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기온을 떨어뜨린 소빙하기

1500년대 말에 시작해 1800년대까지 이어진 소빙하기는 지금보다 기온이 평균 1℃ 이상 낮은 시기였습니다. 한반도는 병자호란 이후 소빙하기가 찾아왔지요. 지구 기온이 1℃ 아래로 내려갔을 때 닥친 현실은 무시무시했습니다. 유럽의 경우 지금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템스강이 소빙하기 때 꽝꽝 얼어 코끼리가 점프해도 얼음이 멀쩡했다고 하고 지중해 일대에 포도 수확량이 급감하고 밀도 흉작이 돌며 원인을 마녀에게 돌리는 마녀사냥이라는 광기가 휩쓸었으며, 알프스 산맥의 빙하가 확장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 마을을 덮쳐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흉흉한 일에 주님이 내린 저주인지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종교 문제로 번져 30년 전쟁이 발발할 정도였지요.
![소빙하기가 몰고 온 대기근을 다룬 게임 [무사]](https://blog.kakaocdn.net/dna/9KcRo/dJMcaaMHq2M/AAAAAAAAAAAAAAAAAAAAAJ_q6k31MxN76UZLGDpAdsxRIVOG1lK4IVptrORqZVGj/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855099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nwZw70PZGW4rtA%2FcJT2cKTkQ8eI%3D)
중국은 화베이華北 일대에 대규모 흉작이 들어 명明이 이자성의 난으로 붕괴하고 청淸이 그 빈틈을 타고 내려와 중화질서가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농토를 잃고 유랑민이 된 수많은 사람이 동남아시아로 이주해 화교華僑가 되었고요. 한국과 일본은 유래없는 대기근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효종 6년 강릉과 삼척 동해 바다가 두꺼운 얼음장이 되어 사람이 그 위로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하고 8월 한여름에도 우박과 서리가 내려 농작물이 병해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재앙 앞에서 인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요. 당장 먹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잠을 자다 잘못하면 그대로 얼어죽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우박이 내리고 진눈깨비가 몰아치는데 한겨울이면 말 그대로 살인 추위가 덮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세계 사람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집에 난방기구를 부랴부랴 설치하고 집 구조를 아예 바꾸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인류 가옥 형태는 소빙하기 전후로 나뉘지요.
- 시베리아에서 몰아치는 극심한 한파를 견디기 위해 변한 한자문화권

동아시아 기후의 최종 보스는 시베리아 기단입니다. 여름에 태평양이나 양쯔강, 황하 등 각종 곳에서 생긴 더운 기단이 활개해도 시베리아 기단이 만주에서 버티며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직통으로 내려오는 한파로 모든 걸 얼려버립니다. 그리고 양쯔강 기단도 시베리아 기단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단입니다. 심하면 월남 북부까지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권에 들어가지요. 소빙하기 때는 시베리아 기단이 날뛰어서 히말라야 동쪽에 있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한자문화권 국가 전체에 매서운 추위를 선사했습니다. 그 동해 바다 해안가를 얼려버릴 정도로 강력했지요. 때문에 한자문화권 국가들은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의 모습을 바꿨습니다.
-온돌이 방바닥 전체를 덮은 한국

소빙하기 전에도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불어닥친 한국은 이미 고구려高句麗 때부터 쪽구들을 이용해 난방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은 화로火爐를 설치하고 깔개를 두는 등 쪽구들이 아닌 다른 난방을 고집했지요. 하지만 이걸로는 소빙하기의 강력한 추위를 막지 못했습니다. 민가는 물론 궁궐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자다 얼어죽었지요. 그래서 왕이든 양반이든 살려고 바닥 전체를 구들로 바꾸는 온돌을 설치하고는 나무와 숯을 있는데로 다 넣어 뜨뜻하게 데웠습니다.

온돌의 열이 방바닥으로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해 나무 마루와 전돌을 다 뜯어 치우고 황토를 채우고 그 위를 종이로 덮은 장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땅바닥에 신체를 접하게 하기 위해 좌식坐式으로 바꾸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도 검소를 강조하며 가구를 작고 낮게 만들며 좌식坐式으로 천천히 문화가 이동했는데 선비들만 좌식坐式을 입식立式과 혼용한 반면, 소빙하기가 닥쳐오자 당장 살려고 전부 다 좌식坐式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가구와 실내 생활이 좌식坐式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지요.

