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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볼수록 독종 나라인 베트남

by 롱카이 202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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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高麗]를 준비하며 보는 베트남 이야기
응웬 훼를 응징하려고 푸쑤언(현 훼)에 상륙하는 떠이썬 군
응웬 훼를 응징하려고 푸쑤언(현 훼)에 상륙하는 떠이썬 군

고려시대에 대한 기록과 유물이 너무 없어 해외 유사한 사례를 보며 베트남 사례도 보는데 베트남은 한국보다 더 심하게 과거 유산과 기록이 소실된 나라더군요. 일단 베트남은 험준한 안남산맥 동쪽 얇은 땅을 가진 나라다보니 지방 영주들이 마음먹고 길을 틀어막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툭하면 내전이 났고 내전 동안 서로 사이좋게 다 파괴하는 건 기본이었죠. 거기에 미국-베트남 전쟁으로 남은 유물마저 초토화당했습니다.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기록은 좀 있어서 보는데.....

전란의 시기였던 베트남 중근대
전란의 시기였던 베트남 중근대

와, 베트남 진짜 독종인 듯.... 특히 찐씨 가문과 응웬 두 가문이 황제는 허수아비로 만들고 막강한 제후국으로 군림하며 나라를 두개로 갈라놓고 싸운 후 레 왕조에서 시작해 이 싸움에 신물이 나 농민이 봉기를 일으킨 떠이썬Tây Sơn 시대는 말이 안되네요.... 중국 삼국시대부터 5호 16국 시대를 아우루는 위진남북조 시대나 일본 센고쿠시대와 비슷한 듯 하고....

후 레 왕조는 북방의 찐 제후국과 남방의 응웬 제후국으로 분열해 서로 싸웠다
후 레 왕조는 북방의 찐 제후국과 남방의 응웬 제후국으로 분열해 서로 싸웠다

이 막장 시대였던 후 레 왕조는 전 왕조인 막 왕조를 무너뜨리는 것에서 시작해요. 후 쩐 왕조는 명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이를 레러이가 무장 봉기해 명나라를 쫒아내고 후 레 왕조를 건설합니다. 하지만 후 레 왕조는 조금 지나지 않아 막당중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막당중은 스스로 명나라에 복속했어요. 이에 레이가 찐끼엠과 응웬낌과 함께 봉기해 명나라를 축출하고 다시 후 레 왕조를 세우는데 이 때 찐끼엠과 응웬낌이 공로를 너무 잘 세워서 결국 레이는 찐끼엠과 응웬낌을 각각 찐씨 제후국, 응웬씨 제후국으로 책봉했어요. 근데 둘은 황제보다 더 강한 권력을 휘두루며 기어코 후 레 왕조 다이비엣을 두 제후국으로 나눠서 서로 싸웠죠. 황제는 아무것도 못하고요.

응웬 제후국이 세운 루이 따이 성벽
응웬 제후국이 세운 루이 따이 성벽

이건 완전히 일본을 둘로 나눠 싸웠던 남북조시대와 겹치네요. 일본도 겐무 천황이 실권을 가마쿠라 막부로부터 빼앗고 천황 중심시대를 이끌다 죽은 뒤, 고다이고 천황을 옹립하는 남조와 고묘 천황을 옹립하고 보호를 약속한 무로마치 막부가 이끄는 북조가 서로 싸웠단 말이죠. 물론 일본의 경우는 진짜 천황을 모시는 가문과 무로마치 막부 세력 간의 대결이었고 베트남 후 레 왕조는 황제는 무시하고 제후국끼리 싸운 것이었죠. 근데 이 때 제후국은 꽝빈 성을 가로지르는 손 강을 중심으로 요새를 쌓아 참호전을 했어요. 그것도 북부의 찐 제후국이 남부의 응웬 제후국을 침공하는 방식으로요. 근데 그걸 응웬 제후국은 루이 따이Lũy Thầy 성벽을 세워 막아냅니다.

응웬 제후국은 코끼리 위에 불랑기포를 올려놓고 찐 제후국 군대를 격퇴했다
응웬 제후국은 코끼리 위에 불랑기포를 올려놓고 찐 제후국 군대를 격퇴했다

이 때 둘은 어찌보면 다른 나라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하던 참호전 + 소모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찐 제후국은 총기병과 긴 교지총으로 무장한 총병, 총통병, 대포병을 동원해 루이 따이Lũy Thầy 성벽을 공격했고, 응웬 제후국은 성벽에서 농성하다가 기회를 보고는 코끼리 위에 작은 포를 올려놓고 돌격하며 찐 제후국 군대를 흐뜨리며 서로 누가 먼저 지치는지 대결하는 소모전을 벌였어요.

