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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始 : 고려 역사] 막장에 이은 막장

by 롱카이 202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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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 전쟁으로 부상한 군벌

[주의 : 이 글에서는 무신정변의 최신 학설을 수용해 글을 적고 있습니다]

많은 전쟁을 겪으며 비대해진 고려 군벌
많은 전쟁을 겪으며 비대해진 고려 군벌

기존 학설은 단순히 문벌귀족이 무신을 하대한 것에 분노해 정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신 학설은 수차례 전쟁으로 군벌이 강성해졌는데 보상과 제도가 이에 미치지 못해 생긴 불만이 터진 것으로 해석합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여요전쟁과 여진정벌, 묘청의 난에 이르는 대규모 전쟁으로 군대 규모는 커지고 군대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여러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고려는 여전히 문신 중심 사회였다
여러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고려는 여전히 문신 중심 사회였다

허나 고려는 개국 때부터 문치주의를 표방하던 국가라 문신의 지위가 높았고, 이는 묘청의 난 진압 이후에도 유지되었습니다. 이에 무신은 공을 세웠는데도 보상과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해 불만이 쌓였습니다. 황제 의종은 무신의 불만을 눈치챘고, 안그래도 묘청의 난 진압으로 하늘을 찌르는 문벌 귀족들을 견제하고자 무신들을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종은 기껏 무신들을 끌어들이다 문벌 귀족과 타협하며 무신들을 버리려고 했고, 이에 분노한 무신들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무신정변입니다.
 
 
 

  • 갑작스러운 무신천하

갑작스럽게 정권을 잡은 무신은 살기 위해 서로 제거했다
갑작스럽게 정권을 잡은 무신은 살기 위해 서로 제거했다

문제는 무신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문신이 너무 많이 죽어 힘의 균형이 무신으로 지나치게 쏠렸습니다. 이건 무신도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무신은 그저 혜택과 권력을 향상시키길 원했는데 갑자기 자기가 실세가 되어버려서 당황한 것이죠. 허나 야속하게도 세상에 권력을 나눠 가질 수는 없습니다. 왕 뒤에 있는 권자는 하나 뿐이었고, 권자에 앉지 못한 자는 제거되는 것이 무신 사회의 순리였죠. 이에 무신들은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였습니다.

무신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백정을 착취했다
무신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백정을 착취했다

권자는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그리고 최씨 가문으로 옮겨가며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중앙에서 권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살육하자 지방을 살펴 볼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군인들을 먹여 살리고 세력을 불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지방에서 어떻게든 쥐어짜 마련했지요. 즉, 지방 백정들은 살기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이에 분노한 지방 백정들은 중앙에 반기를 들며 봉기를 일으키죠.

고려시대 민란
고려시대 민란

망이 망소이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백정들은 농기구를 들어 무신정권의 병사들을 공격했습니다. 무신정권은 이 난을 막기 급급했고요.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경西京에서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고 동경東京에서 신라부흥운동이 일어나며 고려高麗가 쪼개질 뻔했습니다. 그 와중에 거란족 유민들이 금金의 탄압을 피해 고려高麗를 침공하는 보너스 이벤트도 있었고요. 그야말로 더 내려갈 것도 없고 답도 없는 막장 상황이었죠. 이 답은 해결되긴 합니다만, 그 답안이 더 한 막장이었습니다.
 
 
 

  • 전국을 초토화시킨 몽골의 침입과 무신정권의 몰락

몽골 침입
몽골 침입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희대의 막장 상황이죠. 앞으로 가며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 죽이고 땅을 얻는다는 참으로 단순무식한 확장 정책을 가진 몽골이 전세계를 유린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당연히 고려高麗도 몽골의 말발굽에 초토화되었습니다.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불타고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었지요. 문제는 무신정권은 몽골의 침입에 맞써 싸우지도 않고 강도江都(현 강화도)에 틀어박혀 군대를 보존하면서 그 와중에 세금 수탈은 열심히 했습니다. 배를 타고 내륙으로 가 세금만 싹 긁어갔죠.