허나 급히 온돌을 만드는 과정에서 열기가 잘 전해지지 않거나 혹은 방바닥이 과하게 뜨거워지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특히 온돌로 방바닥을 데우는데 적당한 땔감 양을 몰라 닥치는데로 넣어 불을 키우다가 집 전체를 불태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 불이 행랑行廊을 따라 집 전체를 태워먹는 일이 잦자 이를 해결하고자 행랑行廊을 허물고 가옥 내 건축물을 서로 분리시켰지요. 이게 소빙하기 이후에도 굳어져 우리가 아는 조선 후기朝鮮後期 한옥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등이 다 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훠캉火炕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긴 중국

소빙하기가 몰아친 흉작으로 명明이 멸망하고 텅 빈 황궁에 한이 입성하며 중국은 만주족의 국가 청淸이 건국되었습니다. 청淸은 소빙하기의 혼란기 한가운데에 건국된 국가로 훠캉火炕이라는 만주족 전통 난방기구가 있기에 바로 전국에 도입하였습니다. 특히 청은 초기에 한족 문화를 멸하고 만주족 문화를 강제 주입했고 그 과정에서 훠캉을 청淸이 실효지배하는 중국 북부에 무조건 설치하게 했습니다. 한족 역시 다른 건 몰라도 당장 얼어죽을 판에 훠캉火炕은 마다할 이유가 없어 집안에 설치하며 중국에 새로운 난방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덕분에 청대부터 중국 북부 쓰허위옌四合院에는 훠캉火炕이 꼭 들어갔습니다.
-기둥 위 건물에서 바닥에 붙은 전돌 가옥으로 바뀐 월남

무더운 월남은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열기가 엄청나고 뱀과 벌래가 많아 휴식을 취하는 집은 지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렸습니다. 밀림에서 높은 나무를 잘라 긴 기둥을 만들고는 높은 곳에 나무 마루를 설치해 집을 만들고는 사다리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황제와 귀족도 업무 공간은 바닥에 전돌을 깐 중국식을 따라했지만 적어도 개인 공간은 이층짜리 건축물을 만들어 이층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런 월남도 소빙하기가 찾아오자 건물이 바닥으로 푹썩 내려앉았습니다. 땅은 더이상 더운 공간이 아닌 그나마 따뜻한 공간이 되었고 뱀과 벌래는 소빙하기의 추위로 죽거나 숨어들어갔습니다. 추우니 땅의 지열을 받으려고 전돌만 깐 바닥 위에 집을 지었고, 벽돌과 석회 반죽으로 창문과 벽을 칠해 밀폐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더운 월남이 집 안에 화덕을 설치해 불을 떼며 추위를 이겨냈습니다.
-코타츠炬燵가 보급된 일본

일본의 경우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때 이미 이란에서 받은 코르시کرسی를 개량한 코타츠炬燵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닥에 작은 화덕인 이로리囲炉裏를 만들고 숯을 잘게 부셔 만든 잔열 위에 발을 올려놓고 녹이는 정도인 호리코타츠掘り炬燵였습니다. 그마저 보통은 숯불구이 등 요리하는 용도로만 쓰고 난방용으로는 어색했지요. 그러다 소빙하기의 한파가 불자 호리코타츠掘り炬燵로는 난방이 어림없자 이로리囲炉裏 위에 작은 정방형 기둥을 세우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 열기를 가두는 오키코타츠置き炬燵가 등장했습니다. 다행히 소빙하기가 몰아친 에도 막부 江戶幕府는 생산력이 폭발하던 시기였기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재료가 대량 생산되었고, 서민들도 오키코타츠置き炬燵를 집 안에 설치해 추운 겨울을 지냈습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타츠こたつ이지요. 더불어 다다미畳도 대량생산되어 여러 겹 쌓아 두껍게 만든 다다미畳를 집 바닥 전체에 깔아 난방했습니다.
- 엘니뇨 변덕이 만든 인도차이나와 말레이 일대의 변화

