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의 말씀을 해석한 훈고학訓詁學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활약한 춘추전국시대는 한자 서체가 아직 완성되기 전의 시기였습니다. 소위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이라고 불리는 원시 서체는 형태도 일정하지 않아 지역 별로 조금씩 달라 다른 지역에서 읽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 한문을 하나로 합치는 건 천하를 통일한 진秦 시기였지요. 때문에 공맹孔孟의 뜻이 적힌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도 다 저런 원시 서체로 적혀 있었지요. 물론 저런 원시 서체로 적혀 있다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는 유학자들이 뜻을 구전으로 전했기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허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유학자들의 간언을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유학 경전을 불태우고 유생을 매장해버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벌이며 공맹孔孟의 뜻을 전할 길이 끊겼습니다. 정확한 의미를 이해한 유학자들은 굴에 매장되어 목숨을 잃었고 막 유학을 배운 이나 목숨을 아낀 자들은 입을 다물고 유학을 버리며 유학儒學의 뜻이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암암리에 살아남은 유학자들이 구전이나 암호 같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뜻을 물려줬지만 정확하지 않았지요.

유학儒學에 대한 탄압은 진시황이 죽고 나서 몇십년이 지난 뒤 한고제 유방이 한漢을 건국하며 중단되었습니다. 유방은 유학자들을 경멸하고 틈만 나면 두들겨 팬 괄괄한 사람이었으나 천하를 통일하고 유학儒學을 배운 뒤에는 유학儒學을 한漢 통치 이념으로 인정했습니다. 이후 한 무제 등 한漢의 천자는 유학儒學을 장려해 유학자들의 세상이 되었지요. 문제는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유학 경전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단이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것은 춘추전국시대 때 여러 곳에 흩어진 글자도 모를 금문金文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가장 유학에 해박한 박사博士를 중심으로 옛 유학 경전을 찾고 어려운 글자를 해석해 뜻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것이 훈고학訓詁學입니다.
- 이해에서 암기로 변절된 훈고학訓詁學

허나 한漢은 200년의 치세 후에 그 유명한 위진남북조시대라는 중국사에서 가장 막장인 혼세에 빠졌습니다.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혼세기에는 훈고학訓詁學을 찬란하게 꽃피우지 못했지요. 몇백년 간 이어진 분열과 혼란을 수隨가 진압하고 당唐 시기에 접어들며 훈고학訓詁學은 정점을 맞이했습니다. 당 태종의 명으로 공영달 등 유학자는 그동안 연구하며 밝혀낸 수많은 유학 경전을 하나로 집대성했습니다. 그것이 오경정의五經正義로 국가에서 공인한 유학 경전이었습니다. 문제는 당唐 조정은 오경정의五經正義 만을 유학 경전으로 인정했기에 다른 경전을 읽고 과거科擧를 볼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당唐 시기의 과거科擧는 오직 오경정의五經正義에서만 출제되었습니다. 시험 문제로 오경정의五經正義의 문구를 주고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만을 제시했기에, 과거科擧를 준비해는 유생은 오경정의五經正義의 문장과 뜻을 달달 외워야 했습니다. 수많은 시험 문제가 출제되어 더더욱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야 했던 당唐 후기에는 말 그대로 사소한 글자 하나도 빠짐없이 달달 외우고 뜻도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적어야 급제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즉, 유학儒學의 참 뜻을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에서 심히 벗어나 그저 외워 시험을 통과하고 마는 것으로 변절되었지요. 이는 당唐의 학자들도 제기한 훈고학訓詁學의 문제였습니다. 특히 안사의 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당唐 치세가 급격히 기울자 그저 단어만 외우고 유학의 참된 뜻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훈고학訓詁學으로 이런 난세가 일어나는 것을 방치했다는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단어가 아닌 뜻을 이해하자는 고문운동古文運動이 벌어지며 다시 성인의 참된 뜻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 형이상학적 탐구를 품은 유학儒學

