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 고통을 노래한 러시아 음악

러시아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더욱이 호전적인 전쟁광 이미지가 많이 떠오를 겁니다. 그리고 푸틴 이미지도 많이 생각나겠지요.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실제로 소련 때도 그랬고 소련 해체 후에도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요.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 영화에서 평화를 해치는 빌런 국가로 나오고 그런 이미지가 강하게 남습니다.

그 외에도 나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상남자의 나라로 유명하기도 하죠. 러시아는 실제로 체벌이 남아있고 물리적 폭력을 당연시 여기는 나라에요. 마초 성향이 강해서 강하고 남자다움에 집착하는 편이 강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는 실제로 갈등이 일어나면 일단 몽둥이와 도끼, 망치를 한 손에 들고 대화하고요, 남자끼리 손을 잡는 행위는 절대 못 보며 경멸해요. 때문에 인터넷에서 러시아에 대한 밈이 많이 남아있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이런 이미지가 우스갯소리로 많이 소비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러시아에 가보거나 살아보면 러시아는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깔고 가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북극 바로 아래에 있고 우랄산맥, 유라시아 대평원, 시베리아라는 혹독한 환경을 끼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겨울이 길고 일년 중 몇 달은 하루종일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발생하는 나라에요. 거기에 북극해에서 친히 막대한 수증기를 끌고 와 눈폭탄을 선사하고요.

때문에 러시아는 일년의 절반 이상이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가져요. 극동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대도시들이 있는 우랄 산맥 서쪽도 저게 기본이에요. 러시아에서 위도가 가장 낮은 캅카스 산맥도 하필 험준하고 눈보라가 몰아쳐 눈안개가 가득하기로 악명이 높고요. 크름 반도에 가야 그나마 화사하죠. 위 사진만 봐도 숨이 턱 막히죠. 저런 차분하다 못해 우울증 걸릴 것 같은 분위기가 평생의 60% 이상을 함께합니다. 때문에 러시아의 기본 정서도 우울하지요.

그리고 그 정서가 문학에 그대로 녹아있어요. 러시아의 시, 수필, 소설, 노래 등을 보면 전반적으로 우울해요. 일단 날씨부터가 대놓고 춥고 스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깔고 가죠. 거기에 서늘한 기후는 먹고 살기 힘들고, 너무도 넓은 땅덩어리는 안그래도 부족한 먹거리와 자원을 분배하기 더 힘들게 만들어요. 거기에 드넓은 유라시아 평원은 외부 침입을 받기 너무도 좋아 러시아 정부는 공격당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히스테리에 휩싸여 애꿎은 서민들만 전쟁에 소모되는게 일상이에요. 전쟁 때가 아니어도 강하게 뭉쳐야 한다는 집착을 놓을 수 없는 정부는 서민을 때려잡고 억압하는 것이 기본이고요. 때문에 러시아 문학은 '힘들어 뒤지겠다' 정서가 기본입니다. 도입부부터 '안그래도 힘든데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를 대놓고 드러내죠.

이런 특유의 러시아 감성 때문에 알렉산드르 푸시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니콜라이 고골, 이반 투르게네프, 안톤 쳬호프, 막심 고리끼 등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는 문학가들이 대거 탄생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러시아 체제를 비판하다가 정부에 잡혀서 옥살이를 해본 적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우울하고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기 힘들어 현실을 작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글에 몰래 담아 빙빙 돌려 까는(?) 러시아만의 감성이 있어요.
- 카자크의 자장가 | Казачья колыбельная песня (까작챠 까르벨냐 뻬스냐)
https://www.youtube.com/watch?v=XqYO8cfgVjM&t=3s
이런 러시아 정서와 문학은 노래에도 그대로 담겨 있어요. 위 노래는 카자크의 자장가Казачья колыбельная песня라는 러시아 민요인데, 아기에게 들려주는 노래치고는 너무 슬픈 노래이죠. 내용을 생각해보면 자고 있는 예쁜 아이가 크면 전쟁에 끌려가 죽을 거라는 운명에 슬퍼하는 어머니가 노래하는 가사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카자크인들은 유라시아 평원에 살던 유목민족으로 말 위에서 총과 칼을 너무 잘 다뤄 러시아 정부가 자유를 주는 대가로 전쟁에서 가차없이 소모한 민족이거든요. 프랑스와 영어로 코샤크Cossack으로 불린 그 민족이죠. 이들은 농노 제도가 자리잡은 러시아 제국 시절 유일하게 농노로 지배받지 않고 자유민으로 살았어요. 대신 그 대가로 전쟁이 일어나면 성인 남성들은 무조건 징발되어 정예부대에 소속되어 선봉에 나섰고, 명예를 얻었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이 죽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체첸 전쟁, 남오세티야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카자크 부대가 선봉 정예부대로 투입되고요.

