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이 많지 않은 황후皇后의 복식

황제皇帝는 고려高麗의 주인으로서 많은 기록에 남고, 주례周禮를 따라 옷을 입고 고려사高麗史와 고려도경高麗圖經 등에 의복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습을 유추하기 쉽지요. 근데 황제皇帝의 아내인 황후皇后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록이 너무도 적습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황후皇后의 복식에 대한 묘사는 대략적으로 묘사하면 '어떤 사람들은 고려 왕비는 붉은 색을 소중히 여겨 그림을 수놓지만 고위 관료나 서민의 부인은 감히 그럴 수 없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서긍이 직접 보지 못한 것이고 카더라로 들은 내용이지요. 그래서 황후皇后가 붉은 옷을 즐겨입었을 것이다 말고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말기인 공민왕 때가 되면 왕비王妃 복식이 등장하는데, 이건 황후皇后 복식이 아니라 왕비王妃 복식입니다. 왕王과 왕비王妃로 격하된 이후의 복식은 추후 포스팅에 다룰거에요. 여튼 황후皇后의 복식은 기록이 너무 없어 사실상 상상에 의존합니다. 그래도 여러 기록에서 추적한 것을 바탕으로 그나마 실제와 조금이라도 유사하게 추측해볼 수는 있지요.
- 고계高髻를 기본으로 한 황후皇后 헤어스타일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여인의 공적인 머리 모양 중 가장 기본적인 모양은 가채加髢를 위로 올린 고계高髻였습니다. 고계高髻는 조선 전기朝鮮前期까지 쭉 이어진 머리로 우리가 사극에 많이 보이는 어여머리는 임진왜란 이후에 등장하는 머리입니다. 그렇기에 황후皇后의 머리 모양은 사극에 나오는 어여머리는 아닐 것이란 말이죠.

고계高髻는 이름 자체가 높이 올린 모양이라는 뜻으로 구체적인 모양이야 매우 다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인 송宋이나 요遼, 금金의 황후皇后 머리 모양도 고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중화에서 이미 증명되었지요. 그리고 유럽의 바로크 시대와 로코코 시대 때 귀부인 헤어스타일이 비슷했듯이 헤어스타일이 국제적인 유행이 한바탕 도는 걸 감안하면 고려高麗의 황후皇后도 송宋과 비슷한 고계高髻를 따랐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후기에 그려진 불화들을 보면 왕비王妃의 머리 모양도 고계高髻를 유지하거든요. 원 지배기인지라 황후皇后가 아니라 왕비王妃 신분이 된 것이고 왕비 옷과 황후 옷이 엄연히 다르며, 무엇보다도 몽골 풍습이 유입된 시기인데 그거 가지고 황후皇后 복식을 어떻게 유추하냐 물으면 사실 할 말은 없어요. 근데 그거 말고는 진짜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후기에 그려진 불화가 정확히 맞는 건 아니지만 참고할 가치는 있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 특히 송宋의 고계高髻를 보며 유추해봅시다. 송宋은 검소를 추구한 사대부의 나라로 여성들의 머리 모양도 당唐보다는 수수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양이 줄어들 뿐 여전히 금빛이 번쩍이는 장식과 옥, 진주 등을 치장했거든요. 송宋 궁중 여인들의 머리 모양은 쌍계雙髻 등 고계高髻를 좀 더 응용한 머리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특징이 머리를 위로 땋아 올린 자리에 화려한 장식을 수놓아 띠처럼 두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후皇后 더 높은 계급은 중요한 공적 자리 등에서 고계高髻 전체를 화려하게 감싸는 관을 쓰기도 합니다. 마치 남성이 상투를 가리기 위해 비단으로 상투를 두르고 비녀를 꽂았듯이 여성들도 금과 옥, 진주, 비단으로 장식한 관을 머리에 쓴 뒤 금빛 비녀를 꽂았습니다. 이런 머리는 고려高麗 후기에 그려진 불화에 나오는 왕비王妃들이 하는 헤어스타일과 많이 비슷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김새로 유추하는 것이긴 하지만 신분이 높은 여성일수록 고계高髻 전체를 덮을 정도로 화려한 장식을 추가했더근요.

그런 면에서 어쩌면 옛날에 방영한 드라마 <기황후>에서 묘사한 머리모양이 고려高麗의 황후皇后 머리 모양과 가장 유사하게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옆으로 늘이지 않고 위로 올린 고계高髻에 이마와 고계高髻 사이 경계면을 각종 화려한 장식을 꽂아 치장했으니 말입니다.
- 황후皇后의 옷과 장식

그럼 옷차림은 어땟을까요?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황후皇后의 옷차림은 평민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 향주머니를 많이 차고 적색 수를 놓았다 정도로만 간략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뭐 할 말이 없군요.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대놓고 황후皇后도 평민들처럼 백저포에 노란 치마 입고다닌다고 묘사되어 있어요. 물론 서긍이 직접 그 모습을 본 것 같지는 않지만 일상복은 서긍의 묘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고려高麗는 불교 국가인지라 이론적으로는 평등을 중시한 사회였기에 황후皇后든 백정이든 복식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대신에 높은 신분은 더 비싸고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추가하며 부와 권력을 과시했지요.

