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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화

신화와 자연 특별편: 황허와 천하통일

by 롱카이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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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화무쌍한 황허
황허

황허는 중화에 신석기, 청동기 문명 초기 때만 해도 여러 숲을 지나는 평범한 강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구 기후가 건조해지고 황허 주변 밀림을 벌목해 나무로 집을 짓고 땔감알 만들어 생활하는 인간으로 황허 주변 밀림이 사라지고 황허 물줄기를 잡을 나무들이 사라지자 황허는 그 강한 유속 때문에 토양을 모두 쓸어다니며 진흙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흐르는 황허는 막대한 양의 진흙을 바다까지 나르며 바다를 흙색으로 만들어 황해라는 것을 만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FsQoY32n5g

황허 물줄기 변화와 중국 해안 퇴적

문제는 황허의 진흙이 너무 많아 중간에 진흙이 쌓여 황허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황허가 흐르다가 어느 곳에 진흙이 쌓여 물줄기가 막히면 물은 곧 낮은 다른 곳으로 흘러버립니다. 마침 화베이 평야는 가로막는 산이 없어 황허가 마음껏 튀며 새로운 물줄기를 개척하고 그 과정에서 화베이 평야 전체에 홍수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재앙적인 홍수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새로운 황허 물줄기가 생깁니다.

황허 물줄기

최종적으로 황허가 바다에 도달하기 전에 산둥반도 서부에 홀로 우뚝 솟은 타이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허는 타이산 북쪽이나 남쪽 둘 중 한군데를 흐를 수 밖에 없고 황허 물줄기는 수시로 타이산 앞에서 북쪽이나 남쪽 하나로 방향을 틀며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황허는 수세기 동안 물줄기가 완전 다르게 흘렀으며 조금씩 이동하는 것이 아닌 화베이 평야에서 확확 물줄기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물줄기를 바꿀 때 대규모 홍수를 동반했습니다. 이는 황허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도 언제 대홍수를 맞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줬습니다. 최악의 경우 자다가 한순간에 대홍수를 맞이해 자는 상태로 익사했습니다. 그래서 화베이에 사는 사람들은 황허를 매우 두려워했고 누군가 이를 해결해주기를 바랬습니다.


  • 황허를 다스리는 황제
우임금

그리고 통제불가능한 황허를 기어코 통제한 영웅이 나타났습니다. 중국 신화 속에서는 우임금이 제방을 쌓아 황허 물줄기를 통제하고 홍수가 일어나지 않게 막아 화베이 사람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우임금 이후로도 황제는 황허 상태를 확인하며 제방을 보수하고 대홍수를 방비했습니다. 이것이 황제가 백성들에게 하는 자비이며 백성을 다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스릴 치기 물을 통제하는 한자입니다. 중국 황제는 언제나 황허를 통제해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야 했습니다. 황제가 황허 관리에 소홀히 해 제방이 무너지고 황허가 넘쳐 홍수가 일어나면 이는 황제 책임이었습니다. 신화시대 때부터 중국은 황허 통제를 위한 제방 기술을 개발했고 시간이 흘러 황제는 제방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투입하며 황허를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황허를 잘 통제하며 평화를 이룩했습니다. 그러자 황제의 땅은 중국은 여러 곳으로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 통일인가 분열인가: 중국의 선택
진시황

황허를 다스리고 영역을 넓히던 주나라는 외부 침입으로 황제 권위가 추락하고 너무 넓은 영토를 한 사람이 일일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했기에 시간이 지나자 주나라는 여러 나라들로 분열했습니다. 그것이 춘추전국시대로 춘추전국시대는 서로 먹히지 않기 위해 먹는 전쟁터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속에서 목숨을 잃었고 생존 전쟁에서 최종 승리한 나라는 진시황이 이끄는 진나라였습니다. 진나라는 순수 생존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로 진시황은 진나라 영토 내에 모든 것을 통일하며 진나라 정체성으로 통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은 가혹한 통치를 이끌었고 사람들은 옛 나라를 그리워하며 진나라를 혐오했습니다.

초한쟁패
초한쟁패

결국 진시황 사후 호해가 황제가 되며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반란군은 전국시대로 회귀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 여론을 받아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천하를 나눠 전국시대처럼 여러 나라들이 존재하는 세계로 회귀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 문화가 달라 안맞으니 분열 상태로 유지하자는 여론이 주 여론이었고 모두가 이를 찬성했습니다. 황제 욕심이 있었던 유방도 이에 찬성했지만 장량은 젓가락을 부러뜨리며 일단 항우를 무너뜨리기 전에는 천하를 분할해서는 안된다며 말렸고 유방은 항우와 전쟁을 준비하며 분열한 중국을 한나라로 통일시켰습니다. 그리고 유방은 옛 주나라와 진나라가 택한 통일을 택했고 한나라는 중국사에서 통일 왕조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다 통일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삼국시대로 분열하다 다시 진나라로 통일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 지배층은 분열을 택했고 중국은 다시 분열되었습니다. 그 분열 과정에서 유목민족이 침입해 걷잡을 수 없어진 것은 덤입니다.


  • 무너진 황허와 천하통일
분열과 내란 시대
분열과 내란 시대

화베이 평야가 북방 유목민족의 땅이 되면서 유목민족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습성대로 황허 제방도 파괴했고 그 대가로 대홍수를 맞았습니다. 황허는 폭주했고 수많은 마을을 순식간에 제거했습니다. 이 황허를 통제할 수 있는 유목민만이 명성을 얻어 생존할 수 있었고 다른 유목민 국가는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황허 물줄기 흐름의 변화는 황허를 기준으로 한 국경을 변화시켰고 새 국경선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전쟁을 벌이며 전쟁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결국 황허를 통제하고 싸움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황허가 흐르는 화베이 전체를 통일해야 했습니다. 북방 유목민에게 밀려난 한족은 양쯔강을 경계로 양쯔강 이남에 자리잡아 오랫동안 영토를 보존한 반면 화베이는 황허를 국경선으로 정하거나 화베이의 아무 강이나 잡고 국경선으로 정해도 여기저기 튀는 황허가 다른 강줄기마저 바꾸고 대홍수로 전에 있던 것들을 다 제거해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강을 경계로 삼으면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평화를 얻으려면 화베이 전체를 그냥 통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강남은 몰라도 화베이는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고 화베이는 여러번 통일과 분열 끝에 통일되었습니다.

황허를 국경선으로 하면 수시로 국경이 바뀌기에 황허가 흐르는 화베이 전체를 통일하자는 관념이 지배했다
황허를 국경선으로 하면 수시로 국경선이 바뀌기에 황허가 흐르는 화베이를 통일하자는 관념이 지배했다

이 개념이 확장되어 중국은 분열하면 다시 통일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었고 5호 16국 시대가 지난 후 모든 중국 왕조는 무조건 천하통일을 목표로 상정했습니다. 그래서 5호 16국 이후 중국은 분열을 빠르게 진압하고 통일왕조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천하통일과 모든 것을 통일한다는 개념은 중국인에게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되었고 분열과 개성 존중은 파멸을 의미했습니다. 그 정신이 지금도 이어져 중국은 무엇이든 무조건 통일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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