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석으로 추정한 동물
화석을 보고 어떤 생물인지 유추하는 것은 의외로 정말 어렵습니다. 생김새와 화석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죠. 이 화석을 보세요. 어떤 동물 같나요? 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개골이지만 엄청나게 큽니다. 당연히 인간보다 더 큰 동물이죠. 짐작이 가나요? 이 두개골의 주인공이 누구일까요?
정답은 코뿔소입니다. 코뿔소 코 위에 있는 뿔은 인간 손톱과 같은 케라틴이 굳어 쌓인 것으로 피부이죠. 그렇기에 두개골에서는 코뿔이 보이지 않습니다.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오랜 연구가 아니면 짐작도 못할 정도이죠. 때문에 뼈만 보고 생명체의 본 모습을 유추하기란 어렵습니다. 뼈의 힘줄 흔적을 찾아 뼈 위로 어떤 근육이 덮여 어떤 모습을 했을지 자체를 유추해야 해서 전문적인 지식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마저도 2000년대 동물해부학과 컴퓨터, 초정밀 현미경, 유전자 검사 기술 합작으로 가능해진 것이고, 그 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단순히 보이는 생김새로 유추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알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명확했고 정밀한 추정이 불가능해 추정한 형태가 다르게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런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화석을 보고 완전 다른 형태를 추정했습니다. 그럼 옛 사람들이 어떤 화석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볼까요?
- 바닷뱀처럼 긴 괴물로 묘사된 고래
동아시아를 제외한 국가들은 고래를 길고 큰 바닷뱀과 비슷하게 묘사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래 사채나 고래 화석을 보면 파충류처럼 길쭉한 머리와 뱀처럼 길쭉한 등허리 뼈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뒷발이 없고(있기는 하지만 너무 작아 사람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소실했을 확률이 매우 큽니다) 거대한 앞발만 있었기에 사람들은 화석을 보고 고래가 발이 달린 거대한 바닷뱀이라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바다에서 주로 생활하던 민족은 고래의 실제 생김새를 잘 알았지만 뭍에 사는 사람들은 고래를 거대한 바닷뱀이나 물고기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바다에서 무역을 하며 생활하던 미노스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은 고래 생김새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다만 그들도 고래를 거대한 물고기로 생각해 뭍 사람들에게 바다에 거대한 물고기가 있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뭍 사람들은 고래를 바닷사람들 묘사와 화석으로 생김새를 추정했습니다. 일례로 중동, 그 중 시리아와 이집트 지역은 예로부터 고래 화석이 많았고 사람들은 고래 화석을 보고 앞발이 달린 거대한 바닷괴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고대 가나안, 고대 그리스는 고래를 앞발과 꼬리지느러미를 지닌 바닷뱀으로 묘사했습니다.
- 멸종한 지중해 난쟁이 코끼리 두개골을 보고 유추한 키클롭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클롭스는 코끼리 두개골을 보고 유추했을 거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인류 문명이 등장하기 직전 지중해 난쟁이 코끼리가 그리스에서 멸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에는 생긴지 별로 안되는 코끼리 화석들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지역에 코끼리들이 한때 번창했기에 많은 코끼리 화석이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그 화석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북방 불가리아에서 남하한 그리스인들은 코끼리라는 동물의 존재를 몰랐고 코끼리 두개골을 발견한 후 혼란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코끼리 두개골은 사람 두개골과 꽤 비슷해 그리스인들은 거대한 인간 두개골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은 본디 코끼리 콧구멍이었지만 그리스인들은 눈구멍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이 화석을 외눈박이 괴물의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양눈이 없는 대신 이마 위에 눈 하나가 달린 인간이라 생각했고 그를 키클롭스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코끼리 두개골은 키클롭스라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재탄생했습니다.
- 프로토케라톱스와 그리폰
고대 그리스 기록에 따르면 스키티아인들은 고비사막에서 금광을 지키는 그리폰이라는 괴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핀이라는 괴물은 사자 몸과 독수리 입을 가진 괴물로 날개 역시 달려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폰이라는 동물은 사실 고비 사막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프로토케라톱스였습니다. 백악기 후기 몽골에 살았던 프로토케라톱스는 모두 멸종해 화석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화석들은 몽골이 사막화되면서 모래가 암벽을 깎고 바깥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렇게 노출된 화석을 스키티아인들이 발견하고 이 화석을 분석한 후 그리폰 형태를 추정했을 것입니다.
