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문화를 바꾼 몽골

일제강점기 이전 한반도의 문화 흐름은 크게 세가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라가 삼한일통三韓一通할 무렵 당唐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 또다른 하나는 고려高麗가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 마지막은 임진왜란과 경신대기근이라는 전국가적 재앙 이후입니다. 그 중 고려高麗 중기에 침공해 고려高麗를 복속시킨 몽골 지배기는 약 100년간 이어지며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줬습니다. 여기서는 그 중 의복 변화를 보려고 합니다.
- 송宋에서 원元으로

몽골의 대칸 쿠빌라이 칸은 국명을 원元으로 바꾸며 기존 중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권국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원元은 고려高麗를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왕을 대칸의 꼭두각시로 세우는 등 속국으로 부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려高麗가 기존에 유지하던 체제를 강제로 허물고 원元의 체제로 전환시켰지요. 즉, 송宋을 벤치마킹한 고려高麗의 행정과 문화도 강제로 중단시키고 원元의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때문에 고려高麗는 반강제적으로 원元의 풍습과 의복을 따라해야 했습니다. 근데 원元의 풍습은 몽골의 풍습하고 똑같지는 않아요. 몽골 마저 만리장성을 넘어 중화 땅으로 진출하자 선진문물인 중화 문화에 반해 중화 문화와 몽골 문화를 합치며 융합했거든요. 때문에 우리 상식과 달리 원元 문화는 중화 문화를 중심으로 몽골의 문화가 섞인 문화입니다. 중화 문화가 압도적이어서 몽골 문화가 흡수하지 못하고 역으로 흡수당한 것이죠. 여튼 중화와 몽골의 융합인 원元 문화는 그대로 고려高麗에 전해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 몽골이 바꾼 머리 모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변발이었습니다. 항상 머리 위에 모자나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다니며 전투를 하던 몽골 남성은 머리 위로 열이 갇혀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수리를 밀었습니다. 그리고 앞머리 일부는 짧게 남기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양쪽으로 땋아 둥글게 말았습니다. 이것이 몽골식 개체변발開剃辮髮로 고려高麗 왕족은 개체변발開剃辮髮을 강제받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정은 상투에 문라건文羅巾을 유지하고 귀족과 왕실만 개체변발開剃辮髮을 했습니다.

이 개체변발開剃辮髮 상태로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 햇빛에 정수리가 타버릴 겁니다. 그래서 몽골 남성은 머리에 둥근 챙을 가진 발립鉢笠을 쓰고 다녔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발립鉢笠은 머리 끝에 깃털이나 진주, 옥 등 장식을 추가했고, 아래로는 목덜미를 햇빛에 가리는 가리개나 구슬을 꿰 만든 띠로 장식했지요.

여성의 경우, 사실 딱히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몽골이 거칠고 마초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다보니 여성 문화 자체가 적어 사실상 한족 문화를 유지하는 거에 가까웠거든요. 여성 의복 문화는 몽골이 뭘 섞을 게 딱히 없었습니다. 단지 몽골 예복인 고고姑姑를 쓰기 위해 머리카락을 위로 얇게 올리는 말고지 머리모양으로 바뀌었다 이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영건領巾을 유지하는 등 송宋대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위 사진처럼 머리 위에 쓴 긴 모자를 고고姑姑라고 부르거든요. 고고姑姑는 원元의 표현이고, 몽골에서는 복타크ᠪᠣᠭᠲᠠᠭ라고 부릅니다. 긴 기둥처럼 생긴 모자 꼭대기에 각종 깃털과 장식을 추가로 달고, 이 달랑달랑거리는 모자를 고정하기 위해 뺨에 큰 띠를 둘러 강하게 고정한 뒤, 나머지 띠를 내리는 예복이지요. 고려高麗 왕후와 공주도 저 고고姑姑를 쓸 것을 강요받았기에 말고지 머리 모양을 유지했습니다. 저 고고姑姑에서 족두리가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다른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도 추정되거든요.

