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족이 휩쓴 황무지
로마 제국이 위용을 펼치던 시기 유럽 북부는 게르만족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과 게르만족은 갈리아 지역에서 자주 교류하며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며 세력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서기 375년 이후 우랄 산맥 동부에서 훈족이 게르만족이 살던 지역을 공격했습니다. 투창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이 주력부대였던 게르만인들은 말을 타며 화살을 쏴 빠른 기동성으로 장거리 공격을 가하는 훈족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게르만족은 훈족과의 전투에서 매번 패배했고 훈족은 게르만족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진격하던 훈족에 밀린 게르만족은 훈족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판노니아 평원과 유럽 대평원 산림지대에 살던 게르만족은 훈족에게 쫒겼고 훈족을 피해 로마 제국 영토의 경계선인 다뉴브 강과 라인 강을 넘어 로마 제국으로 침공했습니다. 훈족 역시 다뉴브 강과 라인 강을 넘어 로마 제국 영토로 침입했고 로마 제국과 훈족의 대결에서 훈족이 연전연승을 거뒀습니다. 그 사이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 내부 깊숙이 침투해 로마 제국의 도시를 약탈 방화하며 로마 문화를 무너뜨렸습니다. 로마 제국은 훈족과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대혼란에 빠졌고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으며 동로마 제국은 한동안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훈족은 아틸라 사후 스스로 무너졌고 또다른 동방 유목민에 흡수되었습니다. 훈족이 사라진 후 동유럽 평원 남부 지역은 여러 유목민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지역은 모두에게 방치되었고 게르만족이 없는 폴란드 오데르 강과 비스와 강에 새로운 민족이 탄생했습니다.
- 동유럽 평원의 새로운 민족
게르만족이 사라지고 남은 빈 숲에 슬라브족이 등장했습니다. 슬라브족은 폴란드 지역의 수많은 강이 흐르는 평원에 자리를 잡았고 목책으로 그들의 구역을 정해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등장한 슬라브족에게 주변 환경은 가혹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발트해는 이미 바이킹족이 지배자로 자리잡았고 카르파티아 산맥 인근은 잔혹한 유목민들이 피의 정치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카르파티아 산맥 인근의 유목민들은 필요할 시 슬라브족 촌락을 기습공격해 수많은 슬라브족을 노예로 끌고 갔으며 바이킹족은 폴란드 지역의 강을 따라 내려가 슬라브족을 공격하고 약탈했습니다. 슬라브족은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 이주했고 슬라브족은 폴란드 일대에서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슬라브족들은 폴란드 평원에서 출발해 숲이 있는 곳으로 숨어들었고 숲은 그들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 숲이 전해주는 이야기
슬라브족은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사방으로 이주했고 서로 분리되었습니다. 이는 이들이 하나로 뭉쳐 하나의 거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슬라브족은 문자를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라브족은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구전하는 것 외에 전할 방법이 없었고 짧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문자가 없는 그들에게 길고 방대한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는 외워서 말로 전하기 힘든 이야기로 외면받았고 민담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슬라브 신화의 절대 다수를 이뤘습니다.
슬라브족 구성원들은 부족을 지키고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신들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던 신들은 거대한 신이 아니라 정령으로 그들은 정령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슬라브 신화는 특이적으로 물을 매우 중시했고 물과 관련된 정령이 많습니다. 슬라브 신화에서 물의 정령들은 대부분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이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는 숲에 살던 슬라브인들에게 숲의 물은 자칫 잘못하면 익사하기 쉬운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슬라브족은 물의 정령을 믿었고 또한 나무에 대해서도 특별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슬라브족은 게르만족(노르드족)처럼 세계를 거대한 나무인 세계수로 보았고 나무의 정령 레시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 외에도 슬라브족은 보이는 모든 사물과 생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고 슬라브 신화 속 초월적 존재는 작은 정령들이었습니다.
- 기독교 문자로 기록된 신화
슬라브족은 동유럽 평원 지대에 거주하며 비잔티움 제국과 자주 교류했습니다. 슬라브족을 괴롭힌 바이킹족과 남유럽 유목민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취를 감췄고 다뉴브 강 북부 지역은 슬라브족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슬라브족은 부족 내에서 종교제의로 그들의 결속력을 다져갔고 정령에 대한 믿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정령들로는 세상의 움직임을 통일되게 설명할 수 없었고 슬라브 신화를 믿던 이들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남부 비잔티움 제국에서 왔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종주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은 북방의 이민족들을 교화시켜 비잔티움 제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정교회 교회는 슬라브족의 땅으로 선교활동을 수행했고 전능하신 유일신을 강조한 기독교는 슬라브 세계에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성 메토디우스와 성 키릴로스 형제는 슬라브족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키릴문자를 만들어 그들에게 성경과 지식을 전파하며 슬라브 기독교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등 신앙인 기독교가 슬라브 세계에 스며들자 슬라브 신화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습니다.
슬라브 신화는 기독교의 확장에 종적을 감췄지만 슬라브 신화에서 비롯된 미술은 슬라브 세계의 기독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일부 선교사들이 슬라브 신화를 기록했으며 조각상 등 유물을 남겨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제정 러시아 시절과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슬라브 신화 복원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 현대인들은 일부 복원된 슬라브 신화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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