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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주거 가옥] 정원으로 집 안에 만든 작은 자연

by 롱카이 2026.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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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宋과 정원庭園 문화의 전성기

우아한 정원 문화가 꽃 피운 송
우아한 정원 문화가 꽃 피운 송

고려高麗가 모든 면에서 열심히 벤치마킹한 송宋은 마침 유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송宋 시기에 장강長江 일대가 개발되어 사람이 살만해지자 풍족하고 맑은 장강長江 물을 끌어다 큰 연못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자연을 가까이 삼아 검소하게 사는 걸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고 출세한 사대부는 정원庭園을 가꾸어 안빈낙도를 즐겼습니다.

창랑정 전체 조감도
창랑정 전체 조감도

대표적으로 소주蘇州(현 쑤저우苏州)는 장강長江 지류가 고여 만들어진 태호太湖 인근에 있기에 맑은 물을 마음껏 끌어다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송北宋 시기 때부터 많은 정원이 만들어졌지요. 지금은 대부분 명明 시기에 만들어진 정원이 남아있지만 창랑정滄浪亭(현 중국어 발음: 창랑팅沧浪亭)은 북송北宋 때 지어진 정원입니다. 송대宋代 정원 양식이 남아있지요.

뱃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정원
뱃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정원

또한 수많은 송대宋代 그림을 통해 정원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록화에 따르면 저택 한구석에 담장을 쌓고 정원을 만든 뒤, 그 위에 뱃놀이를 하며 풍류를 즐긴 걸 알 수 있지요. 또한 글로 적은 기록에도 언급되어 있어 진짜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송宋은 집이나 별장에 정원庭園을 만들어 즐겼습니다. 그리고 고려高麗 귀족 역시 이를 따라했지요.

 

 

 

  • 정원庭園 문화가 스며든 고려高麗

고려 때 철학은 자연중심주의였다
고려 때 철학은 자연중심주의였다

고려高麗는 불교, 도가, 유학 세가지 종교와 이념이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주류는 불교였지만 귀족은 도가와 유학 역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삶에 스며들었지요. 공교롭게도 세가지 철학 모두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을 권장했습니다. 불교는 자연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바라봤고 도가는 인간은 자연과 함께해야 함을 강조했으며, 유학은 자연에서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를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귀족은 자연과 함께하며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것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여겼습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의 고택이던 아산 맹사성 고택 앞마당 정원 터
고려 말 최영 장군의 고택이던 아산 맹사성 고택 앞마당 정원 터

거기에 선진국인 송宋이 정원庭園을 지어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니 고려高麗 귀족들도 정원庭園 가꾸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목은집牧隱集 등 고려高麗 귀족이 지은 문필에 귀족들이 너도너도 정원庭園을 꾸미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기록이 가득합니다. 문제는 정작 지금 남아있는 고려高麗 정원이나 유적이 별로 없어요. 그마저 대부분 황궁과 사찰이고 민가의 경우는 맹사성 고택의 정원 터 딱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참 골 때리네요. 때문에 고려高麗 정원은 글로 작성된 기록과 송宋의 사례를 교차 비교해가며 알아봐야 합니다.

 

 

 

  • 저택 곳곳에 가꾼 작은 자연

집 곳곳에 가꾼 화단
집 곳곳에 가꾼 화단

일단 가장 기본적인 정원 가꾸기는 집 담벼락 옆이나 ㅁ자로 촘촘히 얽혀있는 공간의 마당에 가꾸는 화단花壇이었습니다. 화단花壇은 지금도 있지요. 지금 전통 가옥이나 조선朝鮮의 고택에도 어딘가에 화단花壇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작은 공간에 흙을 담고 그 위로 예쁜 꽃을 심은 공간이지요. 공간이 작아도 되었기에 집 여러 곳에 화단花壇이 있었습니다. 다만 고려高麗 당시에는 화단花壇을 화오花塢라고 불렀습니다.

월남의 저택은 중정이나 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는데 고려 저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월남의 저택은 중정이나 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는데 고려 저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高麗는 불교가 중요한 종교이자 철학으로 자리잡은 사회였습니다. 때문에 저택의 중정이나 큰 마당 등 넓은 공간에는 사찰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상징인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사각형 모양으로 작은 정원을 만들고 그 위에 많은 연꽃이 피게 해 불교의 해탈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지요. 이는 지금 월남의 전통 저택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고려高麗와 비슷하게 리 왕조李朝 때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월남은 응웬元朝 전까지만 해도 불교 문화가 강해 저택 안에 연못이 많이 있습니다. 고려高麗 저택의 연못 모습은 지금 월남에 남아있는 모습과 많이 유사했을 것입니다.