또한 어린 아이들의 머리를 묶을 때 땋아서 묶는 일명 댕기머리도 확실치는 않지만 몽골의 변발辮髮에서 온 문화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몽골의 개체변발開剃辮髮이 머리를 땋은 뒤, 큰 천으로 단단히 묶어 고정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화를 받아 이전 문화와 융합한 것이 댕기머리인 것이죠. 머리를 두개로 나눠 땋아 고정시키고, 그 아래에 몽골처럼 댕기라는 큰 천을 묶는 것으로 융합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몽골 지배기 전에는 가느다랗고 긴 천으로 머리와 맞닿은 부분을 묶었다면, 몽골 지배기 이후에는 댕기머리로 머리를 흩날리지 않게 묶은 뒤 끝자락에 큰 댕기로 고정하는 것입니다.
- 원元이 바꾼 고려高麗 의복

겉옷도 바뀌었습니다. 기마 궁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몽골은 말에서 움직이기 편한 테를릭ᠲᠡᠷᠯᠢᠭ을 입었습니다. 팔소매가 짧고 작아 휘날리지 않는 대신, 허리 아래는 주름져 있어 말에서 편하게 입고 다니기 좋은 옷이었습니다. 이 테를릭ᠲᠡᠷᠯᠢᠭ은 고려高麗에 전해져 철릭(天翼/帖裡)으로 불리며 왕부터 평민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반팔 두루마기 형태의 옷인 답호褡護를 걸쳐 입었습니다. 이 옷 역시 몽골의 전통 의상으로 쌀쌀한 날에 테를릭ᠲᠡᠷᠯᠢᠭ 위에 입는 옷이었습니다. 반비半臂도 남아있었지만, 답호褡護가 더 많이 이용되었지요. 조선시대에 이르면 고려高麗 당시의 반비半臂는 거의 이름만 남고 한국 고유의 조끼 형태로 바뀌며 답호褡護 역시 이를 응용한 옷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목 테두리가 ㄷ자 형태인 방령方領도 몽골에서 고려高麗로 유입되었습니다. 방령方領은 목테두리가 대칭이어서 빠르게 입기 편리해 유목민족이 선호한 옷이었습니다. 이 방령方領은 고려高麗로 유입되어 고려高麗 만의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로 반비半臂와 합쳐 방령반비方領半臂라는 외투 형태로 발전했고, 역으로 원元에 수출되었습니다.
- 원元에서 벗어나 고유의 의복을 만들다

약 100년 간의 지배 후 원元이 쇠퇴하고 명明이 등장할 때 고려高麗 역시 이 흐름을 따라 몽골에서 벗어나 옛 모습을 되찾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일단 변발辮髮을 상투로 바꾸고 발립鉢笠을 벗어던졌지요. 허나 원元에서 받아들인 발립鉢笠과 철릭帖裡이 너무 편리하고 따뜻해 완전히 없애고 예전으로 돌아간 건 아니었습니다. 대신 옛 고려高麗의 모습과 유사하게 변형했지요. 그 예시로 흑립黑笠이 있습니다. 발립鉢笠의 높이와 챙을 키우고 문라건文羅巾처럼 검게 칠한 모자이죠.

흑립黑笠은 처음에는 발립鉢笠처럼 가죽을 검게 물들여 만들고, 구슬이나 유리로 장식한 끈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별점을 두기 위해 대나무로 재질을 변경했습니다. 그것이 죽립竹笠으로 고려高麗 말에서 조선朝鮮 초에 사대부들이 쓰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조선朝鮮 건국 후에는 말총을 엮은 흑립黑笠을 만들어 표준이 되었는데, 그게 우리가 잘 아는 갓입니다.

남자는 흑립黑笠에 철릭帖裡을 주로 입었다면, 여자는 방령方領에 반비半臂를 입고 치마로 마미군馬尾裙을 입었습니다. 마미군馬尾裙은 말총으로 옆구리에 주름을 만든 치마로 고려高麗에서는 겉치마를 부풀려 볼륨감을 살리기 위한 속치마로 활용했지요. 하지만 명明에 마미군馬尾裙이 유행하며 명明의 여인들은 겉치마로 입고 다녔습니다.
- 추가된 미용, 봉숭아 물들이기

그리고 사족이지만, 몽골 지배기에 봉숭아로 손톱을 물들이는 기록이 처음 나옵니다. 충선왕 시기에 원元으로 끌려간 궁녀가 봉숭아로 물들인 손톱을 간직하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했다는 전설이 기록으로 전해지거든요. 한국에서 봉숭아로 손톱을 물들였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이 때니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 고려高麗 말에서 전반기 전체에 봉숭아로 손톱을 물들이는 문화가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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