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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교

[종교의 이해: 아브라함 종교] 교회 대분열

by 롱카이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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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총대주교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프랑크 왕국(빨강)과 비잔티움 제국(파랑)과 우마이야 칼리파국(초록)
프랑크 왕국(빨강)과 비잔티움 제국(파랑)과 우마이야 칼리파국(초록)

서로마제국 멸망 후에 로마 총대주교는 더이상 신변을 보호할 존재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이때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 총대주교의 신변보호에 힘을 썼지만 비잔티움 제국도 북방에서 불가르 민족이 침공하고 동방에서 이슬람이 혜성처럼 등장해 아라비아와 레반트를 지배하자 자신을 보호하기에도 급급했습니다. 그 사이 일부 게르만족은 프랑크 왕국을 건국해 멸망한 서로마제국의 관습을 서서히 복원했습니다.
 
 

  • 프랑크 왕국과 비잔티움 제국 사이 로마 총대주교
비잔티움 제국
비잔티움 제국

그래서 로마 총대주교는 보호를 요청할 대상을 비잔티움 제국으로 할지, 프랑크 왕국으로 할지 고민했습니다. 로마제국이자 세련된 기독교 문화의 정수를 가진 비잔티움 제국은 매력적인 협조자였지만 이슬람의 침공을 막는데 급급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당장 거리가 가까운 나라 중 가장 강한 나라였지만 기독교에 대해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총대주교는 둘 사이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롬바르드족을 격퇴하는 프랑크군
롬바르드족을 격퇴하는 프랑크군

그러다 롬바르드족이 로마를 침공해 로마 총대주교를 위협하자 프랑크 왕국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 총대주교를 수호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로마 총대주교는 프랑크 왕국을 로마 총대주교를 수호할 새로운 서로마제국으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비잔티움 제국은 강성했습니다. 이슬람 침공을 받는 도중에도 비잔티움 제국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로마 총대주교는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 이슬람 침공을 막은 비잔티움 제국 황제 레오 3세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칼리파국 모스크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칼리파국 모스크

강성해진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빠른 정복활동으로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며 정통기독교 외의 기독교들을 단죄했습니다. 콥트 정교회와 아시리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파괴하며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었다는 기독교 이단논리를 이슬람이 단죄했습니다.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애매모호한 신약성경 대신 완전무결한 쿠란القرآن을 앞세워 비잔티움 제국과 프랑크 왕국의 기독교인들, 즉 방황하는 자들을 구원하자는 이념으로 기독교 국가를 침공했습니다.

이슬람의 침공을 막아낸 레온 3세
이슬람의 침공을 막아낸 레온 3세

허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온 3세는 이슬람의 침공을 모두 막아냈습니다. 문제는 강성한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지속된 침공을 막느라 국가소진이 심각했고 이탈리아에서 발을 빼야했다는 점입니다. 그 점은 비잔티움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로마 총대주교 모두 지키는 기독교 종주국 지위가 훼손된 것으로 레온 3세는 이 멍에를 심각한 불명예로 여겼습니다.
 
 
 

  • 성상파괴령
예수 성상
예수 성상

그래서 그는 기독교를 회복할 무언가를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성상파괴령이었습니다. 북방 이민족의 침공에 시달리던 교회는 아예 이민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자는 판단으로 이민족들을 교화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맹에 지식도 없는 이민족들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키기 위해 예수와 마리아와 사도를 세긴 성상을 이용했습니다.

레온 3세
레온 3세

성상을 이용하다보니 이민족들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키는 것은 빨랐습니다. 허나 이민족들은 기독교를 믿기보다는 사실상 성상을 우상으로 숭배하며 그들의 초기 종교처럼 소원을 비는데 이용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교리가 아니었기에 레온 3세는 이 폐단을 척결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성상파괴운동
성상파괴운동

726년 레온 3세는 교회에 있는 성상을 모두 파괴하라는 성상파괴명령을 내렸습니다. 황제 명에 따라 병사들과 충실한 자들은 교회의 성상들을 가리지 않고 파괴했습니다. 또한 성화상을 제작하거나 소유하는 것 또한 금지했습니다. 성상파괴운동은 비잔티움 제국의 민중에게 큰 반발을 샀으나 명령한 주체가 황제였기에 거역하지 못했습니다.
 
 
 

  • 비잔티움 제국에 반기를 든 로마 총대주교 그레고리우스 3세
로마 총대주교 그레고리우스 3세
로마 총대주교 그레고리우스 3세

레온 3세는 로마 교회도 성상을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떨어져 프랑크 왕국과 가까워질 기회를 노리던 로마 교회에게 성상파괴운동은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로마 총대주교 그레고리우스 3세는 성상파괴운동을 비판하며 성상파괴운동을 하는 자는 누구든 교회에서 축출하겠다며 도발했습니다.

파괴된 성상
파괴된 성상

이에 분노한 레온 3세는 이탈리아 남부인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현 세르비아 지역인 일리리쿰을 로마 총대주교 관할지역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관할지역으로 임명하며 보복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관할지역에서 성상파괴운동을 지속했습니다. 이에 많은 교회들이 반발해 교인들이 로마 총대주교 관할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 로마 총대주교 분리와 교회 대분열
카롤루스 대제 임명
카롤루스 대제 임명

레온 3세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는 성상파괴운동으로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자리까지 겸하며 동시에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재산을 황제 재산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총대주교 그레고리우스 3세는 성상파괴운동을 반대했고 많은 지지자들이 로마 교회로 이주했습니다. 힘을 얻은 그레고리우스 3세는 프랑크 왕국을 이끈 국왕 카롤루스 대제를 황제로 임명해 서로마제국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

몇년 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서로마제국을 건국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수호하는 비잔티움 제국과 로마 총대주교를 수호하는 신성로마제국 두 로마제국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이끄는 교회는 동방 정교회로, 로마 총대주교가 이끄는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 나뉘어 교회가 두 교회로 분리되었습니다. 성상파괴운동 종료 후에도 두 교회는 분리된 체 유지되었으며 성상파괴운동으로 벌어진 교회 대분열로 기독교는 또다시 분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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