 

 

 

  • 뒷뜰에 제대로 자연을 옮겨놓은 후원後園

조선의 창덕궁 후원처럼 고려 저택은 샘물이 솟아나는 산기슭을 선호했다
조선의 창덕궁 후원처럼 고려 귀족은 샘물이 솟아나는 산기슭을 선호했다

귀족들은 저택을 지을 때 샘이나 지하수가 솟아나는 구릉지 일대를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굳이굳이 산과 지상이 맏닿은 경계면에 짓기를 원했지요. 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물을 끌어다 써 물이 가득한 후원後園을 짓기 위함이었습니다. 송宋처럼 장강長江이라는 큰 수자원이 없는 고려高麗 땅에서는 산 골짜기에서 나는 샘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이는 조선朝鮮 때도 마찬가지여서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은 물론 훈구나 세도가문의 저택이 물이 있는 구릉지에 지어졌습니다.

귀족은 물을 끌어다가 인공 폭포를 만들었다
귀족은 물을 끌어다가 인공 폭포를 만들었다

그리고 황제나 권세가 정도 되는 권력을 가진 경우, 민가를 헐고 백정을 내쫒아서라도 물이 나오는 지역을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인공 폭포를 만들어 시원한 폭포를 구경했다고 하지요. 산이라면 산에 강제로 절벽을 깎았을 수도 있고, 혹은 대나무로 수로를 만들어 폭포를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수원지가 집 밖에 있는 경우, 귀족은 수원지에서 대나무 통을 꽂아 집 안까지 연결해 강제로 물줄기를 바꿨다고 할 정도입니다.

큰 연못은 곡선을 유지해 자연 모습을 모방했다
큰 연못은 곡선을 유지해 자연 모습을 모방했다

여튼 이렇게 물을 끌어다 후원後園에 거대한 인공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큰 연못은 정방형이 아닌 자연 모습 그대로 보존했지요. 마치 송宋의 정원이 자연 모습 그대로를 추구해 자연 호수나 강줄기와 비슷하게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단순히 물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것이 아닌 물길 주변을 큰 바위와 작은 모래, 또는 갈대 같은 물풀을 심어 자연 강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그 주변으로 작은 나무나 꽃을 심어 아름답게 꾸몄지요.

송에서 개량된 금붕어를 연못에 풀어 키웠다
송에서 개량된 금붕어를 연못에 풀어 키웠다

그리고 물에는 연꽃을 심고 피라미, 붕어, 잉어, 남생이, 자라, 개구리 등 한반도 강이나 연못에 살던 수생 생물을 풀어놓고 키웠습니다. 일부는 송宋에서 품종 개량된 금어金魚 또는 금즉어金鯽魚를 수입해 키웠는데 이 물고기가 금붕어입니다. 당唐 때부터 붕어 중 색이 붉은 붕어를 교배하며 품종 개량을 했는데 송宋 시기에는 항주杭州(현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에 노란색 금붕어가 나와 품종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란 금붕어는 오직 황제만 키울 수 있어 귀족은 붉은 금붕어만 키웠다고 합니다.

송대 정원에 배치한 석가산
송대 정원에 배치한 석가산

물 아래에는 금붕어와 각종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구경하고 물 밖으로는 기암괴석으로 쌓은 작은 인공산을 구경했습니다. 이 인공산은 송宋에서 유행한 석가산石假山으로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 등 보기에 신기하게 생긴 암석들을 모아 산처럼 쌓은 것입니다. 이는 강 위에 솟은 섬이나 산세를 표현한 조형물이었지요.

월남에 남아있는 혼논보 문화
월남에 남아있는 혼논보 문화

이렇게 큰 물 한가운데나 뒤에 작은 산을 만드는 문화는 지금 월남에 남아있습니다. 혼논보𡉕𡽫部(현대 월남 문자: Hòn non bộ)라고 불리며 기암괴석 위에 이끼나 작은 나무 등을 심어 신선들이 사는 높은 산의 모습을 연출했지요. 지금도 월남에서는 혼논보𡉕𡽫部가 부유한 집안에서 즐기는 사치스러운 취미이자 집을 가꾸는 조형물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고려高麗 역시 석가산石假山 문화를 가졌고 조선朝鮮 때에도 유지되었으나, 소빙하기가 지나간 뒤 급격히 작아져 계단을 쌓고 꽃을 심는 화계花階로 규모가 확 줄었습니다. 지금 경복궁 교태전 뒷뜰에 있는 마이산花階이 대표적인 화계이지요.

