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개혁로 등장한 개신교 교파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교황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고 성경을 따르자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의 관습이나 기타 누적된 기독교 관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러 주장이 등장했고 개신교 교파들이 분화했습니다. 교리를 중앙통제한 다른 기독교와 달리 개신교는 개인이 성경을 직접 접하는 것을 장려하며 각 교회별 성경 해석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교파가 많으며 지금도 새로운 교파들이 등장하고 소멸하고 있습니다.
- 루터교회
마르틴 루터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주의 구원만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담의 원죄를 유전받으며 자유의지가 타락한 죄의 노예로 보았고 오로지 주님의 은총만이 구원의 길로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주를 따르는 자들은 고난을 이겨내며 신앙이 성장한다고 바라보아 고난과 어려움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세운 교회가 루터교회로 루터교회는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다보니 로마 가톨릭의 관습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과 예례, 성모 마리아 존경 모두 로마 가톨릭을 따르되 교회 사제가 아닌 성경을 보며 주의 뜻을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 개혁교회와 장로교, 회중교회
장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 등의 신학자들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는 존재이며 성경은 한치의 거짓없는 주의 말씀이기에 성경을 따를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유럽 각지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를 관리하는 사람은 장로이며 중앙집권이 아닌 교회별로 장로들이 교회헌법을 재정해 교회를 운영했습니다. 중앙으로 통일된 체제가 아닌 교회별로 각각 교회헌법을 따르는 체제이다보니 스위스와 대륙 유럽에서는 개혁교회로, 스코틀랜드에서 장로회로 불렸습니다. 또 개혁교회와 장로회는 TULIP 교리를 따릅니다. 또한 장로의 권한이 아닌 교회에 모은 회중들이 교회 운영을 담당하자는 회중교회 역시 등장했습니다.
- 재침례파와 침례회
기독교는 태어난 아기에게 세례를 내리는 유아세례를 행했습니다. 허나 재침례파는 아무 의지도 없는 어린 아기가 세례를 받아봤자 아무 의미없다며 유아세례의 의의를 부정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확히는 몸 전체를 물에 담그는 침례 의식을 온전한 의지를 가질 때 해야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꽤 파격적인 주장이어서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는 물론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에서도 탄압했습니다. 그 외에도 재침례파는 순수한 자기 결단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남의 도움은 아무 의미도 없다 주장했고 신자라면 예수를 보고 복을 비는 행위 대신 예수의 제자가 되라고 강조했습니다.
재침례파는 극단적인 주장 때문에 기존 교회와 다른 개신교 모두에게 탄압받았고 일부 재침례파 교회들이 무장반란을 일으켰으나 무장봉기한 재침례파는 몰락했습니다. 살아남은 일부 재침례파는 동유럽으로 이주했습니다. 또 일부는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그곳에서도 쫒겨나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아메리카에 정착한 로저 윌리엄스는 평화를 최우선하는 침례회 정신을 강조하며 다양한 성경해석을 허용하고 전쟁과 갈등보다는 화합과 평화를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성서해석을 존중하는 교파가 정착했으며 이를 침례회라 부릅니다. 침례회는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 받은 침례만이 의미있는 침례로 여겨 유아세례가 아닌 스스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에게 침례를 내리는 교회입니다.
- 잉글랜드에서 등장한 성공회와 감리회
한편 잉글랜드는 1534년 헨리 8세의 명에 따라 잉글랜드 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다른 교회라고 주장하며 분리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잉글랜드 독자 교회가 성공회로 로마 가톨릭 관습을 따르되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로마교회 총대주교(교황)가 아닌 캔터베리 대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교회 분열을 위해 종교개혁에 따른 칼뱅주의를 받아들인 교회이지만 로마 가톨릭 관습을 많이 유지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또 한번 개혁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주도한 자는 존 웨슬리 사제로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기에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결국 오로지 주의 은총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장 칼뱅의 예정설을 부정하고 인간이 원죄는 있지만 완전 타락한 것은 아니고 인간 마음 속에는 선함과 사랑을 따르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바라보았습니다. 존 웨슬리 사제는 칼뱅주의를 따르는 성공회가 너무 원죄에 대한 속죄와 무조건적인 주의 은총만 바라본다고 생각하고 이를 수정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성공회는 변하지 않았고 낙담한 제자들은 따로 감리회를 세웠습니다.
- 로마 가톨릭을 이끈 예수회
개신교 교파들이 속속이 등장하고 교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자 교황청은 난처한 입장이 되었지만 교황청은 무력으로 개신교를 탄압하려고 했으며 교황청 의견 외 의견들은 묵살하는 베타적 행보를 걸었습니다. 이 때문에 30년 전쟁 등 종교전쟁이 발발했으며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을 악마로 묘사했습니다. 교황청은 개혁 대신 더 베타적이고 수구적으로 변하며 로마 가톨릭 내에서도 교황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교황청 대신 로마 가톨릭을 개혁하려는 세력이 부상했는데, 바로 예수회였습니다.
교황에 전권을 위임한 기존 로마 가톨릭과 달리 예수회는 개신교처럼 개인의 양심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양심있으며 책임감있는 자들이 로마 가톨릭을 이끌어야한다고 생각해 예수회 신자들을 신학을 비롯한 과학과 사회, 수학, 철학 등 유럽의 학문을 공부한 우수한 인재들로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거쳐 진실된 신앙인인지 철저하게 검증했고,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도덕심을 키우고 인내하며 너무도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예수회 신자들은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 뿐만 아니라 유럽 학계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이었고 가정교사나 교수로 활동하며 유럽 학문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교황의 권능을 무시하고 개인의 도덕성 함양을 중요시한 예수회는 주류 로마 가톨릭에서 배척받고 탄압받았습니다. 또한 개신교 역시 예수회를 싫어했는데, 개신교 교리가 만방에 다다르기를 원했던 개신교도들은 예수회를 로마 가톨릭의 중흥을 이끄는 경쟁자로 바라보았고 예수회 신자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기에 개신교를 핍박하는 자로 판단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개신교도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칼로 정복하며 억지로 포교했고 저항을 받았지만 예수회는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에 온건한 포교활동을 벌여 큰 인기를 얻었기에 개신교 포교를 방해하는 경쟁자였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예수회를 사탄숭배자라고 비난했으며 예수회를 특히나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사방에서 예수회를 핍박하는 와중에도 예수회는 전세계로 퍼져 어느새 교황청 대신 로마 가톨릭을 이끄는 세력으로 부상했고 로마 가톨릭은 예수회의 노력 덕분에 신앙실천 부분에서 개혁에 성공했습니다. 동시에 예수회가 로마 가톨릭을 쇄신하는 동안 개신교도들은 예수회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헐뜯는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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