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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식주衣食住

[의식주衣食住 : 의복과 장신구] 내의와 속곳

by 롱카이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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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온과 풍채를 위해 입은 내의內衣

다양한 목적으로 입던 내의
다양한 목적으로 입던 내의

지금 현대에는 가벼우면서 보온이나 통기가 잘 통하는 옷감이 기본이라 사람들이 옷 한두벌만 입고 다니지만, 옷이 거칠고 지금보다 더 추웠던 옛날에는 보온을 위해서라도 여러 벌의 옷을 껴 입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면 겉옷이 땀에 젖는 것을 방지하고자 일부러 얇은 내의內衣를 덧입어 땀을 흡수하게 했지요. 또한 옷 자체가 귀해 좋은 옷이 곧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부유한 지배층은 일부러 여러 벌의 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내의內衣 중에서도 민감한 피부에 가장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속곳은 위생의 목적으로 입었고요.
 
 
 

  • 남성의 내의內衣와 속곳

활동량이 많은 남성은 내의가 발달하지 않았다
활동량이 많은 남성은 내의가 발달하지 않았다

활동량이 기본적으로 많은 남성의 경우, 신체 노출 터부 정도가 여성에 비해 심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일반 백정의 경우, 상의탈의에 무릎이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그보다 체면을 살려야 했던 귀족과 황실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는 것은 당시 관습 상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내의內衣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지요. 사실상 남성 백정은 내의內衣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모시로 만든 속적삼
모시로 만든 속적삼

그럼에도 귀족들은 부를 과시하고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내의內衣를 챙겨입었지요. 남성은 상의로 외의外衣로 사용하던 백저포白紵布보다 살짝 짧은 적삼赤衫을 내의內衣로 입었습니다. 적삼赤衫은 여름에는 가볍고 시원한 모시, 겨울에는 따뜻한 비단으로 만든 것을 즐겨 입었습니다. 여름에는 적삼赤衫 위에 더 넓고 촘촘한 적삼赤衫을 입어 속적삼과 겉적삼 두 벌로 시원하게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단갈 (잠방이)
단갈 (잠방이)

바지의 경우 반바지인 잠방이를 주로 입었습니다. 한자로는 단갈短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일반 백정은 농사를 지을 때 옷이 뻘의 물에 젖는 것을 방지하고자 잠방이를 외의外衣로 입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일이 없는 귀족은 봄가을과 겨울에 보온을 위해 잠방이를 바지 안에 껴 입는 내의內衣로 활용했고요. 잠방이는 적당히 편리하면서 통풍이 잘 되어서 백정들은 하의下衣 이 옷만 입기도 했으며, 귀족은 속곳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기마 시 허벅지 쓸림을 방지하기 위한 속곳으로 입던 궁고
기마 시 허벅지 쓸림을 방지하기 위한 속곳으로 입던 궁고

또한 말을 타고 다니며 활을 쏘던 고구려高句麗 시절부터 있던 남자 속곳으로 대구고大口袴와 궁고窮袴가 있습니다. 얇고 가벼운 이 바지는 말을 탈 때 허벅지가 말의 피부와 자주 접촉해 쓸리는 일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옷으로, 대구고大口袴는 바지 통이 넓고 궁고窮袴는 바지 통이 다리만 쏙 빠져나갈 수 있게 좁은 속바지입니다. 이 바지는 고려高麗 때 군인이나 귀족들이 즐겨 입은 옷으로,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속곳으로 애용했습니다.

위생과 가림 용도로 사용한 곤
위생과 가림 용도로 사용한 곤

보통은 잠방이를 속곳으로 이용했지만, 여유가 되는 경우 민감한 부위를 가리거나 위생 상의 이유로 곤褌을 속곳으로 입기도 했습니다. 곤褌은 그 일본의 훈도시褌 그거 맞습니다. 진짜 딱 중요한 부위를 감싸 가리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지요. 다만 날이 무덥고 습해 훈도시褌를 속곳으로 쓰던 일본과 달리, 겨울에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이해야 했던 고려는 보온을 위해 잠방이를 속곳으로 주로 이용했습니다.
 
 
 

  • 여성의 내의內衣와 속곳

노출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미적 요소를 중요시 여긴 여성복은 내의가 발달했다
노출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미적 요소를 중요시 여긴 여성복은 내의가 발달했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운동량이 적고 노출에 보수적이며 남성보다 추위를 상대적으로 잘 타는 여성의 경우, 몸에 껴 입는 내의內衣 종류가 많았습니다. 또한 지금도 그렇지만 여성은 햇빛에 피부가 닿지 않아 하얀 피부인 것을 예쁜 것으로 여겼고, 옷에 관심이 많고 옷을 예쁘게 입는 걸 좋아했기에 옷의 태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내의內衣를 풍성하게 입기도 했습니다.

