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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 음식과 식탁] 백정이 먹은 음식

by 롱카이 2026.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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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백정

농사로 식재료를 자급자족해야 하던 고려 백정
농사로 식재료를 자급자족해야 하던 고려 백정

조선의 백성百姓, 즉 서민을 고려高麗 때는 백정白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논에서 벼를 심고 밭에서 각종 채소를 키워 세금을 낸 뒤 남은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식재료를 자급자족할 수는 없었으니 옷감 등 부업으로 만든 재료를 시장에 팔아 필요한 식재료를 구했지요. 그럼 이렇게 백정白丁이 직접 키워 만들어 먹은 음식을 볼까요?

 

 

 

  • 다양한 곡물로 밥을 지어 먹다

고려시대 쌀 생산량은 높지 않았다
고려시대 쌀 생산량은 높지 않았다

고려高麗 때는 소를 이용한 농업과 계단식 논으로 삼국시대보다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여전히 추운 날씨와 면적이 좁을 수 밖에 없는 계단식 논, 여전히 병충해에 약한 벼 품종, 아직 보급되지 않은 이앙법 때문에 쌀 생산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고려高麗의 조세는 생산한 쌀의 1/10을 납세하는 것으로 되어있어 세금을 내고 나면 남은 쌀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마저 시장에 팔 때 가치있는 곡물이 쌀인지라 대부분 거래하는 화폐로 사용되었지요. 그래서 평범한 백정白丁은 1년 내내 쌀만 넣은 쌀밥을 먹기 힘들었습니다.

고려시대 때 사실상 조가 주요 곡물이었다
고려시대 때 사실상 조가 주요 곡물이었다

때문에 백정白丁들은 벼보다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조를 키워 조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고려高麗 때 한반도 기후에 맞는 조 품종이 개량되고, 무쇠솥이 가정마다 보급되어 수분을 가둬준 덕분에 조로 만든 밥도 찰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정白丁들은 1년 내내 조만 들어간 조밥을 해 먹었지요. 그것도 아쉽다면 기장과 수수, 피, 보리를 함께 키워 같이 먹었습니다. 산에 가 도토리를 따 가공하기도 했고요.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구황작물이었다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구황작물이었다

그리고 춥고 척박한 강원도 산간 지방의 사람들은 조마저 키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메밀에 의존했습니다. 거칠지만 강추위에도 멀쩡한 메밀은 감자가 전래되기 전 강원도에서 키울 수 있는 유일한 작물이었죠.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메밀밥, 메밀묵, 메밀 부침개 등을 지어 먹었습니다. 이따금 전국에 흉작이 들면 메밀을 보급해 구황작물로 활용하기도 했지요.

백정의 쌀의 일부를 탁주로 만들어 새참으로 활용했다
백정의 쌀의 일부를 탁주로 만들어 새참으로 활용했다

물론, 백정白丁들은 마음만 먹으면 1년에 며칠 정도는 쌀로 지은 쌀밥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쌀은 전부 누룩을 추가해 탁주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지요. 고된 농사일에 탁주가 없으면 안되거든요. 안그래도 힘든 농사일인데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일하지 못하니 쌀 여유분을 전부 탁주에 투자한 겁니다.

 

 

 

  • 밭과 산에서 채취한 각종 채소와 과일

우리가 먹는 식물은 전세계 여러 지역의 것이 전래된 것이다
우리가 먹는 식물은 전세계 여러 지역의 것이 전래된 것이다

조와 기장 등으로 지은 밥만 먹으면 반드시 영양결핍이 옵니다. 특히 비타민이 부족하지요. 때문에 다른 반찬도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고려高麗 때가 되면 저 멀리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수입한 각종 채소들이 추가되어 풍성해집니다. 지중해에서 시작해 아프간을 거쳐 한반도로 온 배추, 캅카스와 이집트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온 무, 인도에서 기원한 가지, 지중해 일대에 자라다 고구려 때 전래된 상추,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온 동아, 인도와 아라비아에서 온 참깨, 히말라야 산맥에서 기원한 토란, 중국 서부에서 기원한 파 등이 고려高麗 백정白丁들의 밭에서 자랐습니다. 시금치는 여말선초에 중국 푸젠성福建省에서 한반도로 전해졌고요.

