에서 얼음에 팥과 각종 재료를 넣고 즐긴 빙수
송에서 얼음에 팥과 각종 재료를 넣고 즐긴 빙소

그래서 신하나 귀족은 무더운 여름이면 얼음을 꺼내 먹었습니다. 당연히 이 귀한 얼음을 그냥 먹지는 않았지요.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 먹었습니다. 진짜 부유한 권세가는 송宋을 따라 빙소氷酥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빙소氷酥는 얼음을 곱게 간 뒤, 팥을 올리고 행인두부나 각종 견과류를 올려 함께 먹은 여름 간식이었습니다. 예, 딱 지금의 빙수로 이것마저 송宋에서 처음 나온 음식입니다. 송宋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었어요. 추후에도 계속 나올 겁니다만 참 많은 것이 송宋에서 등장했습니다.

신하와 귀족은 얼음으로 수단 등 차가운 음료를 만들어 즐겼다
신하와 귀족은 얼음으로 수단 등 차가운 음료를 만들어 즐겼다

하지만 이건 얼음을 독자 생산 가능한 권세가 이야기이고, 신하는 얼음을 아껴 먹기 위해 음료에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셨습니다. 물에 꿀을 넣은 뒤 얼음을 넣어 차갑고 달달하게 마신 밀수蜜水, 차가운 꿀물이나 오미자 차에 녹말가루를 입힌 떡과 보리를 띄워 마신 수단水團, 오매육, 사인, 백단향, 초과를 넣고 끓인 물을 차갑게 식혀 만든 제호탕醍醐湯, 생강과 계피를 꿀과 함께 끓인 뒤 차갑게 식힌 수정과水正果를 즐겼습니다.

백정이나 낮은 신분의 귀족은 꿀 대신 조청으로 각종 차고 달콤한 음료를 만들었다
백정이나 낮은 신분의 귀족은 꿀 대신 조청으로 각종 차고 달콤한 음료를 만들었다

높은 신분의 신하나 귀족은 꿀로 달콤시원한 음료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낮은 신분의 신하나 몰락 귀족, 그리고 좀 사는 백정은 어떻게 여름을 보냈을까요? 그들은 귀한 꿀 대신 엿기름으로 만든 조청造淸으로 매실청이나 도라지청을 담근 뒤, 여기에 우물을 퍼 얻은 찬 물을 섞어 마셨습니다. 지금의 매실차, 도라지차와 동일한 음료였지요. 또는 엿기름이 많다면 듬뿍 넣어 식혜食醯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습니다.

 

 

 

  • 우아한 술과 안주

술을 담는 매병과 주병
술을 담는 매병과 주병

지금은 사람들이 술을 잘 안 마시지만 옛날만 해도 술병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려高麗 귀족과 유학자들도 술을 좋아했지요. 송宋의 사신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고려 사람들은 술을 너무 좋아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덕분에 술을 담는 매병梅甁이나 주병酒甁, 호리병葫蘆甁이 청자靑瓷로 많이 남아있지요. 이런 청자靑瓷를 소유한 귀족과 사대부는 맑은 청주에 솔잎, 인삼, 국화, 대나무 잎 등을 띄워 향을 맡으며 술을 즐겼습니다.

물고기를 말려 만든 어포는 고려의 대표 안주였다
물고기를 말려 만든 어포는 고려의 대표 안주였다

이들은 다함께 모여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시를 써 서로 주고받거나 낭독하며 풍류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안주도 빠지지 않았죠. 고려高麗 때 이들이 즐긴 안주는 숙석鱐腊과 녹두 부침개가 있었습니다. 숙석鱐腊은 고기나 물고기를 말린 것으로 육포肉脯와 어포魚脯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각종 시집이나 일기를 보면 귀족은 양고기를 말린 육포肉脯를 소비했으니 안주로도 양고기 육포肉脯를 즐겼을 겁니다. 그리고 어포魚脯는 보통 문어나 오징어, 명태, 가오리 등을 말려 찢어 먹었을 겁니다. 의외로 쥐포는 없었을 건데, 쥐포 자체가 1970년대에 나온 음식으로 그 전에는 쥐치는 버리는 생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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