그런 운명을 가지다 보니 카자크의 자장가가 참 슬프네요. 비단 카자크인 뿐만 아니라 루스인(러시아 주류 민족)을 비롯한 많은 민족이 불렀고 러시아를 넘어 동슬라브 민족의 대표 민요 중 하나가 되었어요. 그리고 민요에서도 묻어나는 이런 정서 덕분인지 최근에 나온 러시아계 노래들도 저런 분위기가 아주 많아요. 그 중 유명하고 저도 좋아하는 노래 몇가지를 함께 보죠.
- 키노Кино́

1980년대 미국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전세계 무대를 휘어잡을 때 소련에는 키노Кино́가 소련 인민들의 마음을 다독였어요. 키노Кино́는 고려인 아버지와 루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초이가 리더이자 보컬로 활동한 소련 밴드로 소련 공산당을 비판한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특히 저 당시에 소련은 소련-아프간 전쟁으로 많은 소련 젊은이와 자본을 소모해가며 국력이 쇠해갔거든요. 이 사실을 소련의 모든 인민이 알았지만 공산당의 언론 탄압으로 말을 못했지요. 그 때 키노Кино́가 담담하게 노래하며 소련 인민의 마음을 다독였답니다.

그리고 키노Кино́ 곡을 보면 전부 다 시詩에요. 빅토르 초이가 작성한 곡으로 문학의 나라 러시아답게 곡도 참 서정적인 시랍니다. 빅토르 초이의 곡은 항상 똑같은 선전 가요가 지배한 소련 음악 흐름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파격적이었어요. 서방의 음악 흐름을 받아들이되 러시아만의 감성으로 한층 성장시켰죠.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동구권에서 사랑받는 세기의 천재였지요. 그의 곡 중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곡 몇가지를 보죠.
-여름이 끝나가 | Кончится лето [깐칫샤 네또]
https://www.youtube.com/watch?v=61PQvtH4LmQ
-변화를 원한다 | Хочу перемен [호쭈 뻬레멘]
https://www.youtube.com/watch?v=YV1Bw0oTMsM
-뻐꾸기 | Кукушка [꾸꾸슈까]
https://www.youtube.com/watch?v=YudaT5V7NBk
-별들은 이곳에 남을 거야 | Звёзды останутся здесь [즈뵤즈드 아스타눗샤 즈뎃]
https://www.youtube.com/watch?v=GzkLV-SArsw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즈베즈다 빠 이몌니 손쩨]
https://www.youtube.com/watch?v=gT6tkYokBDE
-별 | Звезда [즈베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wvzdtCsF68
-혈액형 | Группа Крови [그룻빠 끄로비]
https://www.youtube.com/watch?v=ASRPFiU849g
키노Кино́의 노래들을 들으면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담담하게 이끌고 있죠. 그리고 내용도 대놓고 소련 공산당을 비판하고 소련-아프간 전쟁을 풍자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기타와 피아노의 합장은 엄청난 하모니를 이끌고요. 마지막에 소개한 '혈액형'은 소련 출신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소련 세대가 아닌 러시아 사람들도 혈액형을 지금도 즐겨 부를 정도라고 해요. 안타깝게도 빅토르 초이는 소련 공산당의 집중 감시를 받았고 평생을 생활고에 살다 1990년 28세의 나이에 의문사로 세상을 떠나요.
- 데데떼ДДТ

