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발라 참극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칼리파 무아위야 1세는 사망 직전 야지드 1세를 다음 칼리파로 임명했습니다. 이에 혈통과 신분과는 상관없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만이 칼리파가 되야한다고 주장한 카와리지الخوارج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혈통이 칼리파가 되야한다고 주장한 세력이 반발했는데 이에 무아위야 1세는 칼로 그들을 협박하고 강제로 야지드 1세를 다음 칼리파로 임명했습니다.
그 후 무아위야 1세 사후 반란조짐이 보이자 야지드 1세는 반란 추종자들을 학살하고 주민들을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야지드 1세를 지지해야 했으며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장남인 후세인 이븐 알리를 공격했습니다. 카르발라كربلاء에서 후세인 이븐 알리와 지지자들은 공격을 받아 모두 전사했습니다. 이 사건이 카르발라 참극입니다.
- 2차 피트나 동안 순나أهل السنة와 쉬아شيعة가 분열되다
카르발라 참극으로 후세인 이븐 알리에 대한 동정여론이 생겼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후계자가 칼리파가 되야한다는 세력은 야지드 1세의 탄압에 분노해 쉬아트 알리의 뜻을 따라 쉬아شيعة라는 이름으로 저항했습니다. 아부 바크르 아드시스크의 손자인 압둘라 빈 앗 주바이르는 후세인 이븐 알리의 자녀를 보호하고 쉬아شيعة를 모아 시리아와 메카مكة المكرمة에서 저항운동을 펼쳤습니다. 무크타르 빈 아비 우바이드 앗 타카피 역시 쉬아شيعة를 지도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속속이 반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쉬아شيعة도 카와리지الخوارج도 아닌 자들은 자연스럽게 관습을 따르는 자라는 뜻으로 순나أهل السنة가 되었는데 순나أهل السنة들도 야자드 1세에 반발했습니다. 메디나المدينة المنورة에서는 압둘라 빈 한달라 알 가실은 욕심이 많고 사치스러운 야지드 1세는 칼리파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스스로 칼리파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카와리지الخوارج도 야지드 1세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4개의 세력으로 분열되어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내전은 결국 우마이야 칼리파국이 다시 평정하며 끝났고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지어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그리고 패배한 쉬아شيعة는 우마이야 칼리파국을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카와리지الخوارج도 많은 피해를 입고 숨어들었습니다.
- 이맘을 중심으로 모인 쉬아شيعة
도망자 신세가 된 쉬아شيعة는 이슬람을 잘 아는 이슬람 신학 선생님인 이맘을 따랐습니다. 이맘은 지식이 있는 자였기에 무지한 자들을 현명하게 인도했고 뿔뿔이 흩어진 쉬아شيعة 무리에는 꼭 한명의 이맘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쉬아شيعة에게 이맘은 큰 역할이었고 이맘의 권위가 강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쉬아شيعة는 선대로부터 선택받은 이맘, 혹은 주가 직접 고른 이맘들이 쉬아شيعة를 이끄며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면 선택받은 이맘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주의 구원을 받고 다른 자들은 지옥에 간다는 교리를 정립했습니다. 즉 이맘은 최후의 순간을 대비해 주변인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가는 마흐디ٱلْمَهْدِيّ(메시아)라는 것이 쉬아의 교리였습니다. 순나أهل السنة는 이맘의 역할이 큰 쉬아شيعة의 교리를 보고 이슬람 경전에서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주를 경배하라고 했으며 이맘에게 기대는 행위는 우상숭배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쉬아شيعة들을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쉬아شيعة도 마흐디가 될 이맘들이 누구냐에 따라 종파가 나뉘었습니다. 5대 이맘인 자이드 이븐 알리와 그의 자손이 마흐디가 될 이맘으로 여기는 자이드파, 6대 이맘인 자파르 사디크 사후 그의 손자 무하마드 이븐 이스마일의 혈통을 이맘으로 보는 이스마일파, 12대 이맘까지가 무함마드 혈통이기에 열두명의 이맘들이 세상에서 잠시 사라지다 최후의 날에 다시 나타나 신자들을 구원한다고 믿는 열두이맘파, 그리고 알라위파와 드루이즈파가 존재합니다.
- 극단인 카와리지الخوارج에서 온건인 이바디الإباضية로
한편 자신들의 믿음과 조금이라도 다른 자는 거침없이 학살하던 카와리지الخوارج는 하도 과격해 원주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고 순나أهل السنة도 카와리지الخوارج를 집중 탄압했습니다. 그래서 카와리지الخوارج는 순나أهل السنة 군대에게 대패하고 사막에 숨어들었습니다. 압둘라 이븐 이바디 알 무리 알 타미미가 이끈 이바디الإباضية 역시 순나أهل السنة인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통치에 반발해 저항운동을 하다 대패했고 항복한 후 순나أهل السنة와 절충안을 찾으며 순나أهل السنة를 존중했습니다. 이 분위기는 순나أهل السنة 뿐만 아니라 쉬아شيعة, 그리고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인도 받아들여 토론하고 합의하는 온건주의로 변했습니다. 덕분에 오만에 자리잡은 이바디الإباضية는 다른 종교도 존중하는 관용적인 종파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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