소빙하기가 도래하며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 제도 일대에는 더 강한 엘니뇨가 도래했습니다. 평상시라면 서태평양에 비구름이 몰려 막대한 비를 내리며 토양을 적셔야 하는데 엘니뇨가 도래하면 비구름이 서태평양이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에 몰려 비가 내립니다. 그럼 인도차이나와 말레이 제도에 비가 내리지 않아 그 지역은 가뭄이 오는 것이죠. 소빙하기 때는 엘니뇨가 강해져 몇년 째 비가 내리지 않아 이 일대에 극심한 가뭄을 유발했습니다. 골 때리는 건 몇달에서 몇년 째 가뭄이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폭우가 예고도 없이 쏟아져 모든 것이 휩쓸리는 홍수가 발생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홍수로 죽거나 다치고 세상은 더더욱 흉흉해졌지요.

이는 풍부한 물이 찬 운하를 이용해 물자를 수송하며 경제를 유지하던 크메르 제국에게 치명타였습니다. 거대한 석조 신전을 세우고 수운으로 물자를 공급하며 건축물을 유지 보수했는데 운하가 마르자 물자 수송이 어려워졌고 거대한 신전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더 비극인 것은 운하가 막히다 어느 날 갑자기 내린 폭우로 터져 석조 건축물을 덮치며 모래더미에 파묻히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대하고 무거운 석조 건축물은 유지는 어렵고 어쩌다 터지는 폭우에 엉망진창이 되니 자연스럽게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사원 수 만큼 크메르 제국의 행정력이 떨어져 수많은 중소 국가들이 난립하게 되었습니다.

몇년 째 비가 안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확 쏟아져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일이 반복되자 인도차이나와 말레이 제도 국가들은 무거운 석조 건축물을 버리고 가벼운 목조 건축물을 만들고는 지면에서 높이 띄워 홍수에도 떠밀려가지 않게 했습니다. 고상가옥에서 지면으로 내려간 월남 북부의 건축물과 달리 인도차이나와 말레이 일대 건축물은 지면에서 고상가옥으로 바뀌었지요. 혹자는 홍수가 와도 상대적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는 강이나 바다에 집을 세운 수상가옥에 살며 폭풍우가 와도 문제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 약해진 몬순으로 가뭄과 한파를 겪은 이슬람권

인도, 이란, 중앙아시아, 아랍,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는 소빙하기 때 약해진 몬순 기후로 인한 극심한 가뭄을 겪었습니다. 본디 몬순 기후는 여름에 인도양 바다에 있는 막대한 수분을 인도 아대륙과 중국 남부로 보내고, 그 영향으로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는 건조한 기후를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소빙하기 때 뜨거운 몬순 기후가 약해져 아래로 내려가며 인도와 중국 남부에는 심각한 가뭄이 오고, 아라비아와 이란에 있는 고기압은 더 강해져 이전보다 더 뜨거워졌습니다. 때문에 인도, 이란, 중앙아시아, 아라비아, 동아프리카 전체가 극심한 가뭄과 뜨거운 더위에 노출되었지요. 이에 이들은 더위와 갈증에 타 죽지 않기 위해 수분을 어떻게든 저장하는 건축 양식을 만들어냈습니다.
-대리석에서 사암으로 바뀐 무굴 제국 건축

소빙하기 전 인도의 무굴 제국은 막대한 부를 자랑하며 대리석으로 궁전과 무덤, 모스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아우랑제브 황제의 폭정과 소빙하기를 겪으며 생산량은 급감하고 이에 따라 무굴 제국의 경제력은 추락했습니다. 결국 무굴 제국은 비싼 대리석 대신 값싼 사암을 중심으로 건축물을 지을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무굴 제국 건축을 보면 흰 대리석에서 갑자기 붉은 사암으로 바뀝니다. 이게 소빙하기의 영향이지요.
-바드기르بادگیر로 냉방을 해결한 이란

몬순 기후가 그래도 이란 남부까지 밀고 올라가 습기를 받을 수 있던 이란은 소빙하기 때 찬 대륙 기단이 몬순 기후를 저멀리 보내자 극심한 열과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이란이 지하수를 끌어다 쓴 바그 정원باغ의 물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 더더욱 뜨겁고 건조해졌지요. 그래서 이란은 뜨거운 공기를 차갑게 식혀 집 안으로 보내는 체계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바드기르بادگیر입니다. 이 바드기르بادگیر로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 집 안을 시원하게 하고 추운 겨울에 고원에서 채집한 얼음을 여름에도 보관해 사용했지요.

