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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천자 황제天子皇帝

[천자 황제天子皇帝 : 고려 황실] 하늘의 아들

by 롱카이 202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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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자

진시황은 황제를 천하를 통치하는 유일자로 정의했다
진시황은 황제를 천하를 통치하는 유일자로 정의했다

고대 한자문화권에서 황제皇帝는 오직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천자天子는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天下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통치자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하天下는 여러 제후국이 통치하는 왕국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진시황은 왕국들을 통일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보다 더 높은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만들었지요.

왕이 다스리는 여러 왕국을 하나로 통일한 자는 황제가 되고 옛 왕들은 제후가 된다
왕이 다스리는 여러 왕국을 하나로 통일한 자는 황제가 되고 옛 왕들은 제후가 된다

진시황이 전국시대의 수많은 왕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개념인 황제皇帝는 진시황 사후 위기를 맞이했지만 다시 부활했습니다. 서초왕 항우는 진晉을 멸망시킨 뒤 중화를 다시 춘추전국시대 때의 여러 국가로 나눠 각 나라에 왕들을 봉했습니다. 즉, 항우는 여러 왕국이 존재하는 천하天下를 원했지요. 하지만 한고조 유방은 큰 뜻을 품었습니다. 천하天下는 여러 왕국이 아닌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낙후된 한漢의 왕이 된 유방은 여러 국가를 흡수하며 항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천하天下를 여러 왕국으로 나누려는 항우와 하나로 통일하려는 유방 간 단판 승부가 벌어졌는데 그게 초한쟁패楚漢争覇이지요.

천하를 통일한 한은 한이라는 천자국 안에 여러 제후국을 두는 군국제를 뒀다
천하를 통일한 한은 한이라는 천자국 안에 여러 제후국을 두는 군국제를 뒀다

이 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하며 한漢은 드넓은 천하天下를 통치하기 위해 한漢을 천자국天子國으로 두고 그 안에 여러 왕이 다스리는 제후국諸侯國을 두는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했습니다. 즉, 지금의 미국처럼 여러 주State에 높은 자치권을 주되 그 주들이 연합한 미국United States 국가를 형성한 형태였지요. 그래서 미국에 주지사와 대통령이 있듯이 천자국天子國 안에 제후국諸侯國을 지배하는 왕王과 천하天下 전체를 통치하는 황제皇帝가 존재하는 형태였습니다.
 
 
 

  • 천하관의 확립과 난립

당태종 이세민은 천가한을 부여받으며 중화를 넘어 세계로 천자국 질서가 확립되었다
당태종 이세민은 천가한을 부여받으며 중화를 넘어 세계로 천자국 질서가 확립되었다

진晉과 한漢에서 천자天子는 오로지 중화 영토 안을 전부 통치하는 절대자를 의미하는 호칭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당唐이 중화 전체를 통일하고 대월大越, 돌궐突厥, 토번吐蕃,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를 정벌해 한자문화권에서 절대강자임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한 북방 민족을 토벌하고 천가한天可汗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으면서 당唐은 중화를 넘어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초강대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실제로도 당唐은 압바스 칼리파국الْخِلَافَة الْعَبَّاسِيَّة, 비잔티움 제국Βυζαντινή Αυτοκρατορία과 더불어 당시에 세계 최강국 중 하나였고요. 그래서 신라新羅와 일본日本 등 주변국은 당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당唐은 이 전성기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를 천자국天子國, 주변국을 제후국諸侯國으로 명명하며 천하관을 확장했습니다.

당이 무너진 틈에 강대국으로 성장한 요가 천자국을 선포하자 고려와 서하, 대월, 일본이 스스로 천자국을 외쳤다
당이 무너진 틈에 강대국으로 성장한 요가 천자국을 선포하자 고려와 서하, 대월은 스스로 천자국을 외쳤다

문제는 절대 강자인 당唐이 붕괴하며 여러 국가들이 천자국天子國을 노렸다는 점이지요. 중화가 당唐이 사라지고 오대십국이라는 난세에 빠진 틈을 타 북방에서 등장한 거란족의 추장 야율야보기는 거란족을 통합한 후 요遼를 세우고 천자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이어 고려高麗가 천자국天子國을 선포하고 대월大越과 서하西夏가 줄줄이 천자국天子國을 선포했지요. 정작 중화는 송宋이 천하통일을 완수한 뒤 뒤늦게 천자국天子國을 외쳤습니다. 그래서 한자문화권에 여러 천자국天子國이 난립했지요.

