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식 문화가 발달한 중화中華

한자문화권 구성국은 지리적으로 참 절묘합니다. 주변국인 한반도, 일본, 월남은 평야가 적고 산이 많아 방목은 어렵고 대신 산에서 채소를 채집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초기 문명 단계 때부터 채식이 기본이었지요. 하지만 한자문화권의 중심국인 중국은 달랐습니다. 산간과 숲이 적고 드넓은 평야를 가져 채소를 구하기 어렵고 대신 동물을 키우기 좋았지요. 때문에 중국은 주周 때부터 집 안이나 집 주변에 돼지와 닭을 키워 고기를 얻었습니다.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가 돼지 시豕 위에 지붕 면宀을 올린 한자이죠.

그만큼 중국에서 고기를 얻기 쉬워 자연스럽게 채식보다는 육식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한대漢代에 이르면 이미 어느 정도 사는 백정白丁들이 집에 돼지를 키워 필요할 때 돼지고기를 얻을 수 있었고, 염장고기 문화가 발달했지요.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상승한 송대宋代에 이르면 평범한 백정白丁도 매일 홍샤오러우紅燒肉 등 돼지고기를 즐길 수 있는 단계에 이릅니다. 다만 돼지는 뭐든지 먹는 잡식동물로 누린내가 심한 동물이어서 백정白丁들이나 먹는 거친 고기로 여겨졌지요.

거기에 각종 유목민족이 남하하며 중화中華 문명을 발전시키니 자연스럽게 육식 문화도 갈수록 발전했습니다. 마침 한반도가 고려高麗일 때는 남방에 송宋이 있고 북방에 거란契丹이 세운 요遼라는 두 선진국이 있었습니다. 마침 두 선진국의 상류층은 당시에는 누린내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아 깨끗한 고기로 여겨지던 양고기와 소고기를 매일 즐겨먹었습니다. 이런 중화中華의 육식 문화는 채식이 기본이던 고려高麗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미국의 극빈층까지는 아니고 어느 정도 사는 서민들은 매일 일요일마다 이웃을 불러다가 소고기로 바비큐 파티하고 페인트 통만한 아이스크림 통을 한꺼번에 다 먹는 모습을 보고 자원부국이라며 놀라워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지요.
- 중화中華를 모방해 육식을 즐기던 귀족

때문에 고려高麗 황실과 귀족은 중화中華 선진 문화인 육식을 받아들여 모방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맛있는 고기이니 어떻게든 따라하려고 했지요. 문제는 산이 많고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극히 추운 고려高麗는 양과 물소를 키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양고기와 물소고기는 송宋과 요遼에서 수입했고 때문에 고려高麗에서 두 고기 가격 자체가 매우 비쌌지요. 그 중 최고급으로 쳐준 양고기는 황실과 권세가만 구할 수 있는 특식 취급받았습니다.

권세가 급은 아닌 귀족은 대신 개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었습니다. 사실 고려高麗 때면 어느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만 있지, 그래서 어떤 요리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어 요리까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고기를 구워 방자에게 나눴다는 기록이나 고려사高麗史 등에 각종 고기로 탕을 끓였다는 기록을 보면 보통 탕을 하고, 그 외에는 맥적貊炙처럼 된장으로 양념해 구워 먹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소비한 고기는 개고기인데, 몸보신 용이었죠. 의외로 닭은 잘 안 먹었습니다.

그 외에도 귀족은 자기만의 임야와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개인 사냥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냥터에 사슴이나 노루, 멧돼지, 꿩, 토끼 등 각종 동물을 풀어놓고 사냥을 즐겼지요. 활로 직접 잡거나 매를 시켜 매사냥을 하는 방식으로 유희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잡은 동물을 구워 먹었다고 합니다.

또한 생선도 당연히 즐겼는데, 특히 송宋에서 유행한 복어 회를 따라 즐겼습니다. 소동파蘇東坡가 극찬한 복어 회를 먹겠다고 너도나도 나섰지요. 송宋의 사대부들이 목숨을 걸고 복어 회를 먹은 뒤 맛있다고 시를 쓰며 칭찬하자 고려高麗와 일본日本 귀족들이 자기들도 먹겠다고 복어 요리 전문가들을 초대해가며 자기들도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과 일본에는 복어 회와 요리가 고급 요리로 여겨지고 있지요. 정작 중국은 이제는 회를 안 먹고 독이 있는 복어를 왜 먹어?하는 입장입니다.

