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천재, 이토카와 히데오
1935년 도쿄제국대학 공학부 항공학과를 졸업한 이토카와 히데오는 나카지마 비행기에 취업해 일본제국의 항공기를 설계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30년대 당시 일본제국 군부는 중국 침공을 준비했기에 나카지마 비행기에 여러 전투기 개발을 의뢰했고 이토카와 히데오는 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투기를 개발했으며 전투기 설계를 도맡았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독일국(나치 독일)이 개발한 제트엔진을 청사진만 받았음에도 이를 보고 혼자 독자적으로 제트엔진을 설계한 천재적인 면을 보였습니다. 이토카와 히데오는 일본군의 전투기 설계를 담당했으며 부족한 인재 수에도 일본제국 군부는 이토가와 히데오 덕분에 전투기를 계속 개발 및 생산하며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도쿄대 교수, 이토카와 히데오
천재적인 능력을 보유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도쿄제국대학 공학부에 조교수로 임명되었고 1945년 일본제국이 전쟁에 패배한 후 1948년 일본국의 도쿄대 공학부에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허나 일본국은 패전국으로 비행기를 함부로 개발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는 의료기기 등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나 1952년 시카고대학교 메디컬부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그는 새로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는 미군이 인간을 우주로 보낼 로켓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시카고대학교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그는 일본을 통치하던 미군정을 설득했습니다. 미군정은 당시 최첨단기술이자 전략병기인 로켓을 일본이 독자개발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는 순수하게 천문우주 연구를 위한 과학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로켓이라고 설득했습니다. 특히 1957년부터 1958년은 전세계 천문학계가 지구관측년으로 잡은 해이기에 이를 핑계삼아 로켓 개발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해냈습니다.
허나 1952년을 끝으로 미군정은 물러나고 일본국 주권이 회복되었습니다. 일본국 관료들은 로켓 개발에 큰 관심이 없어 그의 계획은 무산될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회를 노렸습니다. 1954년 일본 정부는 이토카와 히데오를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원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객기 엔진을 개발하라고 했지만 이토카와 히데오는 미래는 로켓이라며 정부를 끝없이 설득했습니다.
- 펜시루 로케토ペンシルロケット
1955년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는 고쿠분지시 연구원들을 모집한 후 작은 로켓을 연구했습니다. 연구원들이 연구한 로켓은 높이 23cm 지름 1.8cm 무게 200g으로 연필만한 크기의 로켓이었습니다. 연구원들 역시 이 로켓을 펜시루 로케토ペンシルロケット라 부르며 펜슬로켓으로 명명했습니다.
1955년 연초부터 연구원들은 고체연료를 탑재한 펜시루 로케토를 개발했습니다. 미국이나 소련과 달리 일본은 V2 로켓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하나도 얻지 못했기에 처음부터 설계하고 연구개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로켓부터 시작해 하나씩 독자연구로 개발했습니다. 1955년 4월 12일부터 4월 23일까지 연구원들은 펜시루 로케토를 발사하며 로켓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자료부터 수집했습니다. 발사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연구원들은 더 큰 크기로 개발해갔습니다.
- 한단계씩 발전한 일본 로켓기술
1955년 3월부터 4월까지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와 연구원들은 축소모형인 펜시루 로케토로 다양한 발사실험을 하며 기초부터 하나씩 자료를 축적해갔습니다. 그리고 1955년 4월 펜시루 로케토 발사가 성공적이자 펜시루 로케토보다 더 큰 베이비 로케토 개발에 나섰습니다.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와 연구원들은 크기 120cm의 베이비 로케토를 개발했습니다. 1955년 8월 베이비 로케토를 완성했고 이를 발사했습니다. 베이비 로케토 역시 축소모형으로 로켓발사실험한 것이며 이토가와 히데오 교수와 연구원들은 충분한 자료를 축적했다고 생각해 본격적인 로켓 개발에 나섰습니다.
- 카파 로케토カッパロケット
1956년 그들은 고체연료를 추진연료로 사용하는 카파 로케토カッパロケット를 개발했습니다. 카파 로케토는 성공적으로 60km 대기권에 진입했으며 대기의 상태를 조사하는 관측기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카파 로케토 성공은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1956년까지 50km 이상 대기권으로 로켓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소련, 영국, 일본이었고 독일국의 V2 로켓 자료를 가진 세 나라들과 달리 일본은 순수 독자개발로 60km 대기로 로켓을 발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더 대단한 사실은 미국, 소련, 영국은 V2 로켓을 따라 쉬운 액체연료를 추진연료로 사용했으며 고체연료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실제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 나라 모두 고체연료를 연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허나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와 연구원들은 로켓용 고체연료를 독자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액체연료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 고체연료 기술확보는 일본이 세계적인 로켓기술 보유국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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