 

 

 

  • 해동천자海東天子

불화 속 장면, 천자를 상징하는 통천관을 쓰고 자황포를 입었다
불화 속 장면, 천자를 상징하는 통천관을 쓰고 자황포를 입었다

태조 왕건부터 시작해 고려高麗의 황제는 스스로를 해동천자海東天子라고 불렀습니다. 중화 땅의 천자天子를 의식해 중화 기준으로 바다 동쪽에 있는 또 다른 천자天子임을 밝힌 것입니다. 때문에 평상시에 입던 옷도 중화의 황제皇帝가 입던 옷을 동일하게 입으며 고려高麗 땅에서 본인이 황제皇帝임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리고 황제皇帝가 있다면 그 아래에 왕王도 존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려高麗의 황제皇帝인 태조 왕건은 귀순한 신라新羅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왕王으로 봉하고 동경東京(현 경주慶州)를 통치하는 지위를 제공했습니다. 경순왕의 후손은 왕王 지위를 박탈당하긴 했지만 공公과 군君 지위로 유지되며 상류층으로 군림했으며, 중기로 넘어가면 거대한 문벌귀족 세력이 되었지요.

중국과 달리 고려는 황제 친척을 왕이 아닌 공으로 봉했다
중국과 달리 고려는 황제 친척을 왕이 아닌 공으로 봉했다

고려高麗가 천자국天子國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주변에 제후국諸侯國이 있어야 했습니다. 때문에 고려高麗는 탐라耽羅와 여진女眞 부족들을 제후국諸侯國으로 봉하고, 탐라耽羅의 왕王과 여진족 추장들을 왕王으로 임명했습니다. 다만 황제皇帝의 친척들을 왕王으로 봉한 중화와 달리 고려高麗는 중화와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황제皇帝의 친척을 왕王으로 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공公과 후侯 지위를 봉했습니다. 보통 많이 나오는 것이 낙랑군공樂浪郡公, 부여군공扶餘郡公 이런 식으로 옛 국가의 이름을 딴 군공郡公으로 봉했습니다. 그리고 사후에 왕王이나 제왕帝王 지위를 주는 식으로 우대했습니다.

 

 

 

  • 황제皇帝 호칭呼稱과 피휘避諱
  국가 자칭 경칭 3인칭 경축
황제 (皇帝) 천자국 (天子國) 짐 (朕) 폐하 (陛下) 황상 (皇上) 만세 (萬歲)
왕 (王) 제후국 (諸侯國) 과인 (寡人) 전하 (殿下) 주상 (主上) 천세 (千歲)

황제皇帝는 왕王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였기에 황제皇帝와 왕王이 가진 호칭呼稱이 달랐습니다. 위에 표로 황제皇帝와 왕王의 호칭呼稱의 차이점을 정리했는데, 황제皇帝가 더 위인 것이 드러나지요. 사극에서 황제皇帝와 왕王에게 부르는 호칭呼稱이 가끔 오류가 나는데 위의 것으로 해야 정확합니다. 왕王에게 만세萬歲라고 하면 큰일나지요. 왕王에게는 만세 바로 아랫 단계인 천세千歲라고 합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피휘 문화 때문에 성과 자를 합쳐 불렀다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피휘 문화 때문에 성과 자를 합쳐 불렀다

또한 피휘避諱 문화도 있는데, 한자문화권에만 있는 문화로 상대방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문화로 누구나 상관없이 바로 이름을 부르는데, 옛날에는 본명을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지금도 회사에서 김 부장, 이 과장 등 성씨에 직책을 붙여 부르는 문화가 피휘避諱 문화의 잔재입니다. 유명한 것이 삼국지三國志 인물인데, 예를 들어 제갈량은 성姓이 제갈, 이름名이 량, 자字가 공명입니다. 그래서 본명이 제갈량인데 보통 제갈공명, 혹은 공명 선생 이렇게 부르지요. 조자룡도 본명이 조운인데 자字인 자룡을 붙여 조자룡이라고 부릅니다. 유비의 본명은 유비인데 보통은 황제의 친척이라는 뜻에서 유황숙 이렇게 불렀습니다. 조조나 손권 같이 라이벌이나 유비 이렇게 불렀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경우도 평소에는 안도산 선생 혹은 도산 선생 이렇게 불렀습니다.