그 외에도 각종 식해와 젓갈 등 귀한 소금이 왕창 들어간 생선요리를 즐겼습니다. 황실과 귀족에게 바치는 진상품이었지요. 육지로 올라오면 빠르게 부패하는 생선 특성 상 귀족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소금을 뿌려 젓갈로 담가 보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진액은 모아 액젓으로 만들어 요리하는데 감칠맛을 내는 용도로 사용하고, 생선은 굽거나 탕에 넣어 즐겼지요. 송宋 역시 생선을 잡으면 바로 소금을 쳐 젓갈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 사대부의 기록에 따르면 항저우杭州에서 생선국을 먹는데 염장한 생선으로 만든 국이어서 놀랐다고 하지요.
- 귀족의 전유물인 뽀얀 백미로 만든 찹쌀

나물 반찬과 고기 반찬이 들어가도, 일단은 밥이 있어야죠. 권력이 있는 귀족은 국가로부터 봉급으로 쌀을 받기도 하고 추가로 자기 소유의 전답에서 상납하는 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쌀을 가공해 뽀얀 백미를 만들어줄 노비들도 있었지요. 덕분에 귀족은 매일 넘치는 쌀밥을 먹었고, 남은 쌀밥은 노비에게 줬습니다. 그래서 고려高麗 때 백정白丁은 거친 조밥을 먹으며 배를 움켜쥐고, 신분이 더 낮은 노비는 귀족들의 쌀밥을 얻어먹으며 더 잘 사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지요.
- 중화中華에서 전해져 사찰에서 관리한 가공식품

고기 요리 뿐만 아니라 각종 가공식품도 고려高麗 귀족 식탁에 전해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밀가루입니다. 척박하고 건조한 화베이華北에서는 밀을 키우기 쉽지만 덥고 습하다 갑자기 확 추워지는 한반도는 밀이 자라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밀은 송宋에서 전량 수입했지요. 그 과정에서 밀로 만든 요리도 수입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밀가루 음식이 혼돈餛飩과 면麵입니다.

혼돈餛飩은 송宋에서는 백정白丁들도 언제나 먹는 흔한 음식이었는데, 밀이 귀한 고려高麗에서는 귀족과 승려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특히 승려는 밀가루 피에 각종 야채를 다진 소를 넣어 혼돈餛飩을 만든 뒤 축제나 귀한 손님이 올 때 대접했습니다. 사찰에서는 혼돈餛飩 말고도 각종 채소 소를 넣은 교자交子를 만들었는데, 이를 산함餕餡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찰에서 가끔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기를 못 먹는 상태에서 고행하는 승려들에게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영양도 챙기고 맛도 있는 특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송宋에서 배운 가공법에 따라 면麵을 뽑고 국수를 만들어 먹었지요. 여기까지 보면 유독 사찰에서 밀가루를 소비한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맞습니다, 불교佛敎 지위가 높던 고려高麗는 수입한 밀가루를 사찰에서 주로 저장하고 관리했거든요. 그래서 주로 승려가 밀가루를 소비하고, 각종 행사 때 귀족과 황실을 불러 밀가루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밀가루 말고도 사찰에서 관리하던 가공식품으로 두부豆腐가 있습니다. 기원전 중국에서 콩으로 고기를 대체할 인조고기를 연구하다 탄생한 두부豆腐는 고기를 대체하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그래서 이것 역시 사찰에서 생산해 승려들이 소비했지요. 만들기 까다로운 가공식품은 전부 사찰에서 생산하고 유통했습니다.
- 사찰을 중심으로 채식 문화가 발달하다

