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문과 디지털로 본인을 증명하는 현대사회

한국인은 누구나 법정 성인(만 18세)가 되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습니다. 이 때 여러분의 지문을 찍고 주민번호를 발급받지요. 그 외에도 운전면허를 따면 면허증, 해외로 나갈 때 해외 정부에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여권 등이 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여러 종류의 신분증이 있으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분증은 여권이죠. 덕분에 우리는 무슨 행정 업무를 보거나 뭐를 신청할 때 내가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 신분증을 내밉니다. 그럼 다 통과되죠.

이렇게 개인마다 다 다른 지문 등 정보를 포함한 신분증은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아주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거기에 요새는 얼굴 인식 등 빠르면서 정확한 증명 수단이 있지요. 덕분에 누군가 다른 사람 행세하는 사칭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생각해봅시다. 지금이야 지문과 홍채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걸 알아 그걸 개인 신분 증빙 수단으로 이용하고, AI 등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며 신분 인증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데 그게 없는 옛날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증명해야 했을까요? 이제 여기서 골치 아픈 문제가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증명하느냐, 그것도 사칭을 당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이죠.
- 나를 증명하는 훌륭한 수단

이는 특히 권력을 가진 왕과 귀족에게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누군가가 본인을 사칭해 본인이 누리고 있는 권력을 감히 함께 누리려고 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본인을 몰아내고 본인 행세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막 신분이 등장한 초기 문명 단계에서는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초기 왕과 귀족들은 어떻게든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첫번째 단계는 신분 별로 입는 옷을 달리하는 거였습니다. 옷차림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매우 직관적인 수단이었죠. 그래서 한국의 고조선을 비롯해 전세계의 초기 문명은 신분 별로 입는 옷이 달리 해 자기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근데 옷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옷을 훔치거나 뭐 어떻게 구해서 입어도 되잖아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내가 시간을 내서 다른 신분의 옷을 집에서 만들어 입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다른 신분을 가진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때문에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또 다른 수단을 강구했는데, 사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신을 세긴다거나, 귓볼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장신구를 넣는다거나, 머리를 납작하게 만드는 편두를 한다든가 등 신체 변형으로 나는 다른 존재다라는 걸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신라와 가야는 초기에 왕과 귀족들이 편두를 하고, 편두만 쓸 수 있는 왕관을 만들어 왕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곧 고귀한 사람이다라는 것으로 증명하려고 했지요. 허나 이런 신체 변형은 일단 하는 당사자가 힘들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지요.
- 신분 증명 수단을 넘어 권력의 상징으로

그것은 바로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구하지 못하게 아예 옷 자체의 가격을 높여버리는 거였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구하기 힘든 장신구들로 치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옷은 절도를 당할 수도 있기에 옷을 입는 방법을 어렵게 만들어 평민이 훔쳐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모르게 하는 것은 덤이고요. 한마디로 "어디 해볼테면 해봐"를 시전하는 겁니다. 이는 옷을 입는 당사자에게 위해가 가기는 커녕 더 돋보이게 만들고 아랫 신분은 감히 따라할 생각도 못하게 해 확실하게 서열 정리를 하는 훌륭한 수단이었죠.

이건 곧 권력을 시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옷과 장신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입기 어려워 여럿이 달라붙어야 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노비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죠. 때문에 시대가 지날수록 평민과 귀족 사이의 옷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평민은 거센 옷감에 대충 두루는 의복이었다면, 귀족 이상은 고운 비단에 각종 수려한 자수와 장신구들이 추가되었으며 입는 과정이 복잡했습니다.

이렇게 옷이 귄력 자체가 되는 과정은 보통 고대 사회가 안정되는 전성기에 시작해 갈수록 더더욱 복잡 화려해졌습니다. 유럽은 로마 제국 때 황제만 귀한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다로 시작해 중세와 근세로 갈수록 옷이 화려해졌습니다. 검소와 평등을 미덕으로 여기던 이슬람 세계는 처음에는 모든 신분이 단순한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은 옷의 색상으로 종교인은 초록색, 고귀한 신분은 검은색, 그 외는 흰색을 입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압바스 칼리파 시대에 이르자 화려한 페르시아 의복이 부활하며 높은 신분은 비단에 화려한 금과 은 자수를 두른 옷을 입고 모자에는 터키석이나 루비 등 비싼 장식을 추가했습니다. 결국은 종교 신념이 당장 내 신분 증명을 보장하지 않으니 단순히 내 신분을 증명하다 더 나아가 내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 귀족 사회였기에 가장 화려했던 고려 의복

이렇게 옷이 권력의 상징이 되어 화려하던 시기가 나라별로 있습니다. 한국은 고려高麗시대 때 정점을 찍었지요. 왜 조선朝鮮이 아니냐고요? 검소와 절제를 추구하던 유학이 국가이념이었기에 의복이 확 간소화되었습니다. 대신에 행정력을 대폭 강화해 법으로 신분을 증명했지요. 반면 고려高麗는 법과 행정이 약해 신분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황제와 귀족은 최대한 비싼 옷을 입으며 본인이 알아서 신분을 증명했지요. 거기에 마침 동시대 중국은 당唐과 송宋으로 우아하고 화려한 문화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고려高麗는 그 선진 문화를 받아 찬란한 의복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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