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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 음식과 식탁] 불교 사회와 식문화

by 롱카이 2026.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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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대승불교大乘佛敎에 형성된 육식금지 문화
주는 건 뭐든 받아먹어야 하는 탁발
주는 건 뭐든 받아먹어야 하는 탁발

불교佛敎는 본디 승려僧侶들이 신도들로부터 음식을 시주施主받는 탁발托鉢로 모든 끼니를 해결해야 합니다.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신도가 뭘 주든 다 먹어야 합니다. 설령 고기라 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먹어야 하지요. 그래서 네팔이나 스리랑카, 라오스, 타이, 미얀마 등 초기 불교 원칙을 간직하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 국가에서 승려僧侶는 신도들이 고기나 라면, 초콜릿 바 등을 줘도 감사히 여기며 먹습니다.

양무제와 달마대승
양무제와 달마대승

하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여러 보살의 가르침을 추가로 익히는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중국으로 전해지며 여기에 약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중국 남조南朝의 양梁을 건국한 양무제梁武帝는 독실한 수준을 넘어 불교佛敎에 심취한 군주였습니다. 그래서 달마대사를 불러 문답할 정도로 불교佛敎에 깊은 관심을 보였지요. 그는 본인부터 살생殺生을 중단한다면서 채소 위주의 식사를 했고, 이어 승려에게 육식을 금지하는 단주육문斷酒肉文을 포고했습니다. 나중에는 종묘 제사에도 술과 고기를 빼버리죠.

양의 불교문화는 동아시아 전체로 퍼졌다
양의 불교문화는 동아시아 전체로 퍼졌다

양무제梁武帝는 스스로를 황제보살皇帝菩薩로 부르고 인도나 여러 나라에서 승려僧侶를 초대해 사찰에서 의논하며 법령을 반포하는 등 등 중국의 불교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게 양에서 탄생한 수준 높은 대승불교大乘佛敎는 당시 양梁의 영토이던 대월大越(현 월남)로 스며들고, 해상무역을 통해 백제百濟와 일본日本에 전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주육문斷酒肉文도 함께 전달되죠.

유목민족인 거란조차 승려는 단주육문을 철저히 지켰다
유목민족인 거란조차 승려는 단주육문을 철저히 지켰다

양梁이 기틀을 다진 불교 문화는 중국에서 불교佛敎가 가장 융성한 당唐에도 유지되었습니다. 즉, 당唐의 승려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도 육식이 아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唐이 멸망하자 빠르게 세력을 키워 천하를 송宋과 양분한 거란의 요遼 역시 불교佛敎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이며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실천했습니다. 추운 북방 황야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사냥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거란족도 불교 신자들은 육식보다 채식 위주로 식사를 했지요.
 
 
 

  • 한자문화권에 뿌리내린 채식 위주 문화
한자문화권에 뿌리내린 채식 문화
한자문화권에 뿌리내린 채식 문화

이 단주육문斷酒肉文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아주 깊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월남, 한국, 일본은 불교佛敎를 처음 접할 때 단주육문斷酒肉文을 받았기에 원래 불교佛敎 자체가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원칙으로 하는 줄 알았던 것이죠. 때문에 각종 채소와 이파리, 식물 뿌리, 과일을 식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해진 단백질은 두부나 콩으로 만든 각종 두장豆醬으로 보충했고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동아시아는 대두를 비롯한 각종 콩이 있어 육식이 아닌 채식으로도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콩이 없는 유럽은 살려면 고기와 치즈를 필수로 먹어야 했지요.

볶는 요리 위주로 발달한 중국 채식문화
볶는 요리 위주로 발달한 중국 채식문화

근데 정작 원조국인 중국은 다른 한자문화권과 달리 채식 식단 구성이 좀 특이합니다. 문명 초창기 때부터 육식 중심이었고, 오랜 기간 동안 육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한 유목민족 문화가 많이 유입되었으며, 물이 더러워 식재료를 기름에 빠르게 볶아 먹는 식문화는 하필이면 채소와 상성이 안 맞습니다. 기름으로 볶는 요리법은 고기나 버섯 등 단백질 식재료와 맞지요. 또한 먹을 수 있는 채소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중국은 버섯과 두부 등 단백질에 당근, 죽순 등 그래도 기름과 어울리는 채소를 섞어 볶아 먹거나 만두 등으로 빚어 먹는 식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마저 사찰에 한정했고, 황실이나 민가는 채식보다는 육식 위주 식단을 유지했습니다.