 

 

 

  • 진귀한 꽃과 나무로 꾸민 작은 숲속

매화나무
매화나무

그리고 조경에 일가견이 있는 장인을 불러 집 안에 각종 아름답고 신기한 식물을 심었습니다. 나무로는 매화나무, 배나무, 돌배나무, 동백나무, 감나무,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산에 있는 나무들을 심어 인공 숲을 조성했지요. 그리고 물가에는 버드나무, 수양나무 등 물가와 어울리는 나무를 배치했습니다.

모란으로 화단을 꾸몄다
모란으로 화단을 꾸몄다

그리고 꽃으로는 꽃 중의 왕이라 불린 모란, 연못을 아름답게 꾸미는 연꽃, 국화, 패랭이 꽃, 난, 기타 각종 산이나 들에 나는 꽃들을 심어 키웠습니다. 그래서 귀족 저택의 후원後園은 말 그대로 뒤에 있는 산을 그대로 가져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지요. 다행히 성벽처럼 높은 담장이 둘러져 있어 멧돼지나 승냥이, 표범,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없었습니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뒷산을 즐긴 셈입니다.

 

 

 

  • 다양한 애완 동물로 자연을 완성하다

오수개, 진돗개, 동경이, 삽살개
오수개, 진돗개, 동경이, 삽살개

그리고 이 자연에 정적인 식물이나 작은 동물만 있으면 심심하니 큰 동물들을 풀어 키웠습니다. 가장 먼저 키운 건 주인과 언제나 함께하는 강아지였죠. 강아지는 오수개, 진돗개, 동경이, 삽살개 그 외 발바리 같은 각종 잡종을 키웠습니다. 오수개와 진돗개, 동경이는 주로 사냥개로 키웠으며 삽살개는 모습이 사자를 닮아 잡귀를 내쫒는 수호견으로 여겨 키웠습니다. 특히 삽살개는 불교 설화에서 석가모니를 보호한 사자의 화신으로 여겨져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쥐를 내쫒는 용도로 키운 고양이
쥐를 내쫒는 용도로 키운 고양이

그리고 당연하게도 고양이도 같이 키웠습니다. 본디 고양이는 쥐와 각종 땅벌레를 잡아먹어 집 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키웠으나, 그냥 귀여워서 쭉 키워왔습니다. 유명한 문인 이규보는 고양이를 얻자 기뻐하며 직접 참새 고기를 먹이며 귀여워했다고 하네요. 고양이는 워낙 제멋대로인 동물인지라 품종을 딱히 신경쓰지 않고 키웠지요. 때문에 기록을 보면 참 다양한 모습의 고양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숭이와 사슴
원숭이와 사슴

더 나아가 원숭이와 사슴을 정원庭園에 풀어 키웠습니다. 원숭이는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동물로 고려高麗 때는 송宋이나 대월大越에서 수입한 원숭이들을 키우며 재롱을 구경하고 먹을 것을 주며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사슴의 경우 부와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어서 복을 받으려고 풀어 키웠다고 합니다.

섬휘파람새, 휘파람새, 대본청(앵무새), 꾀꼬리, 공작, 학
섬휘파람새, 휘파람새, 대본청(앵무새), 꾀꼬리, 공작, 학

그 외에도 각종 새를 키워 노래를 듣고 생김새를 구경했다고 하지요. 먼저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키운 새는 섬휘파람새, 휘파람새, 꾀꼬리 같은 노래새였습니다. 이들은 야생동물이지만 정원庭園 안에 둥지를 지어주고 먹이를 주며 반쯤 길들였지요. 또한 대월大越에서 앵무새인 대본청을 수입해 키우며 사람 말을 가르치고 대본청이 말하는 걸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권세가는 공작과 학을 키웠는데 공작은 무려 불교의 본고장 인도에서 수입한 귀한 동물로 생김새도 신기하기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학은 유학에서 사대부의 상징이었기에 유학자들이 많이 키웠지요. 이런 식으로 귀족은 정원庭園을 하나의 동식물원으로 만들어 자연을 맘껏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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