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운 세상, 뜨거운 경쟁, 따뜻한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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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과 핵폭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국이 우라늄 유통을 중단하자 미국 정부는 독일국이 핵폭탄을 개발한다고 판단했고 당대 핵물리학자들을 비롯한 과학자들을 모집해 독일국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든다는 맨하튼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1939년 시작된 맨하튼 계획은 1945년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며 끝까지 저항하던 일본제국에 두발을 투하하는 것으로 전세계에 핵폭탄 위력을 알렸습니다. 일본제국은 두 대도시가 핵폭탄으로 초토화되고 이어 소련군이 만주와 사할린으로 진격하며 압박하자 미군과 소련군의 공동공격을 이길 수 없다 판단하고 항복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소련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소련은 미국 핵폭탄을 두려워했습니다. 다행히 소련은 맨하튼 계획에 심어둔 스파이들이 있었고 소련출신 천재 물리학자들을 투입해 1948년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로서 1948년 미국과 소련 모두 핵폭탄 보유국으로 서로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습니다.
- МбP, 로켓으로 해답을 찾다
허나 소련은 공군력이 미국보다 훨씬 열세였으며 전쟁이 난다면 제공권을 장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소련이 폭격기에 핵폭탄을 실어 미국에 투하할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미국은 소련의 핵폭탄을 경계했지만 제공권과 제해권을 잡아 소련 공군 폭격기가 절대 미국 본토로 날아가지 못하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태평양과 북해, 유럽과 일본에서 핵폭탄 탑재 폭격기를 보내 핵공격을 계획했습니다. 이는 소련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습니다. 소련은 미국의 핵타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아이디어가 V2로켓에 핵폭탄을 달아 우주로 날린 후 미국 본토에 투하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소련 군대는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할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V2 로켓을 개량해 핵탑재 로켓을 개발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것이 대륙간탄도유도탄Межконтинентальная баллистическая ракета(МбP) /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ICBM)으로 소련은 МбP제작에 열의를 보였습니다.
운좋게도 소련은 МбP제작이 가능한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 발렌틴 글루시코, 미하일 얀겐,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헬무트 크뢰트룹 등 인재들이 로켓개발에 투입되었고 종국에는 우주로 로켓을 날려버리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한순간에 미소관계는 역전되었고 미국도 경악하며 소련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로켓 개발에 힘썼습니다.
- 생존과 자존심 싸움, 우주경쟁
1957년 처음 우주에 도달한 로켓은 처음에는 핵폭탄을 타격하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허나 생각보다 우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음을 깨달은 미소 양국은 우주개척에 눈을 떴습니다. 소련은 우주를 선점해 미국을 도발했고 미국은 소련의 도발에 반응하며 우주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느새 두 강대국은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국가 자존심을 걸고 우주를 더 개척하는 우주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느새 그들은 핵유도탄이 아닌 사람을 태운 우주선 개발에 혈안이 되었고 안전한 우주선을 만들고 보내기 위해 부수적인 기술개발도 적극 지원했습니다. 미국과 소련 양국의 무제한 지원 덕에 기술은 미친듯이 개발되었고 인류기술은 이전보다 차원이 다른 진보를 이뤘습니다.
또한 기술의 근간이 되는 과학 역시 기술진보에 따른 우주에 대한 탐색과 자연에 대한 관찰이 가능해져 덩달아 빠른 진보를 겪었습니다. 천문학, 물리학, 화학, 심지어 생물학도 우주경쟁에 따른 기초학문 지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우주경쟁은 인류 지식의 확장을 불렀고, 지식 확장은 기술 발달을 가져왔으며 그렇게 탄생한 신기술은 이전과 다른 풍요로운 삶을 선물했습니다.
- 미소 외 나라들의 우주개발
냉전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주도해 우주개발을 선도했지만 다른 나라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핵공격 가능한 로켓 자체가 자국을 보호할 최종병기였고 기술력과 인프라가 잘 구축된 강대국들은 외교전선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국산 로켓 개발에 나섰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는 프랑스로 1965년 디아망 로켓을 개발해 아스테릭스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안착시키며 자체 로켓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미국과 소련 외에도 여러 강대국들은 냉전시기 동안 로켓을 발사하며 자국 국력을 키웠습니다. 다만 미국과 소련처럼 총력전 급으로 투자하며 경쟁할 여유가 되지는 않았기에 조용히 힘을 키워갔습니다.
- 인류의 진보와 공포 속에서 핀 낭만
미국과 소련은 처음에는 서로 우주개발 기술을 두고 경쟁을 벌였으며 지구에서는 외교적 충돌과 대리전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고 둘은 우주개발을 하며 드넓고 광활한 우주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며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이는 미국과 소련이 화합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나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우주개발에 있어 미소화합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며 함께 우주를 정복하고 인류의 힘을 키우는 화합의 장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우주경쟁 말기에도 서로 자존심을 위해 우주개발에 나섰습니다. 허나 이 와중에도 서로 전력을 다한 우주경쟁에 대한 후유증이 심했고 이는 둘이 우주에서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러시아어로 평화를 뜻하는 소련 미르Мир 우주정거장은 소련이 미국의 우주개발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계획한 거대한 우주정거장 계획으로 탄생했지만 냉전 말기 미국과 소련이 함께 이용하며 우주에서 화합하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냉전과 우주경쟁
[저멀리 우주로: 우주경쟁] 편은 냉전시대, 즉 1950년부터 1991년까지 벌어진 우주경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미국과 소련 양국이 자존심을 걸고 우주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이시기 양국이 세계 기술을 선도했기에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주 이야기로 할 것입니다. 주로 우주선 개발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또한 냉전시대 때 다른 나라들의 우주선 개발에 대해서도 다루며 냉전시대를 풍미한 우주경쟁을 최대한 다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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