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iva Tand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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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에 빠진 인도
1951년 중화인민공화국은 티베트를 합병했으며 명확한 국경을 정하지 않던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되면서 히말라야 지대의 중국-인도 국경이 불명확해졌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인도는 1951년 이후로 작은 국경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설립하며 중국-인도 분쟁은 본격적으로 비화될 뻔했습니다. 하지만 저우언리아가 소극적으로 나서자 인도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마침 1960년대 인도는 소련과 친밀했는데 친미국가인 파키스탄과 반소국가인 중국 사이에 둘러싸인 인도는 중국과 파키스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소련과 관계를 더 돈독히 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10월 21일 인도는 중국에 선전포고하고 침공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한국전쟁과 중소국경분쟁으로 실전경험이 있어 인도의 침공에 대비했고 인도가 침공을 시작하자 바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인도군은 중국군의 공세에 힘없이 당했고 인도는 친하지도 않던 미국에게 중국 폭격을 요청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결국 중국-인도 국경분쟁은 중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고 인도는 중국을 경계했습니다.
그 와중에 1970년 4월 14일 중국이 창정 1호 발사체长征一号로 동팡홍 1호 위성东方红一号을 발사하고 핵무장하자 인도는 중국이 핵공격을 가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게다가 1962년 중국이 둥펑2호 탄도미사일东风-2을 실전배치해 인도 국경지대에도 배치하자 핵폭탄 뿐만 아니라 인도는 중국과 비교하면 미사일 전력에서 압도적으로 열세라고 생각했습니다.
- 압둘 칼람이 이끈 인도 핵개발
이에 인도는 이대로면 중국과 대결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세에 다다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1965년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파키스탄과 전쟁을 일으켜 파키스탄이 친중국가로 돌아서며 중국과 파키스탄이 인도를 포위했고, 1971년 동파키스탄 독립전쟁을 지원해 방글라데시를 건국하며 인도의 포위망을 조금 풀었지만 중국-파키스탄 동맹이 강화되었습니다. 인도는 핵무장 국가인 중국이 인도를 압박하자 핵무장을 진지하게 고려했고 핵확산조약NRT를 어기고 핵개발을 준비했습니다.
1946년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총리는 비핵무장을 원칙으로 하되 인도가 위험에 처하면 핵개발을 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중국-인도 국경분쟁 이후 인도는 핵개발을 고려했습니다. 1962년 인도는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명분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해외로 유학보내 핵개발 기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압둘 칼람이 그 인재 중 한명으로 그는 인도로 귀국해 인도 기술발전에 큰 이바지를 했습니다.
압둘 칼람은 국방연구개발기구DRDO에서 핵폭탄 개발을 진행했고 1974년 5월 15일 석가탄신일에 라자스탄에서 핵폭탄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작전명은 미소짓는 부처로 지하에서 핵폭탄을 폭파하는 핵실험으로 인도는 '미소짓는 부처' 핵실험으로 핵폭탄 보유에 성공했습니다.
- 아리아바타 인공위성
1974년 핵폭탄 보유에 성공한 인도는 이어 인공위성 개발을 준비했습니다. 인도는 이미 1969년에 인도우주국ISRO를 설립하고 인재들을 소련 카푸스틴 야르에 보내 인공위성 기술을 배웠습니다. 1972년 인도 개발자들은 우두피 라마찬드라 라오 화학자를 중심으로 인공위성 재료를 연구했습니다. 인도 개발자들은 1975년 아리아바타 인공위성을 완성했고 1975년 4월 19일 소련 발사체를 이용해 우주로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인도는 아리아바타 인공위성이 성공하자 독자 우주발사체 개발에 도입했습니다.
- 압둘 칼람이 개발한 SLV 발사체
인도우주국ISRO의 발사체 연구소에 배치된 압둘 칼람은 인도만의 발사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압둘 칼람은 해외에서 로켓 공학을 공부하며 로켓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마쳤고 이를 바탕으로 1단 추진 발사체를 개발했습니다. 압둘 칼람 지휘 하에 인도우주국ISRO 개발자들은 Satellite Launch Vehicle 발사체(SLV 발사체)를 개발했고, 여러차례 시험을 가쳐 안전한 발사체인 SLV 3 발사체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로히니 위성을 개발했습니다. 인도우주국ISRO는 로히니 위성을 SLV 발사체에 탑재한 후 1979년 8월 10일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발사에 실패했고 로히니 위성을 개조해 RS-1으로 만든 뒤 1980년 7월 18일에 다시 한번 발사했습니다. 발사는 성공적이었고 로히니 RS-1 위성은 목표 궤도에 안착했습니다.
궤도에 안착한 로히니 RS-1 인공위성Rohini RS-1은 인도우주국ISRO로 궤도 안착에 성공했다는 무선통신을 보냈고 인도는 1980년 중국에 이어 독자 우주개발 기술을 보유한 국가임을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중국은 인도의 우주개발에 놀랐으며 파키스탄은 인도가 핵폭탄과 우주발사체를 보유한 국가로 성장하며 기술격차가 커짐에 위기감을 느끼고 중국과 더 가까이 동맹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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