추후에 불교와 승려 부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고려高麗 때 사찰은 단순히 수행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지역 문화를 선도하는 복합 문화공간이었지요. 지금으로 치면 스타필드, 더현대, 신세계 백화점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곳입니다. 귀족과 황실은 물론 백정白丁들도 문화 여가를 즐기거나 똑똑한 승려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러 사찰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승려는 여러 문화를 연구하고 백정白丁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전파했지요. 채식 문화의 발달 역시 승려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승려들은 나물에 들기름을 추가하거나 각종 새로운 장아찌를 만드는 등 백정白丁을 위한 음식을 연구하고 그 레시피를 백정白丁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채소 반찬 레시피가 발전해왔습니다.
- 풍류와 함께하는 과일과 주류

고려高麗 때 백정白丁들은 산에 가면 있는 과일들을 즐겨 먹었지만, 황실과 귀족은 그보다 더 귀한 과일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 귀한 과일이 산에서 볼 수 있는 과일보다 더 달고 상큼하기도 했고요. 고려高麗 때 황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과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주도에서 나는 감귤이죠. 고려高麗 당시에 제주도는 탐라耽羅라는 별개 국가로 고려高麗를 천자국天子國으로 모시며 감귤을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때문에 탐라耽羅의 감귤은 천자天子, 즉 황제皇帝만이 받는 과일이었지요. 황제皇帝는 감귤을 받아 원할 때 먹었으며, 일부 마음에 드는 신하에게만 감귤을 하사하며 권위를 증명했습니다. 황제皇帝 허락 없이 감귤을 먹는 행위는 반역叛逆으로 간주해 즉결처분할 정도였습니다.

일부 귀족은 자신 소유의 정원이나 집에 귀한 과일들을 키워 부를 과시하고 맛있는 과일을 즐겼습니다. 석류와 포도가 그 예시입니다. 벽란도 항구에 가끔 방문한 아랍 상인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즐긴 석류를 고려高麗에 수출했고, 그 석류를 받은 고려 황실과 귀족은 영롱한 열매와 달콤한 맛에 반해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석류는 한반도 여름에만 자라고 겨울을 나지 못한 식물이라 중부 이남 지방의 임야에서 전문적으로 관리했기에 매우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이 과일을 즐기는 자는 황실과 권세가였죠.

또다른 권세가만의 과일은 포도가 있습니다. 포도 역시 캅카스와 지중해 일부 지역에나 나는 과일로 햇빛은 뜨겁고 건조하며 이슬이 맺혀야 한다는 드럽게 까다로운 조건으로 한반도에서 키우기 진짜 힘든 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도나무 덩굴이 예쁘고 포도 과실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달고 부드러운 맛 때문에 한번 맛보면 헤어나올 수 없는 신의 과일이었습니다. 때문에 황실과 귀족들은 저택 일부 공간에 포도나무를 심고 덩굴을 가꾸어 포도를 재배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방문하면 포도나무 덩굴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포도를 따 먹는 식으로 권력을 과시했지요.

이런 돈지랄의 화룡점정은 귀한 포도를 때려부어 만든 포도주였습니다. 마침 귀족이 동경하는 송宋도 포도를 가꾼 뒤 포도주를 만들어 자랑하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려高麗 귀족들도 열심히 따라했습니다. 다만 이 당시 만든 포도주는 유럽과 캅카스 일대의 포도주처럼 포도만 발효시켜 만드는 형태가 아닌, 쌀 누룩에 포도 즙을 추가해 포도의 단 맛을 끌어올린 증류주였습니다. 와인보다는 위스키에 더 가까운 술이었지요.

귀족들은 기분 좋은 날 과일 뿐만 아니라 술도 곁들였습니다. 위의 포도주 뿐만 아니라 다른 술도 즐겼지요. 당연하지만, 진하고 숙취가 심한 탁주는 백정白丁들만 먹는 술이었고, 귀족은 증류를 거쳐 깔끔해진 술을 즐겼습니다. 백주, 백자주, 국화주, 동동주, 송주, 죽엽주 등 참으로 다양한 술이 기록에 나옵니다. 이 술의 공통점은 담금주의 윗부분 맑은 부분만 뜨거나, 증류해 만든 청주淸酒, 백주白酒라는 점입니다. 더 깔끔하고 부드러운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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