월남의 불교 식단
월남의 불교 식단

월남의 경우, 물은 중국처럼 석회수였지만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밀림 기후여서 산이나 들판에 가 각종 채소를 얻어 각종 요리에 사용했습니다. 제가 이전에 포스팅한 것 중 베트남의 향채를 다룬 것이 있어요. 그러면서 월남은 덥고 습한 나라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향채를 많이 소비하고, 전세계적으로 봐도 채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라고 소개했는데, 그 이유가 저 단주육문斷酒肉文 덕분입니다. 딱 우리의 고려高麗와 시기가 정확히 겹치는 리 왕조利朝부터 쩐 왕조傳朝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불교佛敎가 국가 이념이어서 각종 향채를 기본으로 하는 식단이 정착했습니다. 쩐 왕조傳朝 이후 등장한 레 왕조黎朝 때도 유학儒學을 앞세웠지만 불교佛敎를 말살 수준으로 탄압하지 않아 민중에는 불교佛敎 가치관이 유지되었기에 식문화도 쭉 이어졌고요.

한국의 채식 반상
한국의 채식 반상

그리고 한국도 여전히 채식 중심 식단을 유지하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며 고기 반찬이 늘었지만 아직까지 나물이나 김치 같은 채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요. 또한 여전히 고기보다는 된장이나 간장, 두부 같은 콩 위주의 단백질 식단을 유지합니다. 이는 고려高麗 때 정착한 식단이 지금까지 이어졌기에 가능했지요. 그럼 고려高麗 문화를 일부러 바꾼 조선朝鮮은 왜 이런 식단을 바꾸지 않았냐, 채식 위주 식단은 유학儒學의 시선에서 봐도 검소한 식단이어서 문제될 게 없었거든요. 오히려 조선朝鮮은 나물 위주 식단을 더더욱 장려했습니다.

오랜 기간 육식금지령을 유지해 채식 문화가 발달한 일본
오랜 기간 육식금지령을 유지해 채식 문화가 발달한 일본

일본은 더 나아가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화되기 전까지는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상류층인 사무라이侍나 심지어 덴노天皇도 채식 식단을 철저하게 유지했지요. 소나 돼지 같은 대형 육류를 먹는 법을 모를 정도였습니다. 일본은 미소みそ나 쯔유つゆ를 기본으로 토란과 버섯, 콩, 매실 등을 절여 먹는 채식을 유지했습니다.
 
 
 

  • 술 대신 차茶가 발달하다
불교의 영향으로 다도가 발달했다
불교의 영향으로 다도가 발달했다

또한 불교佛敎에서 술도 제한했기에, 그 반대급부로 차茶가 대중적인 음료로 부상했습니다. 인도와 타이 등에서는 승려僧侶들이 우유를 마셨지만, 고기와 관련된 걸 금지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우유 대신 차茶를 권장했거든요. 덕분에 처음에는 중국에서만 마시는 차茶가 불교佛敎와 함께 월남, 한국, 일본으로 전해져 한자문화권이 공유하는 식문화로 정착했습니다.

차와 함께하는 과자 문화
차와 함께하는 과자 문화

그리고 씁쓸한 차茶와 어울리는 달달한 과자도 발달했고요. 그래서 한자문화권에는 다과茶菓라는 것이 있지요. 다과茶菓는 밀가루에 각종 재료를 섞고 당시에 귀한 설탕을 듬뿍 넣은 뒤 기름에 튀겨 만든 음식이라 매우 비쌌습니다. 그래서 다과茶菓를 즐길 수 있는 자는 권력이 있는 황실과 권세가, 그리고 다도茶道를 주도하는 승려僧侶였죠. 영국과 프랑스의 디저트 문화에 버금가는 고급 문화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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