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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공학/저멀리 우주로

[저멀리 우주로: 우주경쟁] NASA, 미국이 힘을 합치다

by 롱카이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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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r Sky

https://www.youtube.com/watch?v=vsi1ivi03sE

Star Sky

 

 

 

  • 미군끼리 따로 개발한 항공우주기술

미육군과 미해군은 따로 로켓을 연구했다
미육군과 미해군은 따로 로켓을 연구했다

우주선은 곳 로켓이며 로켓에 탄두를 달면 미사일이 되기에 우주선과 미사일은 기술적 측면에서 동일합니다. 이 때문에 로켓에 주목한 기관은 군대였습니다. 미국 역시 미군이 로켓에 주목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재들을 각 군대에 포섭해 연구소에서 연구를 지원했습니다.

미군이 따로 개발한 로켓들
미군이 따로 개발한 로켓들

미국은 미해군과 미육군, 미공군 심지어 해안경비대도 각각 따로 로켓을 연구했습니다. 이는 인재들을 흐트러놓은 것이었고 통일되며 빠른 로켓 개발이 아닌 제각각 로켓 개발을 야기했습니다. 미해군의 뱅가드Vanguard 로켓과 미육군의 주노Juno 로켓이 다른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

소련은 언제든 P-7에 핵탄두를 달아 공격할 수 있었다
소련은 언제든 P-7에 핵탄두를 달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해 세계를 놀라게 하자 미국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소련이 마음만 먹으면 P-7 로켓 위에 핵탄두를 탑재해 미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미군 내에서 비상이 났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이대로 미국 땅에 소련 핵공격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소련보다 먼저"를 구호로 미군을 합쳐 로켓을 빠르게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 NASA 탄생

NACA
NACA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주목한 곳은 NACA였습니다. NACA는 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의 줄임말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전투기를 만들며 미국의 최고 항공기술 연구기관으로 승격된 곳이었습니다. NACA는 컴퓨터도 없는 시절 베르누이 법칙을 정밀하게 추측해 양질의 비행기를 만드는 항공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기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주목했습니다.

NASA
NASA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NACA를 National Ad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으로 이름을 바꿔 NASA로 개명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승격해 아낌없는 지원을 행했고 미국 전역의 로켓기술 인재들을 끌어모아 고액연봉과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 있는 항공우주기관을 전부 NASA 산하기관으로 편제했습니다.

미국은 NASA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미국은 NASA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1958년 7월 29일 등장한 NASA는 바로 미국의 우주항공기술 및 우주개발을 담당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NASA의 GDP 2% 이상을 무조건 투입하며 막대한 돈을 투자했습니다. 미국은 미국이 제일 잘하는 돈으로 물량을 퍼붓기를 NASA에 수행했고 NASA 연구 예산은 소련 로켓 연구소를 아득히 능가했습니다. NASA는 넘쳐나는 돈을 등에 없고 본격적으로 우주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 작은 로켓 연구소들이 이끈 소련

Энергия
Энергия

반면 소련 로켓 연구소들은 작은 연구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기술자들은 열약한 환경 속에서 КГБ의 감시를 받으며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Энергия 기업에서 연구했고, 발렌틴 글루카쉬는 ОКБ-456에서, 미하일 얀겔은 ОКБ-586에서, 블라디미르 첼로메이는 ОКБ-52에서 각각 연구했습니다. 소련은 인재들이 많아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지만 인재들이 너무 많아 각각 연구방향이 다르다는 단점도 존재했으며 소련 정부는 이들을 모으지 않고 분리시켜 서로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소련 방위산업체 Уралвагонзавод
소련 방위산업체 Уралвагонзавод

그렇기에 인재들은 각각 다른 작은 연구소 방에서 연구를 했으며 연구소별로 배정된 연구예산 역시 적었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연구가 부족했으며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은 세르게이 코롤료프를 제외한 인재들은 대부분 소련군이 원하는 미사일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덕분에 소련은 탄도 미사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힘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소련은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본인의 꿈을 실현하며 우주개발을 홀로 이끌어갔고, 그 사이 미국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NASA에 집중해 대반격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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