그래서 기록과 사회 풍습 정황을 봤을 때 조례 같은 공식적인 의례가 아닌 경우면 황후皇后나 귀부인이나 복식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의례 때 무엇을 입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고요. 귀부인도 구하기 어려운 진귀한 향주머니를 차고 각종 화려한 장식이 더 있었다 수준일 것 같습니다. 비얌 작가님(@sjhsh352)께서 연구 결과와 유구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의 여러 시대의 의복들을 추정하는 그림을 그리시는데 빛의 묘사와 옷의 표현이 참 좋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황후皇后 복식이 비얌 작가님이 그리신 위 그림과 얼추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 송宋의 모습으로 추정하는 황후皇后의 예복禮服

앞서 말했지만, 원지배기 이전 황후皇后의 예복은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기록은 다 공민왕 때 나옵니다. 하지만 고려高麗 전기부터 중기까지 황제皇帝가 요遼와 송宋으로부터 제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황후皇后의 제복도 그 나라들로부터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참 뒤인 공민왕 때부터 조선 전기朝鮮前記까지 왕비복으로 칠적관七翟冠과 청적의靑翟衣를 명明으로부터 받았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이 옷은 명明의 황후皇后가 입는 예복禮服과 비슷한 옷이었고요. 우리가 흔히 아는 조선朝鮮 왕비王妃의 예복禮服은 명明이 멸망하고 청淸이 세워진 이후 조선朝鮮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복식입니다. 명明이 존재할 때 왕비王妃는 칠적관七翟冠에 청적의靑翟衣를 입었어요.

그럼 이걸로 유추할 수 있는 건 고려高麗의 황후皇后는 혼례식婚禮式이나 태묘 제사 등 공적인 자리에 입는 예복禮服으로 요遼, 송宋과 비슷한 옷을 입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송의 예복을 보면 되지요. 송 황후의 예복은 용봉관龍鳳冠과 청적의靑翟衣을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용봉관龍鳳冠은 푸른 비단과 얇은 장식을 꼬아 만들고 진주와 각종 보석을 박아 만든 관으로 용과 봉황, 신선이 구름 위에서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도교 세계관을 표현한 모자입니다. 그리고 양 옆에 보빈博鬢이라는 장식을 추가해 양 옆으로 구슬을 늘어뜨렸습니다. 거기에 푸른 바탕에 꿩이 그려진 적의를 입었지요.

이게 송宋의 예복禮服이었기에 송宋이 고려高麗에 황제皇帝의 제복祭服을 줄 때 황후皇后의 예복禮服도 저런 모습으로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송宋의 황후皇后가 혼례식 등 중요한 예식 때 입은 옷 전체를 복원한 모습입니다. 보시면 조선 전기朝鮮前記의 왕비王妃가 받은 예복禮服과 비슷하지요.

근데 용봉관龍鳳冠의 단점은 너무 무겁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혼례나 제사 정도로 크고 중요한 행사가 아닌 경우에 저런 무거운 걸 쓰고 다니기는 부담스럽죠. 송宋의 황후皇后도 마찬가지여서 가족 행사나 도교 제사 등 좀 더 가벼운 행사에는 가볍고 간단한 단관團冠, 화채관花釵冠, 주관珠冠 등의 관을 장식으로 꾸몄습니다. 고려高麗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위 이미지는 중드 <청평악>의 한 장면인데 저 장식이 고려高麗 불화에 나오는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더군요. 저게 뭔지 명칭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아무래도 <청평악>은 송宋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라 옷차림의 중화 옷입니다. 송宋은 치마인 상裳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려 가슴을 가리고는 쇄골을 드러낸 반면, 고려高麗는 쇄골조차 보이지 않게 꽁꽁 싸멨습니다. 고려高麗가 되게 보수적이어서 손조차 잘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옷을 입었어요. 그래서 제가 AI로 옷차림 모습을 비단으로 만든 백저포白紵布 위에 반비半臂를 입은 모습으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보니 훨씬 고려高麗의 황후皇后같네요.
- 황태자皇太子와 황제皇帝 친척의 옷차림

황제皇帝의 아들이자 차기 후보인 황태자皇太子, 그리고 그의 형제인 황자皇子는 신분 상으로는 엄연히 신하이기 때문에 전각복두展脚幞頭를 쓰고 자색 단령紫色團領을 입었습니다. 또한 제복祭服과 조복朝服을 입을 때 황제皇帝의 것보다 딱 한단계 낮은 관을 착모했습니다. 제사 때 황제皇帝처럼 면류관冕旒冠이나 통천관通天冠을 착모했는데, 각 관의 줄 갯수를 황제皇帝의 것보다 적은 것으로 착모했습니다. 장복章服 역시 황제의 것보다 문양 수를 줄였지요. 대신 허리 장식은 옥대玉帶를 유지해 황실 신분을 확고히 했습니다.

황제皇帝의 형제자매와 친척 등은 군공郡公으로 위치는 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황제皇帝와 같은 옷을 입을 수는 없었지요. 대신 비슷하긴 했습니다. 제사 때 비슷하게 면류관冕旒冠이나 통천관通天冠을 착모했는데, 각 관의 줄 갯수를 황태자皇太子의 것보다 적은 것으로 착모하고 장복章服 역시 문양 수를 줄였지요. 평상시에 황제皇帝를 알현하려고 할 때는 신하 중 계급이 높은 신하의 복식인 전각복두展脚幞頭에 자색 단령紫色團領을 입었습니다. 허리 띠 역시 금대金帶와 은대銀帶를 둘렀는데, 둘은 옥대玉帶보다 계급이 낮은 신분이 차는 허리띠였습니다. 전반적으로 황태자皇太子 아랫 신분임을 나타내는 옷차림을 입은 것이지요.
- 추정하는 공주公主와 종친의 의복

그럼 황후皇后를 제외한 여성의 옷차림은 어땠을까요? 황후皇后 복식조차 모르는데 공주公主 같은 나머지의 복식은 아예 모릅니다. 그저 황후皇后와 비슷하되 좀 더 수수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복禮服으로 적의翟衣를 입었을 것이며, 평상시에는 고계高髻에 각종 화려한 관을 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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