삼별초의 난
삼별초의 난

당연히 백정들이 엄청 싫어하겠죠. 백정들은 무신정권의 배가 보이면 달려들어 불태우고 병사들을 제거하는 등 강력히 저항했습니다. 무신정권은 이에 백정들을 학살하는 강수를 두었으나 이럴 수록 백정들의 분노는 커졌고, 세금이 잘 안 걷어지며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이에 황제 고종은 몽골과 손을 잡아 고려高麗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개경開京으로 되돌아갔고, 홀로 남은 무신정권은 삼별초의 난을 일으키며 발악했지만, 결국 몽골에게 패배했습니다.

몽골의 일본 침입에 동원된 고려
몽골의 일본 침입에 동원된 고려

쿠빌라이 칸의 지시로 원元으로 이름을 바꾼 몽골의 지배 하에 들어간 고려는 몽골의 일본 침입에 동원되는 등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 외에도 영토 일부를 상실하고 수많은 인재와 자원을 수탈당했습니다. 고려 왕이 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건 덤이었고요. 이 때 몽골의 입이 되는 다루가치들이 부상하죠.

몽골의 무역로
몽골의 무역로

물론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몽골은 광대한 영토에 신속한 무역로를 만들고 교초라는 기축통화를 만들어 전세계에 거대한 유통망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고려高麗는 그 혜택을 톡톡히 받았죠. 몽골 지배 하에 놓인 고려高麗 뿐만 아니라 일본日本 등 자주국도 교초를 사용했고, 팍스 몽고리아 안에 세계는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 몽골이 물러나니 각종 놈들이 날뛰다

홍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그리고 그 평화는 몽골이 쇠퇴하며 처참히 깨졌습니다. 기축통화인 교초는 그저 종이 쪼가리가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군벌이 들고 일어나 서로 살육하는 야생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중원에서는 한족들이 붉은 두건을 쓰고 봉기한 홍건적의 난이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홍건적은 몽골군을 토벌하며 북상했고, 그러다 일부 홍건적은 몽골의 침입을 받고 고려高麗로 도망쳐 서경西京을 약탈해갔습니다. 왜 하필 고려高麗냐면 몽골에 복속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몽골이나 고려高麗나 별반 차이없다는 논리였죠.

일본도 난세로 왜구들이 들끓었다
일본도 난세로 왜구가 들끓었다

고려高麗에서 홍건적이 난리를 치다 진압될 무렵, 중원에서는 홍건적이 몽골을 몰아내고 명明을 세웠습니다. 만리장성 너머로 밀려난 몽골은 전성기로 되돌아갈 기회를 찾고 있었죠. 나하추 역시 그런 야심을 품은 몽골 장수로 명明을 치기 전에 고려高麗를 복속시키자는 생각으로 고려高麗를 침공하다 이성계에게 토벌당했습니다. 북방이 조용해질려는 순간, 이번에는 남쪽이었습니다. 몽골이 이끄는 경제가 무너지자 일본日本 경제는 박살났고 남조와 북조가 대판 싸우는 남북조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이 난세에 왜구도 등장해 고려高麗와 명明 해안과와 내륙을 뒤집었죠. 이 왜구들을 최영과 이성계가 진압하고, 이어 몽골인들이 말을 키우기 위해 고려高麗로부터 뺏은 제주濟州를 탈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주濟州에 정착해 살던 몽골인들이 반발해 목호의 난을 일으켰고, 이를 고려군이 진압했습니다.
 
 
 

  • 답도 없는 나라를 어찌할꼬

고려의 명운이 끊어진 선죽교 사건
고려의 명운이 끊어진 선죽교 사건

이처럼 무신정변에서 시작한 고려高麗 후반부는 전쟁에 전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막장 상황이었습니다. 난세가 이어지니 백정들은 살기 힘들어졌고, 폭력을 휘두루는 단체를 피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백정을 다시 모으고 평화를 되찾고 싶어도 주변에서 난리가 나니 더 깊은 혼세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이 혼란상에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사대부는 두 파로 나뉘었습니다. 고려를 유지하려고 한 세력과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자는 세력이었습니다. 두 세력은 첨예하게 대립했고, 정치적 갈등 끝에 고려를 유지하려고 한 세력의 수장인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암살당하며 개혁파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고려高麗는 몇년에 걸친 난세 속에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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