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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화

신화의 시대 고찰: 중국 신화

by 롱카이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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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 넘어 등장한 문명
히말라야 너머 동아시아 지형
히말라야 너머 동아시아 지형

세계의 주요 문명은 히말라야 서쪽에 등장했으며 지중해와 평원을 다니며 서로 교류했습니다. 인더스 문명과 베다 시대 때의 인도인들도 교역로를 따라 그리스와도 교류를 하며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비슷해졌고 히말라야 서부의 문명은 점차 서로의 문화를 통합하는 제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반면 히말라야 동부는 끝없는 밀림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또한 히말라야 산맥의 북부는 톈산 산맥과 알타이 산맥이 타클라마칸 산맥을 둘러싸고 그 북쪽은 춥기로 악명높은 시베리아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으로도 아라칸 산맥이 가로막고 산맥을 넘으면 열대우림이 펼쳐져 고대에는 어느쪽으로도 히말라야 동부로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 삼황오제
황하 치수 사업을 하는 우임금
황하 치수 사업을 하는 우임금

때문에 히말라야 동부 중국 땅 여러 곳에서 독자적인 문명들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거대한 밀림으로 뒤덮인 땅으로 황하와 장강, 그 외 여러 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탄생했지만 밀림 때문에 서로의 문명 존재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점차 중국인들은 밀림을 없애고 영역을 확장했고 기후도 변화함에 따라 중국을 뒤덮던 밀림들이 사라졌습니다. 이에 황허黃河는 물을 흡수하고 물길을 지탱할 나무들이 사라져 강줄기가 불규칙적으로 변했습니다. 황허黃河는 하루에도 수십번 불규칙하게 물길 방향을 틀었고 강 주변의 사람들은 언제 익사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한 영웅이 제방을 쌓는 사업을 해 황허黃河 물길을 잡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아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사람은 우임금이고 우임금을 시작으로 하왕조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왕조 궁전
하왕조 궁전

현존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 시대 때부터 통치자가 계승되었습니다. 그 통치자들은 왕王의 칭호를 받았고 중국의 통치자인 국왕은 중국 신화를 만들어 국왕의 정통성을 백성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이로서 왕王의 계보를 설명하는 삼황오제 신화가 등장했습니다. 삼황오제 신화는 상나라 때부터 춘추전국시대에 끊임없이 재창조되었고 수많은 인물들이 삼황오제로 추대되어 숭배받았습니다. 이는 중화를 통일한 진시황이 삼황의 황皇과 오제의 제帝를 이어 황제皇帝로 등극하면서 삼황오제의 정신을 이어받았습니다.


  • 산해경
중국 밀림
중국 밀림

중국에 문명이 자리잡던 시절 중국은 거대한 밀림지대였습니다. 황허黃河 중류가 있는 화베이華北 지방은 건조한 평지가 되어 한족漢族들이 모여 사는 터전이 되었지만 그 외 지역은 아직 거대한 밀림이었습니다. 그 밀림 속에는 밀림 속에 부족 마을을 형성해 사는 수많은 이민족들과 짐승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왕조와 주왕조는 정복활동으로 밀림을 개척하며 그들의 영향권을 확장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밀림으로 자주 진출했습니다. 관리들과 사람들은 수도에서 동서남북으로 진출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민족과 생명체를 대면했습니다. 그들의 모험으로 한족漢族의 세계관은 확장되었고 그들의 세계관을 산해경에 세겼습니다.

산해경
산해경

산해경은 만들어진 연도가 정확하지 않지만 하왕조에서 전국시대에 이르는 시기 동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해경은 지리서로 지역의 특징과 이민족, 기괴한 짐승을 수록했습니다. 하지만 산해경의 지리와 실제 지리 사이에 괴리감이 있고 무엇보다 서왕모 등 신의 존재와 구미호, 짐조, 혼돈, 박, 봉황, 적유, 추오 등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생물이 등장합니다. 때문에 과거 중국의 학자들과 현재 학계에서 산해경은 지리서이지만 신화를 담은 저서로 취급합니다. 덕분에 산해경은 중국 신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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