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소련의 핵보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국, 일본제국, 미국은 핵폭탄 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핵폭탄은 그 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적국을 완전히 파괴해 끝이 나지 않는 전쟁을 멈추는 꿈의 무기로 여겨졌고 세 나라들이 핵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중 미국은 풍부한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맨해튼 계획으로 미국, 대영제국, 캐나다, 프랑스 기술자들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1945년 7월 16일 세계최초의 핵폭탄 트리트니 개발에 성공하며 맨해튼 계획은 성공했고 미군은 일본제국에 두발의 핵폭탄을 투발해 일본제국의 전쟁의지를 꺾었습니다.
히로시마, 나카사키 핵폭탄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소련 역시 미국을 두려워했습니다. 게다가 1945년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전세계 바다에 미해군을 배치하고 핵폭탄을 투발할 폭격기들을 개발했습니다. 1952년 첫 비행에 성공한 B-52 전략폭격기는 핵폭탄을 탑재한 폭격기로 적국을 위협했습니다.
1945년부터 미국이 핵폭탄으로 소련을 압박하자 소련 역시 핵폭탄을 개발했습니다. 소련은 영국의 스파이를 통해 핵폭탄 자료들을 입수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승전하며 독일국의 핵개발 자료들도 얻어 이를 종합해 1949년 8월 29일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 영국의 핵개발, 허리케인 작전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대영제국이라는 강대국 지위를 유지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과 함께 맨해튼 계획으로 핵개발에 참여했습니다. 1944년 미국 대통령과 대영제국 정부는 비밀리 조약인 하이드 파크 협약으로 미국이 맨해튼 계획으로 핵개발에 성공하면 핵무기 기술을 이전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허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드 파크 협약이 세간에 밝혀졌고 미국 의회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뒤 1946년 맥마흔 법을 채결해 미국이 개발한 핵폭탄 기술은 이전하지 않는다는 법을 만들어 영국을 배신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대영제국은 미국과 대영제국의 기밀들을 소련에 몇차례 넘긴 적이 있었기에 미 의회는 핵폭탄 기술이 소련으로 가는 것을 우려해 맥마흔 법을 실행했지만 영국 입장에서는 배신이었습니다. 분노한 영국은 독자 핵개발에 들어섰고 허리케인 작전으로 명명했습니다. 영국은 원자력연구기관AERE를 설립하고 오스트레일리아와 협약해 허리케인 작전을 실행했습니다. 1952년 영국은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며 미국, 소련에 이어 핵폭탄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 주권은 핵폭탄에 있다
핵폭탄을 보유한 미국, 소련, 영국은 전세계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을 이끌며 저마다 세력권을 응집하고 적국을 핵폭탄으로 협박했습니다. 영국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NATO 회원국을 핵폭탄으로 협박해 영국의 말을 듣게 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영연방으로 결합하며 대영제국 몰락 후에도 여전히 강한 국력을 과시했습니다. 프랑스 역시 여전히 식민지를 보유하며 강성함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체제는 1952년 제2차 중동전쟁으로 깨졌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두고 벌어진 전쟁인 제2차 중동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를 차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편에 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에 이집트는 항의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항의를 무시하고 수에즈를 점령했습니다. 이에 이집트를 지원하던 소련은 런던과 파리를 핵폭격한다고 협박했고 미국 역시 철수하지 않을 경우 핵우산을 취소한다고 협박했습니다. 영국은 핵폭탄은 있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없어 대륙간탄도미사일МБР로 런던을 폭격가능한 소련의 협박에 철수했고 프랑스는 아예 핵폭탄이 없어 바로 철수해야했습니다.
- 푸른 날쥐, 프랑스의 핵개발
1945년부터 핵개발을 조심스럽게 추진한 프랑스는 1954년 수에즈 위기로 국력 한계를 실감했고 독자 핵개발을 추진했습니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된 샤를 드 골은 푸른 날쥐라는 암호명으로 프랑스 핵개발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샤를 드 골은 NATO를 미국-영국-프랑스가 지휘하는 체제로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프랑스가 핵폭탄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했고 프랑스를 위해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알제리 전쟁 동안 알제리를 완전히 프랑스 영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핵폭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58년부터 샤를 드 골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비판하고 프랑스 독자 핵보유를 천명했습니다. 미국과 소련, 영국 모두 프랑스의 핵개발에 당황해 프랑스를 회유했지만 샤를 드 골은 세 나라를 강하게 비판하며 핵개발을 뚝심있게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1960년 2월 프랑스는 핵폭탄 개발에 성공해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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