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가 바라본 목표, 달
수차례의 우주경쟁에서 소련은 미국보다 우위에 다다랐습니다. 이에 미국 존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 달에 인간을 보낸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NASA에 전폭적인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소련 역시 첩보로 미국이 달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달에 인간을 보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 NASA의 대형 계획, 아폴로 계획
존 케네디 대통령은 연이은 미국의 부진에 유인달탐사선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내심 그도 불안해했습니다. 지구 궤도로 인간을 보내는 것도 어려운 실정에 멀리 떨어진 달로 사람을 보내는 것은 아득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과 합작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NASA 역시 유인달탐사선 계획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허나 존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 이후 수많은 인재들이 NASA에 지원했으며 노스 아메리칸과 보잉 등 미국 항공기업들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은 유인달탐사선 개발 하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얼굴마담으로만 소모할 뿐 우주선 개발에 참여시키지 않은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도 유인달탐사선 개발에 초대받았습니다. 그의 임무는 달에 인간을 보낼 강력한 추진체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NASA 직원들은 가장 안정적인 새턴 로켓을 유인달탐사선 추진체로 선택했고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와 연구진들은 이 새턴 로켓을 달까지 보낼 정도로 강력한 추진체로 개량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달에서 오래 머물며 도킹 등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실험인 제미니 계획을 발동했습니다. 제미니 계획의 목표는 다른 우주선끼리 도킹해 연결함으로서 넓은 우주공간을 마련하고 그 우주공간에서 장기간 머물며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지구로 사람이 왕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코롤료프의 도전, 소유즈 계획
한편 NASA에서 대형 계획을 수행함을 들은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당장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유인달탐사선 계획을 승인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NASA에 천문학적인 자금지원을 하는 미국과 달리 소련은 자금도 부족하고 한정된 자금을 인민에게 배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흐루쇼프 서기장은 유인달탐사선 개발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자금을 지원하는 소련군과 다른 추진체 연구원들 모두 대륙간탄도미사일МБР에 집중했지 유인우주선 개발은 선전용 그 이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열약한 환경에서도 언젠가 달에 가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고 달에 소련 우주비행사를 보낼 계획을 스스로 수립했습니다. 그것이 소유즈 계획으로 비좁은 기존 유인우주선보다 더 넓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큰 우주선을 우주로 날릴 추진체 개발과 달 궤도에 안착하는 거대한 우주선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존드 계획으로 달 궤도에 무인우주선을 보냈습니다. 존드 우주선은 수차례 실패했지만 1968년 12월 14일 존드 5호Зонд-5가 달 궤도에 안착한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허나 그 이후로 자금확보를 못해 더이상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 첼로메이의 꿈, 프로톤 로켓Протон
한편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제자이자 경쟁자이던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역시 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련공군을 위해 P-36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МБР을 개발했으나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깨닫고 달탐사선 발사체로 응용했습니다. 그는 프로톤 발사체를 개발해 소련의 우주개발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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