바드기르بادگیر는 뜨거운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가는 성질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높은 기둥을 세우고 구멍을 뚫어 뜨거운 외부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때 중간과 아래에 구멍을 뚫었는데 이러면 대류 현상에 의해 외부에서 온 공기가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로 분리됩니다. 그럼 뜨거운 공기는 위로 가며 집 안의 더운 공기도 함께 밀고 올라가 집 천장으로 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가 사람이 거주하는 지면 근처를 차갑게 식힙니다. 이런 식으로 대류현상으로 시원한 환경을 만들어 소빙하기가 준 뜨거운 열에도 버틸 수 있었지요. 이 바드기르بادگیر는 더 뜨거운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전해져 기본 냉방 시설로 자리잡았습니다.
-두꺼운 벽과 밀집 도시로 추위를 이겨낸 중앙아시아

반면 톈산 산맥과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겨울이면 추운 중앙아시아는 소빙하기 때 더더욱 추워졌습니다. 안그래도 일교차가 큰 사막 지역인데 소빙하기 때문에 밤이면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워졌지요.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황량한 사막이어서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도시에 쭉 살아야 했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건물 벽에 벽돌을 추가해 더 두껍게 만들고, 벽돌을 바깥쪽에 쌓아 이웃 집과의 간격을 좁혔습니다. 이렇게 하면 차가운 외부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고 이웃 집의 온기가 우리 집으로 전해지며 다같이 따뜻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죠.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의 거리 폭이 좁아진 것이 소빙하기 때부터입니다.
-땅 속으로 들어간 북아프리카 집과 중정رياض의 변화

아리비아 반도와 시리아, 레반트 지역은 바드기르بادگیر를 도입해 집 안에 냉방 체계를 구축했지만, 사하라 사막 북부에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이것으로 부족했습니다. 습한 공기가 맥을 못 맞추며 인도양으로 밀려가고 지중해의 습기도 바다에 갇히며 대륙은 쩍쩍 갈라지는 열기와 가뭄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래서 마그레브 지역의 도시는 아예 오아시스 근처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살았습니다. 오아시스가 가둔 물 덕분에 땅 속은 상대적으로 습하고 선선했으며 뜨겁게 달궈진 지표면보다는 시원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부호나 이맘 등 잘 사는 계급은 저택에서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공간인 중전(리아드رياض)를 어떻게든 보호하기 위해 집 구조를 바꿨습니다. 북아프리카는 중세 초기인 후우마위야 칼리파 시대 때부터 사각형 집 안에 중정رياض을 두었는데 소빙하기가 오자 가뭄이 극심해져 수자원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러자 중정رياض 안의 분수가 관상용에서 생존 필수 도구가 되었고 이 중정رياض을 보호하기 위해 집 구조를 바꿨습니다. 외부를 바라보는 창과 문은 작게 만들어 모래바람이 들어오거나 물이 많이 증발하지 않게 막았으며 벽을 안쪽으로 두껍께 쌓아 외부 열과 차단하고 지붕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을 줄여 수분 증발을 어떻게든 줄였지요. 덕분에 저택은 중정رياض을 중심으로 더 좁아진 형태가 되었습니다.
- 지중해에 들이닥친 폭우와 한파가 바꾼 건축물