20세기 품종 개량 전 배추의 모습
20세기 품종 개량 전 배추의 모습

근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위 작물들이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는 겁니다. 지금은 뛰어난 생명공학 기술로 작물에 먹을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지만, 옛날에는 여전히 야생 식물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요. 가령 배추는 지금은 부드러운 흰 이파리가 많지만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무슨 청경채나 열무 같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작은 작물을 밭에 많이 심어 하루하루 소비한 것이죠.

오이는 고려 백정이 가장 사랑한 채소였다
오이는 고려 백정이 가장 사랑한 채소였다

한반도에서 자생한 채소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열무, 오이, 미나리, 부추, 더덕, 달래, 참외가 그 채소입니다. 또한 산에 가면 곰취, 고사리, 머위, 민들래 등 산채를 채취했고 식용 버섯도 겸사겸사 따서 식재료로 활용했습니다. 그 중 백정白丁이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 오이였습니다. 지금은 극혐 3대장에 속하지만, 고려高麗 때는 무더운 여름에 차가운 물에 담갔다가 꺼내 먹는 차가운 오이가 아이스크림 뺨치는 음식 자체였거든요. 그래서 백정白丁은 여름이면 오이를 쟁여놓고는 차가운 물에 담가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몸의 열도 식히고 수분도 보충했지요.

야생 복숭아(개복숭아)
야생 복숭아(개복숭아)

그리고 새참을 즐길 때 후식으로 산에서 따온 과일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밤, 대추, 복숭아, 개암, 능금, 감, 살구, 으름 등을 즐겼지요.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高麗의 밤이 복숭아만큼 크다는 기록과, 고려高麗 복숭아는 중국 복숭아보다 크기가 작고 맛이 없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복숭아 원산지가 중국인 걸 감안하면 고려高麗에 전해진 복숭아는 개복숭아 등 야생 복숭아에 가까운 품종이었을 것 같네요. 당시 송宋은 오랜 품종 개량으로 크고 달고 부드러운 복숭아를 즐겼거든요.

 

 

 

  • 소금과 콩으로 만든 두장豆醬과 각종 고기

동아시아의 양념이자 단백질 공급원이 된 두장
동아시아의 양념이자 단백질 공급원이 된 두장

허나 채소와 과일로는 단백질을 얻기 힘듭니다. 그래서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야 했지요. 다행히도 동아시아는 대두라는 큰 축복이 있었습니다. 만주에서 자생하는 대두는 훗날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하는 예맥족이 말을 타고 다니다 따뜻한 말 체온이 닿는 주머니에 대두를 보관하면 청국장으로 발효가 됨을 발견하고 소금을 추가해 두장豆醬을 만들었지요. 그것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해져 각종 장醬으로 발전했습니다. 한반도는 된장과 간장, 중국은 황두장黃豆醬과 추抽, 일본은 미소末醬와 쯔유汁, 월남은 투엉醬과 시저우豉油로 발전했습니다. 소금은 국가에서 독점 판매했는데, 국가 사업이라 추후 세금 부분에서 다루겠습니다.

콩나물
콩나물

추가로 콩을 어두운 곳에 보관해 뿌리가 나게 한 콩나물도 많이 먹었습니다. 또한 대두 말고도 인도에서 유래된 녹두를 키워 각종 묵이나 죽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콩 덕분에 단백질 공급이 부족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큰 콩이 없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보다 서민들이 단백질을 풍족하게 섭취할 수 있었지요.

고려시대 때 닭과 달걀은 백정은 접하지도 못하는 귀한 식재료였다
고려시대 때 닭과 달걀은 백정은 접하지도 못하는 귀한 식재료였다

하지만 콩만 먹고 살 수는 있다만 즐겁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불교佛敎가 일상에 뿌리깊게 박힌 고려高麗라 하더라도 고기를 아예 안 먹기는 참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닭을 키우기는 힘들었습니다. 불교佛敎에서는 달걀을 먹는 것도 살육殺戮에 해당하는 거라 평범한 백정白丁이 달걀을 먹기 힘들었습니다. 닭은 더더욱 그랬지요. 그래서 고려高麗 때는 가정 집에 닭이나 오리를 키우는 경우가 별로 없었고, 황실이나 귀족을 위한 양계장만 있었습니다.