스키티아인들은 드넓은 대지를 질주하는 유목민이었기에 창공을 지배하는 독수리를 숭배했고 독수리 입처럼 날카로운 부리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두개골에 있는 프릴(눈 뒤 넓은 공간)은 귀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몸통이 사자 골격과 비슷하다고 여겨 이를 독수리 부리에 사자 몸통, 그리고 독수리 날개로 묘사했습니다. 날개는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독수리를 숭배했기에 날개를 어떻게든 붙였거나, 긴 어깨뼈를 보고 독수리 날개가 연결된 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키티아인들은 프로토케라톱스를 보고 그리폰이라는 괴물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 기록이 중세 유럽으로 가면서 유럽인들은 자기들만의 해석으로 그리폰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리폰은 독수리 머리에 귀가 달려있고 사자와 독수리 몸통에 독수리 다리를 단 괴물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유럽에만 그리폰 전설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대 이란 역시 스키티아의 그리폰 전설을 받아들였습니다. 스키티아 제국과 자주 충돌하던 이란 아케메네스 왕조는 스키티아 제국에서 전해지던 그리폰 전설을 받아 신성한 동물로 숭배했습니다. 그 일례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각종 미술품에서 그리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이란과 메소포타미아는 모든 신성한 동물에 독수리 날개를 다는 문화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리폰에 독수리 날개가 달린 것이 고대 이란 아케메네스 왕조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키티아인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독수리 머리에 귀가 달려있고 사자 몸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받은 아케메네스 왕조가 그리폰에 독수리 날개를 달고 이를 스키티아 제국에 다시 전파해 스키티아인들이 그리폰에 날개가 달렸다고 생각하고 이를 그리스에 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에 전해진 그리폰은 또 인도로 전해졌습니다. 인도는 이란을 통해 전세계와 소통했고 이란의 문명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리폰 역시 이란에서 받아들였고 신성한 동물로 생각해 불교 사원에 장식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그리폰이 아닌 흰코끼리 등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신성한 존재들이 많아 인도에서 그리폰은 오래 전해지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 암모나이트와 비슈누 차크라
힌두신화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 신으로 숭배받는 비슈누는 차크라라는 원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차크라를 던져 악마를 소탕하며 평화를 수호합니다. 그리고 네팔과 히말라야 산맥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비슈누가 소지하는 차크라는 돌로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돌이 된 차크라를 샬리그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본 샬리그람은 히말라야 산맥의 암모나이트 화석으로 검은색 화석을 샬리그람으로 취급했지만 가끔 황철석이 붙어 노란색을 띈 샬리그람이 나타나면 이를 비슈누의 차크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네팔에서는 암모나이트 화석을 비슈누의 샬리그람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 에부 고고와 호모 플로엔시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 정착한 나가인들은 플로렌스 섬에 난쟁이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그들을 에부 고고라고 불렀습니다. 나가인들은 그들을 미리 도착한 선조라고 생각해 그들을 존중하고 모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에부 고고에 대한 연구 결과 1만년 전에 멸종한 인류인 호모 플로엔시스임이 밝혀졌습니다.
호모 플로엔시스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등장 이전에 순다 열도에 정착한 고인류로 무더운 밀림에서 생존하기 위해 크기가 작아지는 섬 왜소화 현상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호모 플로엔시스 골격이 전반적으로 작아졌고 키 역시 매우 작아졌습니다. 호모 플로엔시스 키는 최대 1.1m로 옛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키가 1.5m임을 고려해도 키가 매우 작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나가인들은 호모 플로엔시스 골격을 보고 난쟁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 메가테리움과 마핑과리
볼리비아와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 살던 원주민들은 마핑과리라는 괴물이 있다고 믿어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마핑과리는 지독한 악취가 나며 높이 3m가 넘는 거대한 몸에 눈은 외눈박이이고 배꼽이 있어야 할 곳에 입이 있는 괴물로 잠든 인간을 잡아먹는 흉폭한 괴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마핑과리는 1만년 전에 멸종한 메가테리움 화석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동물임이 밝혀졌습니다. 메가테리움 두개골의 큰 콧구멍을 눈구멍으로, 갈비를 이빨로 생각한 것입니다. 메가테리움은 브라질이 숲이던 시기 살던 고생물로 인간이 브라질에 정착하기 전에 멸종한 동물이지만 그 거대한 화석을 보고 괴물로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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