안사의 난으로 당唐이 급격히 붕괴하고 짧은 오대십국시대를 지나 송宋이 천하를 평정하자 유학儒學에 대한 고찰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송宋은 문치주의文治主義와 삼교합일三敎合一을 표창하며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불교佛敎를 후원한 당唐과 달리 중화 고유의 철학인 유학儒學과 도교道敎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지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자 유학자들도 훈고학訓詁學의 병폐를 버리고 성인의 참된 뜻을 이해하는 유학儒學을 복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당唐에서 송宋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훈고학訓詁學의 경직된 보수성에 지친 수많은 유학자들이 불교佛敎나 도교道敎를 더 가까이하는 일이 흔해졌기에 유학자들도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명망이 높은 유학자들은 유학儒學, 불교佛敎, 도교道敎를 하나로 합친 삼교합일三敎合一 이념 하에 불교佛敎의 핵심 사상인 공空과 도교道敎의 핵심 사상인 무無를 유학儒學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즉, 그저 정치적 방법론만을 연구하고 실천한 유학儒學이 불교佛敎와 도교道敎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받아들여 방법론에서 철학으로 발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입니다.
-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북송北宋의 유학자들은 유학儒學 중 형이상학적 현상을 탐구하는 도학道學 분야를 만들고 이에 심취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연구 끝애 주돈이는 불교佛敎의 공空과 도교道敎의 무無를 합쳐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개념을 완성하고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이를 설명했습니다. 먼저 주돈이는 만물은 불변하는 것이 아닌 순리에 따라 흐르는 무상無常이기에 붙잡으려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불교佛敎의 공空 사상과 모든 것은 무無에서 시작되었으며 무無로 되돌아간다는 도교道敎의 무無 사상을 같은 것으로 봤습니다. 이를 무극無極이라고 말하고 주역周易의 태극太極과 합쳐 무극無極은 태극太極과 같다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외쳤지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은 음양陰陽 이론을 응용한 개념으로, 우주의 근원은 소리도 형체도 없는 무극無極이지만 동시에 무궁무진한 질서와 생명력을 가진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즉,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듯이 아무것도 없는 무극無極이 있다면 모든 것이 있는 태극太極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주는 태극太極이 움직이면 양陽이 되고 태극太極이 고요해지면 음陰이 되며, 이 음양陰陽의 조화에 따라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오행五行을 낳고 이 오행五行끼리 화합하며 만물이 순환하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이 가장 조화롭게 이어진 존재를 인간으로 봤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태극太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기반한 선善을 행하는 것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순리를 따르는 것으로 봤습니다. 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이론은 도교道敎의 무극無極에 유학儒學의 태극太極을 합쳐 불교佛敎의 무상無常을 설명한 것이지요. 이런 설명은 왜 주역周易의 태극太極을 무극無極과 무상無常하고 연결하냐라는 당대의 비판도 받긴 했지만 형이상학적 설명을 명쾌하게 한 이론이었기에 유학자들과 도사는 물론 일부 승려도 동의했습니다.
- 남송南宋에서 꽃을 피운 성리학性理學

금金에게 화베이華北를 빼앗기고 장난江南으로 밀려난 남송南宋은 유학儒學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특히 남송南宋 시기에는 주희라는 천재가 나타나 유학儒學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탐독하며 그의 설명의 빈칸을 스스로 탐구하며 채워갔습니다. 이 때 육구언과 주희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두고 주륙논쟁을 펼쳤는데 이 논쟁의 결과가 유학儒學이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육구언은 도교道敎에서 쓰는 용어인 무극無極을 제외해도 우주의 순리를 설명할 수 있으니 무극無極을 빼 유학儒學을 도교道敎로 오염시키지 말야한다고 주장했고, 주자는 무극無極이 있어야 태극太極이 존재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둘의 논쟁은 수신修身 방법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육구연은 복잡한 우주론을 생각할 필요 없이 내 마음을 곧 우주이므로 본인 마음을 잘 수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주희는 외부 사물과 경전을 철저히 공부해 내면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수양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육구연의 방법론을 내면을 바라보는 심학心學(후대 명나라 시기에 양명학陽明學으로 발전), 주희의 방법론을 이치를 깨우치는 성리학性理學으로 구분했습니다.

남송南宋의 유학자들은 만물의 흐름을 탐구해 이해하고 이를 수신修身에 응용한다는 성리학性理學에 대부분 동의하며 성리학性理學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주희는 무극無極을 형체가 없는 절대적 진리인 이理, 태극太極을 눈에 보이는 만물의 모습인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며 둘의 실체와 상호작용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는 이기론理氣論을 펼쳤습니다. 어찌보면 힌두교 철학 경전인 우파니샤드उपनिषद्에 나오는 우주의 유일한 진리이자 실체인 브라흐만ब्रह्मन् 과, 모든 것이 수도 없이 변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내면의 본질인 아트만आत्मन् 개념과 비슷하지요.

또한 주희는 불문율로 여겨진 오경정의五經正義도 뜯어 고쳤습니다. 오경五經에 사서四書를 추가해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유학儒學 경전을 완성했지요. 주희는 예기禮記를 대학大學과 중용中庸 둘로 나눴습니다. 그래서 사서오경四書五經에서 사서四書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성리학性理學에서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겼지요. 오경五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춘추春秋, 예기禮記로 당唐 시기의 오경정의五經正義 그대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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