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지배자 켈트
지중해 지역에서 수많은 문명들이 지중해 패권국을 두고 이권 다툼을 하던 시절 알프스 산맥 너머 거대한 산림에는 새로운 민족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켈트인으로 발칸반도 북부 도나우 강 인근에서 살던 켈트인들은 동유럽 평원과 발칸반도 동부를 지배한 스키타이인의 지배를 피해 알프스 산맥 북부 산림지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후 켈트인들은 스키타이인들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동방으로 확장해 폴란드 비스와 강까지 진출해 알프스 산맥 북부 지역의 주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켈트인들은 방대한 영토를 차지했지만 그들은 씨족사회로 움직이던 세력으로 각각의 세력은 약했습니다. 켈트인은 씨족의 우두머리인 나이 많은 남성의 지도 하에 씨족이 함께 모든 것을 움직이는 작은 사회를 이루었고 그들은 종족의 보전을 위해 적의 침임을 막는데 그들의 수고를 들였습니다. 켈트인들은 씨족 마을을 형성한 후 마을 경계로 나무 울타리나 돌담을 쌓아 방벽을 쌓아둠으로서 맹수와 적의 침입으로부터 그들을 지켰습니다. 켈트인들은 씨족 단위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동이 편리했고 그 덕분에 유럽 대륙의 여러 곳으로 확장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씨족 단위로 움직이는 켈트인들은 결국 인구 수가 적어 경쟁에서 불리했습니다.
켈트인들은 인구 수가 적었고 농업으로 생활했지만 그들은 낙후된 농업 기술로 충분한 양의 농작물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켈트인들은 농업으로 많은 인구를 부양하지 못해 인구 수가 충분할 여건이 되지 않았으며 언제 적의 침입으로 씨족이 전멸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켈트인들은 전사를 양성해 적으로부터 씨족을 지키고 약탈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켈트족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전사로 성장했고 남녀 모두 적극적인 전쟁으로 용맹을 펼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켈트족 전사들은 웃통을 벗고 바지를 입으며 투창과 장검, 대형 방패로 무장했습니다. 일부 대장급 켈트인들은 미늘갑옷과 투구로 무장해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더불어 켈트족의 기병은 마차를 이용하는 기병과 말 위에 올라탄 기병 두 기병을 운용해 돌격을 담당했습니다. 켈트족은 유럽의 전투민족으로 드넓은 유럽 대륙을 종횡무진했습니다. 켈트 신화는 이런 상황 속에 그들의 민간 신앙으로 탄생했습니다.
- 켈트 신화
전사민족이었던 켈트족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고 큰 세력은 씨족의 연합 단위에 머물렀습니다. 때문에 켈트족은 그들의 문화를 기록할 문자와 문화가 없었고 그들의 신화는 구전으로만 전해졌습니다. 덕분에 켈트 신화는 동화처럼 이야기 단위로 전해져내려왔고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이 훗날 문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켈트 신화는 주로 숲에서 활동한 켈트족들이 마주한 숲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주 배경으로 작은 날개가 달린 요정과 나무의 정령이 켈트 신화에 빈번히 등장합니다. 거기에 마법을 쓰는 세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켈트 신화의 근간을 이뤘고 켈트 신화의 이야기는 전사인 영웅이 적과 마법의 존재와 싸우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로 전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마법 물품이 등장하는데 이는 켈트 신화의 큰 특징이 되었습니다.
- 위태로운 켈트 문화
켈트족은 전성기 시절 부족이 연합해 에트루리아와 로마 왕국을 침공하고 카르타고를 공격했을 정도로 강성한 세력이었지만 역사는 켈트 편이 아니었습니다. 강성해진 로마 공화국이 북진하며 야만족이었던 갈리아 지역의 켈트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했고 북동쪽에서는 게르만족이 이동했습니다. 특히 로마 공화국은 수많은 민족들을 흡수하며 로마 제국으로 성장했고 로마 제국을 위협하는 켈트족에 대한 소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로마군은 번번히 켈트족과 전쟁을 벌였고 켈트족은 뛰어난 전투능력으로 로마군에게 패배를 안겼습니다. 이에 로마 제국은 강력한 무기인 물량을 쏟아부어 켈트족을 공격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명장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수많은 로마군을 소모시키며 켈트족을 소탕해나갔고 켈트족의 근거지인 갈리아 지역을 로마 속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로마 제국은 켈트족에 로마 문화를 전파했고 이로서 대륙 켈트족의 명맥은 끊겨 로마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을 벌이며 갈리아 지역의 켈트족을 소탕했고 브리타니아 지역에 있는 켈트족도 소탕하려고 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두차례의 브리타니아(현 영국 섬) 상륙으로 켈트족들을 소탕했지만 브리타니아 지역 켈트족의 대대적인 반란으로 결국 로마 제국은 브리타니아 지역에서 철수했습니다. 덕분에 켈트 문화가 사라진 갈리아(현 프랑스) 지역의 켈트족과 달리 브리타니아와 아일랜드 지역에 켈트족 문화가 남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브리타니아 지역은 후에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켈트족 문화를 거의 상실했고 아일랜드가 켈트족 문화를 마지막으로 품은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남은 켈트족 신화는 아일랜드와 브리타니아 서부 지역 일부에서 구전되며 아일랜드 신화가 켈트 신화의 대표주자가 되었습니다.
'역사 > 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화의 시대 고찰: 인도 신화 (6) | 2022.10.03 |
---|---|
신화의 시대 고찰: 이란 신화 (8) | 2022.09.30 |
신화의 시대 고찰: 로마 신화 (8) | 2022.09.26 |
신화의 시대 고찰: 그리스 신화 (10) | 2022.09.19 |
신화의 시대 고찰: 가나안 신화 (10) | 2022.09.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