지중해는 본디 여름에 뜨겁고 겨울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빙하기 때는 이 현상이 더 심해져 여름에는 지중해 바닷물의 수분이 대량 증발해 일대에 가뭄이 찾아왔고, 겨울에는 북유럽에 내려야 할 비를 북극 기단이 지중해로 밀어 지중해에 폭우가 내렸습니다. 또한 지중해도 겨울이면 연안이 얼어붙었지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여름이면 올리브 나무와 포도 나무가 말라 죽고 겨울이면 폭우가 내려 강이 불어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휩쓸렸습니다.
-저지대 목조 건축물에서 고지대 석조 건축물로 바뀐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지중해를 바라보는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일대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중세 때까지만 해도 나무를 많이 쓰는 목조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때는 여름은 뜨겁고 겨울은 촉촉하며 지중해와 맞닿은 절벽 등 지형에 포도와 올리브가 잘 자랐기에 사람들이 지중해 해안가 근처에 몰려 살았지요. 때문에 여름의 열기를 피해 나무 집을 높이 짓는 고상가옥이 발달했습니다. 허나 소빙하기로 여름은 더 뜨겁고 겨울에는 폭우가 내려 지상의 모든 것을 휩쓸어가자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폭우가 내리자 저지대로 물이 모여 마을을 수몰시켰으며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물이 고여 봄에 말라리아가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더불어 겨울이 춥고 습해지자 집 안에 너도나도 벽난로를 설치하고 불을 떼 따뜻하게 하려고 했으나 목조 건축물이어서 열을 쉽게 빼앗겼고 더 많은 불을 떼기 위해 나무를 더 많이 베고 아차하다 집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악순환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겨울이면 수몰될 저지대에서 벗어나 구릉지 위로 도망갔습니다. 구릉지 위는 그래도 여름에는 그나마 시원하고 봄 가을에 창궐하는 말라리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건 보온인데 결국 난방 재료로 쓸 목재가 부족하고 난방이 어렵다는 이유로 목조 건축물을 버리고 돌로 집을 만든 석조 건축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면 불이 나도 불을 끄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또한 겨울에 많이 내리는 눈과 비를 흘려보내기 위해 지붕도 경사가 심해졌습니다. 이전에는 아라비아처럼 평평한 지붕이었다 소빙하기 이후 지붕이 ㅅ 모양으로 바뀌었지요. 그래서 지금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에 가면 언덕 위에 돌로 만든 집이 옹기종기 있습니다. 그게 소빙하기 영향입니다.
-여름에는 위, 겨울에는 아래에서 생활한 오스만 제국

소빙하기 당시 발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각 지역의 문화를 존중했기에 각 문화가 살아있었지요. 덕분에 소빙하기 때 지역 환경에 맞춰 유연한 변화가 가능했습니다. 소빙하기 이전 발칸 지역 사람들은 목조 건축물을 지어 살았습니다만, 소빙하기가 오자 목조 건축물은 이층으로 보내고 일층에 석조 건축물을 지어 합쳤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여름에는 땅 위로 뜬 이층 목조 건축물에서 시원하게 생활하다 겨울이면 따뜻한 지열이 올라오는 일층으로 내려가 벽난로를 떼며 방 안을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석조 건축물은 겨울에 온기를 가두는 보온 역할도 했고 각종 산적이 날뛰는 소빙하기 당시에 집을 보호하는 요새 역할도 했지요. 이를 그리스에서는 아르콘티코αρχοντικό, 세르비아에서는 찰다크Čardak, 알바니아에서는 쿨라Kula라고 불렀습니다.

재미있게도 오스만 제국의 우등 민족인 튀르크인들이 사는 소아시아 반도에서도 똑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석조 건축물만 있던 소아시아는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다 못해 이층에 목조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일층을 겨울 방이라는 뜻의 크슈릭Kışlık, 이층을 여름 방이라는 뜻의 야즈륵Yazlık으로 부르며 구분했습니다.

또한 소빙하기 이전에는 집 가운데에 하야트حيات라는 중정을 만들어 여름에 시원한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허나 소빙하기가 도래하며 여름에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겨울에는 매서운 폭우와 습하고 추운 공기가 집 안을 덮치자 하야트حيات 위에 지붕을 달아 밀폐하고 중정을 방으로 만드는 소파صوفة 양식으로 변화했습니다. 개방형에서 밀폐형으로 변화한 것이지요.
- 굴뚝과 화로가 발달한 유럽 북부

지구에서 가장 풍랑이 쎄고 거친 북해와 그린란드라는 냉기가 흐르는 유럽 북부는 소빙하기의 변화를 가장 직통으로 받은 지역입니다. 여러 기록화로도 템스강을 비롯한 여러 강이 꽝꽝 얼어붙어 사람들이 강 위에서 연회를 여는 등의 모습이 보이지요. 어째 다른 지역보다 소빙하기 변화에 무덤덤한 모습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흑사병 등 전염병이 창궐하고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지옥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살아남은 사람은 생존을 위해 건물을 바꾸었습니다.

