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커피를
요새 날이 참 덥습니다. 이제 지구 열난화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더울 겁니다. 이런 더위에는 시원한 커피가 생각이 나죠. 그러면 한국인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명 아아 한잔을 시원하게 마십니다. 하지만 아아는 유독 한국인이 즐기는 커피로 일본도 커피를 즐기지만 보통 아이스 라떼로 즐기고 미국은 애초에 아아를 잘 안 마십니다. 미국인들은 웬만해서는 뜨아를 즐기죠. 반면 한국인들은 얼죽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시베리아 기단이 칼바람을 모는 1월에도 아아를 고집합니다. 이냉치냉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사계절 내내 아아를 즐겨 마시죠. 이러는 이유에 대한 가설로 옛 한국인의 동반자 보리차와 아아가 비슷해 한국인들이 보리차 대신 아아를 즐기게 되는 거라는 가설도 생길 정도로 한국만이 가진 흥미로운 문화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에스프레소의 고향이자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에서 아아는 이미 파문 각인 이단입니다. 아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노 자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되는 절대악이죠. 그럴만도 한게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해 이탈리아를 수복할 때, 이탈리아인들이 주는 에스프레소를 접한 미군들이 에스프레소가 너무 쓰다고 맹물을 부어 먹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이탈리아인에게 아메리카노는 신성한 에스프레소를 더럽힌 신성모독이자 발작버튼이요 선전포고입니다. 그럼 이탈리아인들은 커피를 어떻게 시원하게 즐길까요? 이탈리아 역시 지중해 국가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한 기후여서 분명 땅이 뜨겁고 덥습니다. 그렇기에 일년 내내 뜨거운 에스프레소만 먹지는 않고 차가운 커피를 분명 즐깁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인들이 즐기는 차가운 커피를 알아보고, 이 참에 전세계 국가들의 차가운 커피 문화를 쭉 알아보도록 할게요.
- 알제리에서 유래한 마자그란
19세기 프랑스는 알제리와 전쟁을 벌이며 알제리를 식민지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제리 항구도시인 마자그란مزغران 역시 함락해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마자그란مزغران은 프랑스화되었고 프랑스의 커피가 유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뜨거운 지중해 남부 지역인 마자그란مزغران은 여름이면 땅이 익는 듯한 더위가 심했고 주민들이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갓 내린 에스프레소에 아주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섞어 마셨습니다. 이것이 마자그란Mazagran(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마자그랑)입니다. 마자그란Mazagran은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시작해 포르투갈, 에스파냐, 프랑스로 퍼졌습니다. 특히 마자그란Mazagran은 똑같이 여름에 타는 더위가 심한 포르투갈에서 사랑받았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은 마자그란Mazagran에 각종 과일시럽을 추가로 넣으며 발전시키고 포르투갈 대표 커피로 홍보하는 등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마자그란Mazagran은 여름철 유럽인들이 허용하는 찬 커피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마자그란Mazagran은 프랑스 남부를 넘어 오스트리아로도 넘어갔는데,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큰 각얼음도 넣어 아주 차갑게 먹었습니다. 이는 신성한 커피에 감히 얼음을 넣어 밍밍하게 만드는 만행을 목격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튀르키예의 분노를 샀지만 오스트리아는 무시하고 얼음을 넣는 마자그란Mazagran을 즐기고 있습니다.
- 벨기에에는 없는 프랑스식 차가운 커피, 까페 리에쥬Café Liégeois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추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프랑스도 여름은 덥습니다. 그래서 마자그란Mazagran을 즐기지만 마자그란Mazagran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는 까페 리에쥬Café Liégeois로 벨기에 리에주Liège에서 따 까페 리에쥬Café Liégeois라 하지만 사실 서로 전혀 상관없고 이름만 그런 겁니다. 까페 리에쥬Café Liégeois는 에스프레소 위에 샹티 크림, 아이스크림, 과자를 추가해 먹는 간식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파르페와 비슷합니다.
- 이탈리아에서 여름 커피를 즐기는 법
자고로 커피는 진하게 압축해 마시며 커피의 향을 음미해야한다는 철학이 분명한 이탈리아는 커피에 얼음을 넣고 녹여마시는 만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땅이 타는 더위가 찾아오는 여름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나 리스트레또를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커피의 진한 향을 보존하며 차게 마시는 법을 연구했고 찾았습니다. 이는 커피를 칵테일로 마시는 카페 샤케라또Caffè Shakerato입니다. 리스트레또 2샷에 작은 각얼음 7개를 넣고 설탕과 시럽을 넣어 단 맛을 추가한 뒤 칵테일 셰이커로 섞어 거품을 낸 뒤 칵테일 잔에 따라 마십니다. 그렇게 진한 커피 향을 보존하면서 차게 마시죠.