가슴과 허리에 두른 대자
가슴과 허리에 두른 대자

상의上衣의 경우, 여성은 남성과 달리 유방이 있기에 이를 고정하고 가리기 위한 속곳으로 대자帶子를 이용했습니다. 대자帶子는 겨드랑이 바로 아래부터 허리까지 차는 속곳으로 사실상 상체 전체를 감싸 보호하는 옷이었죠. 민감한 부위인 만큼 귀족은 비단이나 명주 등 부드러운 재질을 사용했으며, 백정은 명주나 삼베를 사용했습니다.

속적삼
속적삼

그리고 그 위에 속적삼內赤衫 또는 백저의白紵衣를 입었습니다. 두 옷은 이름은 다르지만 하얗고 가볍게 입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똑같은 옷으로 보통 모시나 명주, 비단으로 만들어 상체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고 땀을 흡수하거나 따뜻하게 유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겉옷을 많이 껴 입었기에 상의上衣는 이 정도로 준비했습니다. 대신에 하의下衣에 내의內衣가 훨씬 많았지요.

다리속곳
다리속곳

위아래 입는 순서를 딱히 구분하지 않은 남성과 달리 여성은 하의下衣부터 꼼꼼하게 입은 뒤 상의上衣를 입었습니다. 하의下衣로는 먼저 다리속곳을 입었습니다. 한자로는 내곤內褌이라고 불린 속곳으로 여성의 하체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옷이었습니다. 그 안에 달거리를 대비한 개짐을 넣기도 했지요. 민감한 부위인 만큼 무명을 재료로 만들어 입었습니다.

속속곳
속속곳

그리고 그 위에 속속곳을 입었습니다. 두 다리 사이가 넉넉하게 있는 속곳으로 남자의 고쟁이와 비슷한 반바지 형태의 속곳입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속속곳은 밑이 터져있어 볼 일을 보기 편리하게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만든 내의內衣인 것이죠.

문릉관고
문릉관고

그 위에는 관고寬袴라는 통이 넓고 넉넉한 속바지를 입었습니다. 치마를 입기 전 치맛자락으로부터 허벅지와 정강이를 보호하고, 치마의 통을 넉넉하게 유지하기 위해 통이 넓은 속바지로 지지하기 위해 착의하는 옷이지요. 고려도경高麗圖經 기록에 따르면 귀족 여성은 고급 비단인 라羅를 짜 만든 문릉관고文綾寬袴를 입는 것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옷에 문文이 들어가면 보통 무늬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문릉관고文綾寬袴는 문양이 세겨진 바지라는 뜻이지요.

단속곳
단속곳

관고寬袴를 입은 뒤에도 아직 안 끝났습니다. 무릎을 살짝 넘는 반바지인 관고寬袴 위로 발목까지 내려가는 긴바지인 단속곳을 입었습니다. 이 옷부터는 사실상 밖으로 노출해도 되는 외의外衣에 해당했지요. 하지만 고려高麗 때 여성이 치마가 아닌 바지만 입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이를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단속곳을 내의內衣로 입었습니다.

송나라는 선군을 겉치마로 활용했지만, 고려는 선군을 속치마로 입었다
송나라는 선군을 겉치마로 활용했지만, 고려는 선군을 속치마로 입었다

이제 치마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치마를 입기 전, 치마의 폭을 넓히기 위해 속치마旋裙로 선군을 입었습니다. 본디 선군旋裙은 중국 송宋의 기녀들이 입던 치마로, 정면에 트임이 있어 말을 타고 다니기 편리한 치마였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를 강조하던 중국은 몸에 딱 달라붙는 선군旋裙을 겉치마로 입었지만, 미적 기준이 다른 고려高麗는 선군旋裙을 달리 활용했습니다.

고려 여인이 속치마로 입던 선군
고려 여인이 속치마로 입던 선군

고려高麗도 미적 기준은 송宋과 비슷한 갸날픈 몸매였지만, 상대적으로 엉덩이의 풍만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치마를 몸에 딱 붙도록 좁게 입지 않고 통을 넉넉하게 부풀려 입었지요. 주름이 져 있어 입으면 부풀려지고, 그렇다고 통이 너무 큰 편도 아니어서 겉치마 옷태를 잡기 위한 속치마로 선군旋裙이 적당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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