피휘 문화는 황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피휘 문화는 황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 피휘避諱는 고대 중국 주周 때부터 시작된 문화로 왕王과 황제皇帝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한 제도에서 출발합니다. 중국은 한漢부터 본격적으로 피휘避諱 문화가 자리잡았으며, 한국은 고려高麗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인의 경우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字나 직책을 성姓에 붙이는 것으로 끝났지만, 왕王과 황제皇帝는 이름을 나타내는 한자를 어디에 적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숙청의 명분으로 황제皇帝가 이름으로 쓰는 한자를 어디 문서에 적었다며 신하를 처형하는 문자의 옥이 발발했고, 한국의 경우 조선 영조 시기에 경종을 추종하는 유생들이 과거 문제에 대놓고 왕王의 이름을 적고는 욕하다가 감옥에 끌려간 일화가 유명합니다.

이순신의 수결(싸인)
이순신의 수결(싸인)

이는 한자문화권에만 있는 현상으로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 존경하는 위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이씨 성을 가진 현대인 중에 감히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랑스럽게 이름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쉽지 않지요. 비슷하게 아버지나 할아버지,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는다하면 좀 이상하게 봅니다. 이게 아직 남아있는 피휘避諱 문화입니다. 요새는 박 차장 이렇게 부르는 일이 줄어들지만 여전히 감히 존경하는 분의 이름을 쓰는 걸 환영하지 않지요.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국
베드로 페트로스 피에트로 페터 표트르 피에르 피터
야곱 이아코보스 자코모 야코프 야코프 자크 제임스
바울 파브로스 파올로 파울 파벨 폴 폴
요한 요한니스 조반니 요하네스 이반 장 존
미카엘 미하일 미켈레 미하엘 마하일 미셸 마이클
가브리엘 가브리일 기브리엘레 가브리일 가브리엘 가브리엘 게이브리얼

반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몽골을 통일한 칭기스칸의 본명인 테무친도 그의 아버지가 감명깊게 싸운 적장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에서는 더 노골적인 것이 베드로Πέτρος, 요한Ιωάννης, 무함마드مُحَمَّد, 알리علي 등 종교적으로 참된 인물의 이름이 아주 흔하지요.

  아랍어 튀르크어 페르시아어 우르드어 말레이어 스와힐리어
무함마드 무함마드 메흐메트 모함마드 무하마드 무하마드 무하마디
알리 알리 알리 알리 알리 알리 알리
후세인 후사인 휘세인 호세인 후세인 후신 후세이니
요셉 유수프 위수프 유소프 유수프 유숩 유슈프
가브리엘 지브릴 제브라일 제브라일 지브라일 지브릴 지브리리

그래서 유럽과 중동에 가면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농담삼아 러시아 길거리에서 이반을 외치면 절반이 뒤돌아보고 사우디에서 무함마드를 외치면 모두가 뒤돌아본다는 말이 있지요. 여성 이름으로 마리아는 기독교 세계에서는 길에 치이는 이름입니다. 이렇게 성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그의 이름을 본인 이름으로 사용하는 일이 많아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는 본명 뒤에 이름을 엄청나게 많이 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반 4세는 이반 치띄리 바실례예비치Ива́н IV Васи́льевич라고 부르며 n세라는 표현이 기독교 세계에서 매우 많지요. 또한 바실례예비치Васи́льевич라는 뜻은 바실리Васи́ль라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영어권에서 잭슨Jackson이 잭Jack의 아들이라는 뜻인 것과 동일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치자인 빈 살만 왕세자의 전체 이름은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محمد بن سلمان بن عبد العزيز آل سعود로 알 사우드آل سعود 가문의 압둘아지즈عبد العزيز라는 사람의 혈통인 살만سلمان 왕의 아들 무함마드محمد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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