미꾸라지 등 쉽게 잡을 수 있는 물고기를 특식으로 먹었다
미꾸라지 등 쉽게 잡을 수 있는 물고기를 특식으로 먹었다

대신 백정白丁은 물고기를 먹었습니다. 뭔가 일본이랑 비슷하죠? 일본도 육식금지령 때문에 땅을 걷거나 하늘을 나는 동물은 못 먹었지만, 강이나 바다에 있는 건 별의별 핑계를 대면서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고려高麗도 비슷하게 냇가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는 물에 넣고 산초나 초피, 박, 미나리 등 비린내를 잡을 향신료를 넣어 끓여 먹었지요. 혹은 논에서 농사를 짓다가 발견한 미꾸라지, 참게, 소라 등을 잡아다가 대충 부추나 산초 등 남는 향채를 넣어 끓여 먹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추어탕이나 지리탕, 어죽 등 투박한 탕으로 끓여 먹었죠.

향어 회 등 회는 고려의 모든 신분이 즐겼다
향어 회 등 회는 고려의 모든 신분이 즐겼다

특히 민물고기든 바닷고기든 잡아서 그 자리에 바로 회를 떠 먹는 걸 좋아했습니다. 회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귀족과 사대부는 회를 먹고 맛있다며 시를 적었습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고려高麗 사람들이 회나 젓갈을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때 바닷가에 사는 백정白丁은 겸사 미역이나 다시마, 톳 등 해초도 뽑아서 반찬으로 즐겼습니다.

 

 

 

  • 각종 식재료로 만든 일용할 밥상

나물 반찬 위주의 식사를 한 백정
나물 반찬 위주의 식사를 한 백정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 기록에 따르면 백정白丁은 조밥에 토란을 담은 된장국을 기본으로 하고, 각종 나물 반찬을 곁들여 식사를 즐겼다고 합니다. 저 당시에 소금 자체가 귀해 소금이 들어간 된장과 간장으로 간을 했습니다. 국에 된장과 간장을 넣어 간을 마추고 씁쓸한 나물에 된장과 참기름을 발라 냄새를 잡고 고소한 풍미를 올렸습니다. 또한 된장과 간장 안에 오이, 죽순, 무, 배추 등을 넣어 담그는 장아찌를 만들어 두고 두고 꺼내 먹었습니다.

고려 때 등장한 저장식품 동치미
고려 때 등장한 저장식품 동치미

또한 김치의 원조인 동치미가 고려高麗 때 등장했습니다. 된장과 간장을 이용한 장아찌 말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더 살리면서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소금물에 무와 오이, 파를 통채로 담가 보관하는 동치미가 등장했습니다. 마침 무를 넣으니 무의 시원한 감칠맛이 동치미 물에 담겼기에 무를 꺼내 먹는 것 뿐만 아니라 국물을 마시기도 했지요. 동치미는 백정白丁이 춥고 아무것도 없는 겨울을 버티게 하는 소중한 저장식품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즐긴 콩나물냉국
무더운 여름에 즐긴 콩나물냉국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 되면 시장에서 산 말린 미역에 오이를 넣어 시원한 오이냉국을 만들거나 삶은 콩나물을 차갑게 식혀 만든 콩나물 냉국으로 더위를 버텼습니다. 여유가 좀 있는 백정白丁은 산에서 도토리를 따거나 녹두를 재배해 묵을 만들어 반찬으로 먹기도 하였습니다. 여튼 이렇게 평시에는 채소로 이루어진 채식 식단을 유지했고, 특별한 날이나 기쁜 날이면 냇가에 가 물고기를 잡아 회를 치거나 탕으로 끓여 먹는 특식을 즐겼습니다.

새참으로 즐긴 숭늉
새참으로 즐긴 숭늉

그리고 힘든 농사일을 할 때면 많게는 하루에 다섯 번 새참을 먹었습니다. 새참으로 각종 채소와 산나물에 조밥, 된장을 즐겼고 후식으로 각종 산에서 난 과일에 숭늉과 탁주를 곁들였지요. 특히 숭늉은 쌀이나 조를 많이 쓰지 않고, 오히려 지은 밥에 물을 넣고 끓여 재활용한 음식이라 형편이 좋지 않은 백정白丁이 고픈 배를 위로하는 좋은 후식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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