이 밴드는 소련 시절이던 1980년에 결성된 밴드로 키노Кино́처럼 소련 체제를 비판하고, 21세기에는 푸틴 정권을 비판하며 꾸준히 반체제를 외친 밴드였어요. 다만 키노처럼 그리고 지금은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멤버의 노후로 해체되었지요. 이 밴드도 키노Кино́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공산당에 반대하는 노래를 많이 불렀고, 바르샤바 조약기구ОВД 해체 전 공산국가들을 다니며 노래하는 것이 허용되었어요. 소련 공산당도 못 막은 것이죠. 물론 데데떼ДДТ의 노래는 키노Кино́보다는 우회적인 면도 있긴 했어요.
-쏘지 마시오! | Не стреляй! [네 스뜨레랴이!]
https://www.youtube.com/watch?v=kjQFQlzUhsM&t=38s
-시인 | Поэт [빠에뜨]
https://www.youtube.com/watch?v=4yWthuKdNBY
-나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태어났네 | Рождённый в СССР [라쥐됸니 브 쌰유즈]
https://www.youtube.com/watch?v=3WWaurg6obg
-눈보라 | Метель [메떼르]
https://www.youtube.com/watch?v=I8vHoHEpQnc&t=189s
-태양이 떠오르리 | Солнце взойдёт [깔느체 브쟈이둇]
https://www.youtube.com/watch?v=1WVpGhx8v6c
-2020 | 2020
https://www.youtube.com/watch?v=7dxzJDMjW5A
음악이 전반적으로 좀 거칠지요? 그리고 어떤 곡은 시처럼 함축적이고 서정적이고, 어떤 곡은 그냥 바로 다이렉트로 꽂아버리는 곡도 있지요.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키노Кино́보다는 비판의 강도가 약하긴 합니다. 자조의 느낌이 더 강하고요. 하지만 데데떼ДДТ도 결국은 현 정부를 꾸준히 비판하기 때문에 푸틴 정권의 감시를 받아요. 러시아 예술은 언제나 고통과 억압 속에서 피네요.
- 몰찻 도마Молчат Дома

빅토르 초이가 의문사하며 키노는 해체되지만 키노Кино́의 영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있어요. 그리고 이제는 키노Кино́의 후계자도 나타났죠.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한 벨라루스 밴드 몰찻 도마Молчат Дома는 키노Кино́의 영향을 매우 짙게 받은 신생 밴드에요. 밴드 구성원들이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고요.

몰찻 도마Молчат Дома는 앨범과 뮤직비디오에 신기하게 생긴 흉물들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린다는 특징이 있어요. 다 구소련이나 바르샤바 조약기구ОВД에서 실험적으로 만든 건물이에요. 또한 특유의 밝고 활기참과 우울함이 공존하는 희한한 분위기가 특징이에요.
-요강 | Судно [수드노]
https://www.youtube.com/watch?v=sTOsfgGIE2w
-예보 | Прогноз [쁘락노즈]
https://www.youtube.com/watch?v=JncDBggYG1A
-사람들은 넌더리가 났다 | Люди надоели [쥬디 나도에리]
https://www.youtube.com/watch?v=Df6hce9KX2o
-새장 | Клетка [끌렛까]
https://www.youtube.com/watch?v=c69eHlQrKaY
-밑바닥에는 | На дне [나 즈네]
https://www.youtube.com/watch?v=1R3M1Loj9hw
-꿈 | Сон [쏜]
https://www.youtube.com/watch?v=HykSvuxbmFo
-파도 | волны [볼느]
https://www.youtube.com/watch?v=WhUFytw3b18
전체적으로 가사가 되게 의미심장하고 함축적이지요.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는데 가사는 한참 뒤에 나와요. 그리고 그 긴 전주는 계속 반복되는 전주인데 뭔가 몽환적이죠. 길고 긴 겨울에 마주하는 동유럽만의 우중충한 분위기를 말없이 소리로 담았네요. 이것이 몰찻 도마 Молчат Дома의 특징이에요. 덕분에 현대 전자악기로 1980년대 음악을 재해석한 새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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