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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공학/저멀리 우주로

[저멀리 우주로: 우주경쟁] 치카다Цикада와 글로나스ГЛОНАСС

by 롱카이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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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노 -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https://www.youtube.com/watch?v=gT6tkYokBDE&list=WL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 키노

 

 

 

  • 인공위성으로 위치를 파악하라

셉샤예비치 발렌틴 세메노비치
셉샤예비치 발렌틴 세메노비치

1957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한창 진행될 때 소련의 과학자인 셉샤예비치 발렌틴 세메노비치 교수는 인공위성을 통해 인간의 3차원 위치를 파악하는 항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군인으로 군인으로서 아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군 위치를 파악해 전투효율을 높이는 법으로 인공위성 항법을 제안했습니다.

인공위성 네개로 수신기 위치를 파악하는 원리
인공위성 네개로 수신기 위치를 파악하는 항법 원리

셉샤예비치 발렌틴 세메노비치 교수가 제안한 항법위성의 원리는 지상 수신기가 보내는 전파를 항법위성이 받아 다시 전파를 보내고 지상 수신기가 인공위성으로 보낸 전파의 시간정보와 인공위성에서 온 전파의 시간정보를 비교해 빛의 이동거리를 계산하고 위성의 좌표값을 계산합니다. 하지만 전파는 일직선 방향이 아닌 원을 그리며 전파되기에 세개의 인공위성이 각각 전파를 받고 보내며 세 위성이 보낸 신호의 교차점을 찾아 수신기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이때 오차를 줄이기 위해 한 위성 역시 추가해 최소 네개의 인공위성으로 수신기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이것이 세메노비치가 제안한 항법위성으로 위치파악하는 원리이며 소련군은 그의 제안을 흥미롭게 바라보았습니다.
 
 
 

  • 치카다 항법위성Цикада

치카타 항법위성
치카다 항법위성

소련군은 세메노비치 교수의 제안을 따라 치카다 항법위성Цикада 4개를 우주로 쏘아올렸습니다. 1967년 치카다 항법위성Цикада 4개가 소련 우주 궤도에 안착했고 소련군은 항법위성 4개로 수신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결과 수신기의 위치를 어느정도 파악했지만 광활한 지구에서 항법위성 4개로는 정확한 위치 파악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파악은 가능했고 항법위성이 많을수록 오차범위가 감소하기에 소련군은 치카다 항법위성Цикада 다음 세대로 수많은 항법위성으로 정확한 위치파악하는 항법체계 구축을 결정했습니다.
 
 
 

  • 글로나스 항법체계ГЛОНАСС

글로나스 계획
글로나스 계획

1976년 소련군은 치카다 항법위성Цикада보다 더 많은 항법위성을 우주에 배치해 소련과 친소국가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항법체계를 구상했습니다. 그 항법체계의 이름은 글로나스 항법체계ГЛОНАСС로 소련이 친소국가들과 공산주의 진영국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글로나스 항법위성
글로나스 항법위성

소련 개발자들은 글로나스 항법위성ГЛОНАСС-M 개발에 나섰습니다. 글로나스 항법위성ГЛОНАСС-M은 우라간 인공위성Ураган이라고도 불렸으며 레세트네브 정보위성국에서 개발을 담당했습니다. 레세트네브 정보위성국은 1982년 10월 12일 첫 글로나스 항법위성ГЛОНАСС-M을 발사하며 글로나스 항법체계 구축을 시작했습니다.

글로나스 항법체계 구축을 위해 발사된 글로나스 항법위성
글로나스 항법체계 구축을 위해 발사된 글로나스 항법위성

레세트네브 정보위성국은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글로나스 항법위성ГЛОНАСС-M 10대를 우주로 보냈습니다. 이 10대의 글로나스 항법위성은 우라간 1 계획Ураган-1으로 분류되었으며 글로나스 항법체계ГЛОНАСС의 첫걸음이었습니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는 우라간 2A 계획Ураган-2A에 따라 9대의 인공위성이 발사되었습니다.
 
 
 

  • 쇠락하는 소련

소련-아프간 전쟁은 소련 쇠락을 부추겼다
소련-아프간 전쟁은 소련 쇠락을 부추겼다

하지만 글로나스 항법체계ГЛОНАСС 구축은 해가 갈수록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1979년 12월 시작된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소련군이 전쟁의 수렁에 빠지며 소련 정부예산이 전쟁으로 빠르게 소모되었고 소련 경제는 저성장에 돌입했습니다. 그래서 글로나스 항법체계ГЛОНАСС 구축에 투입되는 예산은 자꾸만 줄어들었고 레세트네브 정보위성국은 소련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글로나스 항법위성ГЛОНАСС-M 개발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레세트네브 정보위성국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우라간 2Б 발사를 진행했지만 12대 중 6대만 발사에 성공했고 그 뒤 계획은 무산되면서 글로나스 항법체계ГЛОНАСС 구축은 무기한 연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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