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를 위한 종교
어떤 이는 종교 경전을 삶의 가이드라인 서적 중 하나라고 비유하더군요. 특히 여러 종교를 접하는 사람은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을 기회가 있고 세부 교리는 다 다르지만 결국은 잘 살자라는 기본 이념을 제시함을 밝혀냈습니다. 인간으로서 잘 살자의 개념은 간단하면서도 따지고보면 좀 불명확한 개념입니다. 이는 종교가 가진 장점이자 종교의 긍정적인 영향인 동시에 종교의 한계이기도 하죠.
- 결국은 인간이 선택하고 행하는 것
그렇다보니 어떻게 잘 사느냐를 두고 의견대립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더 잘 살기 위해, 더 윤리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시작한 의견 논쟁은 나중에는 그 본연의 뜻을 망각하고 파멸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경전 해석을 두고 교파와 학파가 나뉘어져 그들이 믿는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에게 평안을 제공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종교의 핵심은 묻히고 경전 어느 구절의 한문장도 되지 않는 문장을 두고 해석이 갈려 서로 싸우고 증오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분명 모든 종교에서는 증오와 분노를 멈추고 서로를 사랑하고 그 자체로 존중할 것을 명시하지만 신자들은 서로 분노하고 증오하며 종교를 무시하고는 신실한 교인이라고 자랑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 과학과 종교의 필요성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종교를 대체하는 수단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과학과 기술입니다. 본디 과학은 전능하신 주의 뜻을 감히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이슬람 과학자나 기독교 과학자, 불교&힌두교 과학자 모두 가장 신실한 신앙인이 과학을 담당하고 세상을 탐구했습니다. 이븐 시나, 이븐 알하이삼,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그레고어 멘델 모두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허나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을 알게되자 기술로 응용이 가능해졌고 편리를 제공하자 점차 인간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지금은 눈부신 기술이 오히려 종교경전에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신앙심이 약해졌습니다. 이는 현대 종교가 직면한 문제로 기술발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선택한 인류는 종교를 굳이 믿을 필요가 사라졌습니다.
- 약해진 종교 역할
과거에 종교는 단순히 믿음이 아닌 윤리 교육이었습니다. 때문에 종교기관은 가정교육과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사회의 중심축이었습니다. 종교시설이 곧 학교이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지식인인 종교인을 찾아가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절, 힌두교 사원, 조로아스터교 사원, 성당, 교회, 모스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윤리학교이자 지식을 알려주는 학교, 사람들과 만나고 행사를 즐기는 문화공간, 심지어는 의사들이 대기하는 병원 역할을 했습니다.
허나 기술이 발전하고 행정력이 기술과 함께 발전하며 중앙정부가 교육, 의료, 여가를 담당하자 종교시설이 할 역할이 감소했습니다. 동아시아는 유학이 강한 중앙집권사회를 만들어 종교 역할을 빠르게 대체했습니다. 중국은 당에서 송으로 넘어갈 때, 베트남은 이미 남월시대 때, 한국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갈 때, 일본은 전국시대 이후 에도시대 때 유학이 강한 중앙집권화를 이룩해 중앙정부가 교육과 의료, 생활을 담당했습니다. 유럽은 왕권신수설 이후에, 이슬람은 21세기에 정부가 종교 역할을 대체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종교시설의 힘이 약해지고 자연스럽게 종교도 힘을 잃었습니다.
- 종교는 마냥 필요없는 악폐습인가
인류 갈등의 상당수는 (표면적으로는) 종교 믿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서 기반합니다. 또한 과학이 발달해 세상원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종교기관이 담당하던 사회윤리교육을 국가가 담당하며 종교는 더더욱 장점이 희석되고 단점인 종교갈등만 부각되어 악폐습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가 마냥 불필요한 폐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대 윤리관 모두 종교에서 비롯된 것은 부정할 수 없죠.
https://blog.naver.com/jeichj/140182564050
또한 종교를 폐단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종교 경전에 심취한 극단주의자들의 난동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엄밀히 말하면 "종교의 문제"보다는 "종교인의 문제"인 것 같네요. 종교인으로서 가지면 좋은 덕목은 종교에 심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종교를 맹목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위 라이프 오브 파이 해설 링크에도 말하지만 맹목적 신앙도, 극단적인 베타도 할 필요 없이 그저 삶을 살아가는데 지침서로 두고 함부로 미워하거나 시기하지도 말고 모두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르며 신실하게 살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종교의 미래는
발전하는 과학과 세상을 실제로 바꾸는 기술, 강해진 정부 영향력, 그간 종교갈등의 폐해 3중이 종교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했으며 종교는 현재 많은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아직 근간인 상처받은 자들의 마음을 보살피고 따뜻하게 품으라는 이념을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 이념이 종교가 지금까지 존립하는 이유이며 이를 잘 살리면 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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