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하늘의 별을 - 경서
https://www.youtube.com/watch?v=LCBsfLaJl-A
-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탄도미사일을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집중하고 있으며 지나친 남북 군비경쟁은 한반도에 전쟁을 부를 것이라 생각해 박정희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Nike Hercules 미사일을 역설계해 대한민국 독자 기술력으로 탄도탄을 개발하는 백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백곰 사업은 중국, 소련, 북한에게 예민한 사업이었기에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을 압박하며 백곰 계획을 한정했습니다. 1979년 대한민국과 미국은 한미 미사일 지침을 맺어 대한민국은 탄두 중량이 500kg 이하이며 사거리가 180km 이내인 로켓만 개발할 수 있고 그 대가로 미국의 핵우산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자 전두환 대통령은 백곰 사업을 백지화했습니다. 하지만 1983년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후 전두환 대통령은 북한을 압박할 무기가 없음을 깨닫고 백곰 사업을 현무 사업으로 변경해 추진했고, 1986년 현무-1을 개발하며 대한민국도 로켓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 우주에 눈을 돌린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휴전 중인 국가로 초기에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로켓을 개발했습니다. 1989 대전광역시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설립되었고 KAIST 등 대학교에서 우주 개발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가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관측 및 과학 실험을 위해 우주에 눈을 돌렸고 1992년 영국의 Surrey Satellite Technology에서 개발한 인공위성에 아마추어 무선 중계기를 단 우리별 1호를 Ariane 4 로켓으로 발사했습니다. 이후 1993년 KAIST에서 독자 기술로 우리별 2호 관측위성을 개발해 프랑스의 Ariane 4 로켓으로 우주로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한국통신(현 KT)가 50주년 기념으로 통신위성을 개발해 우주로 발사했습니다. 그 위성이 무궁화 1호로 미국의 Delta 2 로켓에 탑재되어 우주로 발사되었습니다. 이어 무궁화 2호와 무궁화 3호도 발사되며 한국만의 독자적인 통신 인프라도 구축했습니다.
이후 1999년 한반도 지형과 해양을 정밀 관측하기 위해 아리랑 1호를 미국과 함께 개발해 미국 Taurus 발사체에 실어 우주로 보냈습니다. 아리랑 1호는 다목적 실용 위성으로 한반도에 대한 자세한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세계적인 수준의 망원경을 탑재한 아리랑 2호를 러시아 로콧 발사체Рокот로 발사해 지구와 한반도를 더 선명한 고화질 화면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20세기 끝무렵부터 우주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 한국 만의 발사체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수차례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대한민국 독자 위성 인프라를 구축해갔습니다. 하지만 위성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위성을 우주로 보낼 발사체가 필요했고 발사체가 없는 대한민국은 해외에 절대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한미 미사일 지침으로 로켓 개발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북한은 로켓 기술을 발전시켰고 남한과 일본을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남한은 로켓 개발의 한계가 점점 완화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1993년 KSR-I 과학로켓과 1997년 KSR-II 중형과학로켓을 발사하며 고체연료 로켓 기술을 개발해왔습니다. 하지만 당장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체연료 로켓은 여전히 한미 미사일 지침으로 제약이 있어 남한은 액체연료 로켓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200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액체연료 추진인 KRS-III 로켓을 발사하며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 나로호로 시작한 한국 우주 개발
1999년 대한민국은 국가우주개발중장기 계획을 밝히며 대한민국도 우주개발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로켓 기술력이 아직 부족한 나라였기에 러시아와 힘을 합쳐 대한민국만의 발사체를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러시아의 발사체 개발 기업 흐루니체프 기업Хруничева이 손을 잡아 나로호를 준비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인공위성, 페어링과 2단 고체 킥모터를 담당했고 흐루니체프Хруничева는 1단 액체연료 추진체를 담당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나로호를 KSLV -I 즉 한국형 발사체 1호로 지정해 연구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와 2010년 나로호 2차 발사를 진행했으나 두 발사는 결함으로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3년 후 2013년 나로호가 다시 한번 발사되었습니다. 나로호 3차 도전은 나로과학위성을 탑재한 후 발사를 준비했습니다.
나로호는 성공적으로 우주로 나아가 궤도에 도달했습니다. 궤도에서 나로호와 나로과학위성이 분리되었고, 나로과학위성은 지구와 성공적으로 통신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기술력으로 인공위성을 우주에 보낸 고무적인 발전이었지만 완전한 독자기술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와 항공우주연구원은 순수 대한민국 기술력으로 우주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순수 대한민국 기술력으로 쏘아올린 누리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민간 기업은 순수 로켓 엔진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이들이 준비한 순수 한국형 발사체 KSLV-II는 누리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18년 누리호 로켓 엔진의 성능을 시험하는 누리호 시험발사체가 발사되어 성공적으로 실험 완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로켓 엔진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누리호에 탑재할 위성들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누리호의 위성은 우주 현상을 측정하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4대가 큐브위성으로 탑재되어 우주로 나아가는 도요샛 4기, 기타 3기의 인공위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해당 위성들은 큐브 위성으로 한번에 많이 보내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2021년 누리호 1차 시험발사가 진행되었는데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2022년 위성모사체를 탑재한 후 누리호 2차 발사를 진행했고 발사 결과 위성모사체를 성공적으로 목표 지점에 안착시키며 성공했습니다.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1년 뒤인 2023년 누리호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여러 큐브위성을 탑재한 뒤 3차 발사되었습니다.
누리호 3차 발사는 성공적이었고 차세대 소형위성 2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공위성은 목표 궤도에 안착해 지구와 통신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도요샛 3호 다솔 인공위성과 저스택 JAC 인공위성은 통신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누리호 3차 발사는 대한민국이 순수 기술력으로 인공위성과 발사체를 개발해 독자 우주개발에 성공함을 증명한 사건으로 대한민국도 우주개발에 뛰어든 강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문재인 대통령 시기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되며 우주개발의 제약이 풀렸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KSLV라는 이름으로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해 늦었지만 우주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달에 간 다누리
한편 202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달 궤도를 돌며 달을 탐사하는 다누리 인공위성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미국의 Falcon 9 Block 5 로켓에 탑재해 달로 보냈습니다. 다누리 인공위성은 달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달을 돌며 한국으로 달의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습니다.
'기술공학 > 저멀리 우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멀리 우주로: 실용개발] 마스 2020와 주룽호, 화성에서 살 수 있는가 (29) | 2024.12.04 |
---|---|
[저멀리 우주로: 실용개발] 가가냐안, 인도의 유인 우주선 계획 (25) | 2024.12.03 |
[저멀리 우주로: 실용개발] 톈궁, 중국이 설치한 우주정거장 (69) | 2024.11.29 |
[저멀리 우주로: 실용개발] 은하 3호, 북한의 로켓 개발 (35) | 2024.11.28 |
[저멀리 우주로: 실용개발] 사피르, 이란의 저력을 보여준 로켓 (45) | 2024.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