혹은 젤라또에 대한 자부심을 담아 젤라또에 리스트레또를 세례해 마시는 아포가또Affogato로 즐기기도 합니다. 얼음이 아닌 우유로 만든 젤라또를 넣어 차가운 카페라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탈리아 중에서 가장 최남단에 있어 여름이면 땅이 지옥 땅바닥이 되는 시칠리아는 카페 샤케라또Caffè Shakerato마저 더위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칠리아는 페르시아에서 온 찬 음료인 샤르밧شربت과 이탈리아에서 예로부터 먹는 물에 과일 시럽을 넣어 차게 마시는 음료를 응용해 시원한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에스프레소 샷에 우유를 섞은 뒤 설탕을 넣어 반쯤 얼리고 간 뒤, 그 위에 생크림을 얹어 먹는 그라니따 알 까페Granita al caffè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시원하게 갈린 얼음을 씹어먹는 즐거움으로 더위를 날린다고 합니다.
- 그리스에서 탄생한 프라페Frappé
1957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이탈리아 카페 브랜드인 네슬레는 에서 인스턴스 커피를 꽝꽝 얼린 뒤 통으로 갈아 마시는 프라페Frappé가 등장했습니다. 프라페는 인스턴스 커피를 차갑게 식혀 먹는 것에서 더 발전해 아예 얼려 슬러쉬로 먹는 커피로 누구나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커피였습니다. 그래서 프라페는 곧 전세계 카페로 퍼졌습니다.
-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즐기는 커피, 아이스카페Eiskaffee
이슬람 이교도 놈인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유럽 가톨릭을 수호하고 덤으로 커피라는 선진 문물을 받아들인 오스트리아 역시 커피에 진심인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커피에 별의별 것을 추가해 먹는 것을 즐깁니다. 이런 오스트리아는 더운 여름이 오면 진하게 내려 뜨뜻한 에스프레소를 차가운 우유에 부은 뒤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휘핑 크림을 얹어 즐기는 아이스카페를 좋아합니다. 독일 역시 오스트리아와 같은 게르만 문화권이라 동일한 방식으로 시원한 커피를 즐깁니다.
- 셰이크처럼 즐기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반구이면서 가운데에 큰 사막이 존재해 여름이 북반구보다 더 더운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여름이면 Iced coffee라는 이름의 찬 커피를 즐깁니다. 이 Iced coffee는 타 지역의 냉커피와 좀 다른 것이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고 아이스크림도 넣고 각종 시럽도 넣고 휘핑 크림도 넣어 섞어 마십니다. 아포가토Affogato에 우유를 부어 먹는 느낌입니다.
- 우유잼을 넣어 꾸덕하게 즐기는 까페 엘라도Café helado
남아메리카의 칠레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차가운 커피를 즐깁니다. 칠레는 갓 나온 뜨끈한 에스프레소 샷에 인스턴스 커피를 섞고 바닐라, 시나몬,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우유에 설탕을 듬뿍 넣고 졸인 우유잼)를 맘껏 섞은 뒤 화룡정점으로 아이스크림을 퐁당 빠뜨려 즐깁니다. 기왕 차갑게 마실거 아주 진하게 만들어 먹네요.
- 일본에서 탄생한 콜드브루 커피, 다치코히ダッチ・コーヒー
커피가 매우 늦게 보급된 일본은 그동안 말차만 마시다가 커피의 매력에 반했습니다. 일본은 커피를 유럽 문물의 상징으로 여겼고 탈아입구를 추진하던 일본은 어떻게든 커피를 보급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깊이 연구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내리는 커피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차가운 물로 내리는 콜드브루Cold brew 방식의 커피인 다치코히ダッチ・コーヒー였습니다. 이는 외국에 콜드브루Cold brew 또는 더치커피Dutch coffee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 얼음으로 뒤덮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한국입니다. 한국은 언제나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듬뿍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깁니다. 그래서 한국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가 항상 기본 메뉴이죠.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 차가운 연유로 즐기는 까페쓰어다Cà phê sữa đá
무덥고 후덥지끈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이자 높은 안남산맥이 있어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동안 커피 산지가 된 베트남도 커피를 즐깁니다. 베트남은 일년 내내 무더운 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찬 커피가 발달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커피는 커피에 작은 얼음을 넣어 먹는 까페다Cà phê đá이지만 보통 현지인들이 즐기는 커피는 달달한 연유를 차갑게 식힌 뒤 그 위에 필터를 놓고 뜨거운 커피를 내리는 까페쓰어다Cà phê sữa đá입니다. 베트남 역시 밍밍한 얼음커피보다는 달달한 연유와 섞어 속도 시원하게 하고 더위로 지친 몸도 설탕을 바로 공급해 기력을 회복시키는 까페쓰어다Cà phê sữa đá를 선호합니다.
- 스모키하게 커피를 즐기는 타이의 오량โอเลี้ยง
마찬가지로 후덥지끈한 인도차이나에 속하는 타이도 커피를 차갑게 즐깁니다. 타이가 즐기는 커피는 좀 특이한데, 볶은 커피가루에 흑설탕, 카드멈, 옥수수, 콩, 쌀알, 참깨 씨앗 등 각종 씨를 섞은 뒤 뜨거운 물로 내리고 얼음을 넣어 마십니다. 그래서 상당히 진하고 쓰며 스모키한 향이 올라옵니다. 이는 중국계 화교가 많은 타이 특성상 중국 남부에서 유행한 검은 냉차烏涼를 커피에 응용해 마시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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