소빙하기가 오기 전에는 집에 화로를 둘 뿐 강한 난방 시설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빙하기라는 직격타를 바로 맞자 생존을 위해 집집마다 큰 난로를 설치해 센 불을 피워 집 안을 따뜻하게 하고 굴뚝을 세워 이산화탄소를 바깥으로 내보내며 난방을 해결했습니다.
-이중 창과 카켈로펜Kachelofen으로 난방을 해결한 독일과 체코, 폴란드

북해의 한기와 발트해의 한기, 그리고 저 너머 시베리아 기단의 한기 세가지 한기를 동시에 맞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지역은 한기에 대비해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유리 창을 이중으로 겹치면 단열 효과가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되어 이중 창을 도입했지요. 그리고 집 구석에 거대한 세라믹 타일 난로인 카켈로펜Kachelofen을 만들어 열 전도율이 높은 도자기를 통해 집안 공기를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목재 부족으로 벽돌 건축으로 변한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본디 프랑스를 중심으로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서부 라인강 일대, 영국은 일 층은 벽돌로 쌓고 그 위를 목재 기둥에 벽면을 지푸라기와 진흙을 섞어 바르는 하프 팀버Half-timbered 건축 양식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단단한 일층 위로 가볍고 경쾌한 높은 목조 건축물이 세워졌지요. 이것 만으로도 더운 여름과 우중충한 겨울을 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소빙하기가 찾아오며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가벼운 목조 건축물은 소빙하기의 칼바람을 막지 못했고 어떻게든 살려고 땔감을 무리하게 때다가 집에 불이 붙어 옆집은 물론 마을 단위로 홀라당 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또한 이걸 복구하면서 동시에 땔감을 만들려고 벌목을 무리하게 하다보니 나무가 없어졌습니다. 이 현상을 여러 차례 겪고 난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그냥 건물 전체를 벽돌로 만드는 걸로 바뀌었지요. 그래서 소빙하기 이후 벽돌 건축물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급경사로 바뀐 스칸디나비아 반도 가옥

한편 북극과 맞닿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소빙하기 때 엄청난 양의 폭설을 직격타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견디기 위해 지붕 경사가 급격해졌으며 눈의 하중을 버티기 위해 서까래와 기둥 두께가 굵어지고 튼튼해졌습니다. 또한 지붕도 이끼를 덮어 충격을 분산하거나 튼튼하게 만들어 집이 눈의 하중에 폭삭 무너지지 않게 했습니다. 동시에 벽 사이에 이끼와 진흙, 동물 가죽을 발라 바람 한 줌도 들어오지 않게 하는 공법이 완성되었습니다.
-페치카Печь가 발달하고 세니Сени가 추가된 러시아

소빙하기가 찾아오기 이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의 집은 굴뚝이 없는 목조 주택이었습니다. 강인한 슬라브인은 이 정도 추위에 그냥 나뭇집으로 살며 버텼던 것이죠. 하지만 소빙하기가 찾아와 북극과 시베리아에서 살인 추위가 연타로 닥치자 슬라브인도 살기 위해 집을 뜯어 고쳤습니다. 먼저 바뀐 건 페치카Печь였습니다. 페치카Печь라는 난로는 작고 단순한 취사 도구였으나 소빙하기 때 집의 1/3을 차지하는 거대한 난방 기구가 되었습니다. 페치카Печь는 벽돌과 진흙으로 만들어 열 전도율이 높아 불을 피워 취사를 하면서 물을 끓여 홍차를 마실 수 있고, 벽면에 기대 등을 따뜻하게 하거나 위로 올라가 뜨끈한 구들장 위에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와 중국 북부에서 사용하던 쪽구들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지요.

또한 단열 작용을 위해 집 바깥 정문과 집 안 사이에 창고 겸 완충 지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에 세니Сени로 추운 폭풍이 부는 밖에서 정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면 아직은 서늘한 세니Сени가 나오고, 세니Сени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페치카Печь로 뜨뜻하게 데워진 방이 나오는 형태였습니다. 세니Сени를 둬 페치카Печь로 데운 방 온기를 외부로 빼앗기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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