베트남 군대
베트남 군대

하지만 대세는 찐 제후국에게 기울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하노이 일대를 흐르는 홍 강 삼각주가 인구 몇천 만명은 우습게 부양하는 미친 지력을 가진 땅이라 인구가 넘쳐났고, 전통적으로 베트남 중심지라 기술자들이 많아 무기와 병력을 물량으로 쏟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찐 제후국이 주로 공격했고요. 이에 대항해 응웬 제후국은 일단 참호와 성벽을 쌓고 방어하면서 남부로 메콩강 삼각주를 흡수(사실 캄보디아로부터 빼앗아...ㅎ)해 비옥한 토양으로 인구를 부양하고 중국 해적이나 도적도 채용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답니다. 이 시기는 막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끝난 시기였어요. 임진왜란은 명, 조선, 일본이 서로 화포를 주고받았지만 화포 비율은 생각만큼 높지 않은 전투였는데, 베트남은 초석이 풍부하다보니 대부분이 포와 총으로 무장해서 제1차 세계대전급 소모전을 벌였더라고요.

란쌍 왕국(현 라오스)을 지원하는 명나라와 다이비엣(현 베트남)의 패권 전쟁
라오스를 지원한 명나라(성벽 안 병력)와 베트남의 패권 전쟁

그리고 베트남은 정말 지독하게도 중국하고 많이 충돌했더군요. 베트남은 우선 밀림 지대여서 키가 높고 곧게 뻗은 나무가 많았기에 중국 왕조에서 궁궐이나 거대한 원단, 사찰 등을 지을 때 필요한 목재가 풍부했어요. 거기에 코끼리 상아와 바다 산호, 진주 등 사치품도 많고 무엇보다도 질소 비료나 화약 핵심 재료로 사용되던 초석이 널려있었거든요. 결국 자원이 풍부해 중국이 항상 노렸고 중국이 지독하게 많이 침입했습니다. 근데 그걸 대부분 막아냈고 심지어 중국과 가까워지는 주변국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며 동남아시아에서 강대국 지위를 유지했네요.

베트남 전 레 왕조 시기 여성 복장
베트남 전 레 왕조 시기 여성 복장

[고려高麗] 테마를 준비하며 베트남 사례도 보는데 베트남은 워낙 잦은 전란으로 기록과 유물이 많이 소실되었고, 한 때 민족주의를 버리고 인민평등을 외치던 공산주의가 강했기도 하고 지금 성장하지만 워낙 빈곤하던 시절이 길어 과거에 대한 복원과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더군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참고할만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고 워낙 중국에서 온 한자 문화가 잘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중국에서 유래한 불교/한자/동아시아 문화를 찬란하게 피웠던 한국의 고려시대 모습을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네요.
 
 
 

  • 고려시대와 비슷한 문화를 간직하던 베트남
베트남 리 왕조 시절 꽈못꼿
베트남 리 왕조 시절 꽈못꼿

나중에 베트남 이야기 조금 더 깊이 파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물론 저는 베트남 정말 모르는 사람인데 흥미롭더군요. 인도차이나의 유일한 한자문화권 국가로 다른 나라에 한자 문화를 사상주입하며 동남아시아 내 천자국天子國 행세를 하던 나라였기에 옛 동아시아 문화가 생각보다 엄청 남아있고 잘 발달했어요. 거기에 한국의 고려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불교가 융성했고요. 물론 그 뒤는 다른데, 한국은 고려가 쇠락하고 바로 조선으로 정권교체되어 안정적인 성리학 국가로 성장한 반면, 베트남은 그 이후로 계속 내전이었어요. 그래서 뒤로 가면 조선과 대월(베트남의 옛 이름) 간 국력 격차가 계속 벌어지더군요.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절 꽈쩐꿕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절 꽈쩐꿕

그럼에도 베트남 불교는 꽤 참고할 게 많아요. 중국과 한국은 불교에서 바로 성리학으로 넘어갔지만, 일본과 베트남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계속 전란의 시기를 거쳤기에 성리학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전란 시기 동안 불교가 더 뿌리깊게 내려갔고 덕분에 생활 곳곳에 불교가 영향을 미쳤답니다. 거기에 황실은 계속 유교를 받아들이려고 했죠. 그래서 중앙은 유교를 받아들이려고 하고 민간은 불교가 강세였던 고려시대 모습을 베트남은 아주 오랫동안 유지했답니다.

레 왕조 시절 탕롱 황궁
레 왕조 시절 탕롱 황궁 중심전 복원도

그래서 베트남 사례는 고려시대 모습을 참고하기 위해 많이 보고 있어요. 특히 불교 생활 양식과 황실 건축을 많이 참고해요. 왜냐면 고려, 조선전기 때 한국과 베트남 모두 골수 외왕내제 국가거든요. 고려시대와 조선전기 때 안에서는 황제 노릇하고 밖에는 왕이라고 낮춘 외왕내제를 했는데 베트남은 이걸 모든 왕조 때 쭉 했습니다. 그래서 특히 궁궐은 외왕내제를 의미하는 지혜, 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잔머리(?)가 뛰어나더라고요 ㅋㅋㅋㅋ. 고려&조선 전기도 똑같았습니다. [고려高麗] 테마에서 궁궐 이야기도 깊이 나오는데 베트남 궁궐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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