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전쟁과 예리코 미사일
1948년 5월 14일 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 중동국가들과 큰 전쟁을 수차례 벌였습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벌어진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승리하며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받았지만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스라엘과 영국,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를 침공했지만 미국과 소련이 함께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를 압박하며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성공했습니다. 제2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승리하고 수에즈 운하를 차지하자 이스라엘은 큰 손실을 봤고 이집트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침공을 준비했기에 이스라엘은 이집트군의 침공을 막을 병기를 준비해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2차 중동전쟁에서 손실을 본 프랑스에 접근해 미사일 공동개발을 건의했고 프랑스가 승낙하며 프랑스-이스라엘 미사일 합작이 이뤄졌습니다. 1963년 프랑스 다쏘 기업과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모여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했습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름은 예리코 미사일יְרִיחוֹ로 1971년부터 작은 이스라엘 영토 전역에 배치해 아랍군이 대규모 침공하면 발사하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 이스라엘 핵무장
동시에 이스라엘은 아랍군이 대규모 침공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이 경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핵무기를 보유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제2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공격하며 조금씩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기에 언제 아랍군과 전면전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국 몰래 독자적인 핵개발을 준비했으며 제2차 중동전쟁에서 큰 손실을 본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 핵무장을 몰래 지원했습니다. 1960년 프랑스는 핵개발한 자료를 이스라엘에 공유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58년부터 시몬 페레스 네게브 원자력 연구센터를 설립해 핵개발을 준비했습니다.
그 와중에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이스라엘은 아랍군의 보복에 대비해 핵무기 개발을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할 시 시리아와 이라크의 소련 진영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한다면 이스라엘과 소련 간에 핵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개발하는지 감시했고 핵개발을 하지 못하게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와중이어서 핵무기 개발을 철저하게 감시할 명분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조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집트군은 절치부심으로 이스라엘군 방어선을 빠르게 돌파했고 시나이 반도를 질주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전차부대로 이집트군의 진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집트군의 대전차미사일 공격에 모두 완파되고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리코 1 미사일יְרִיחוֹ 1에 핵폭탄을 탑재하겠다고 선포했지만 미국이 겨우 말리고 이스라엘을 지원해 핵전쟁은 막았습니다. 하지만 제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에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예리코 미사일יְרִיחוֹ과 샤빗 발사체שביט
제4차 중동전쟁에서 완패한 이스라엘은 이집트 전체를 사정거리에 두어야한다고 생각했고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예리코 1 미사일1 יְרִיחוֹ을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개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86년 이스라엘은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예리코 2 미사일2 יְרִיחוֹ을 개발해 실전배치했습니다. 예리코 2 중거리 미사일2 יְרִיחוֹ은 주변 아랍국 모두를 사정거리에 두었으며 지중해도 사정거리에 배치해 아랍군의 해상봉쇄에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예리코 2 중거리 미사일2 יְרִיחוֹ을 개조해 우주선을 개발해 이스라엘의 위력을 주변국에게 각인시키려고 했습니다. 1983년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우주국סוכנות החלל הישראלית을 설립해 우주선 및 인공위성 개발을 지원했습니다. 이스라엘 우주국은 예리코 2 중거리 미사일2 יְרִיחוֹ 개발에 참여하며 예리코 2 미사일2 יְרִיחוֹ을 개조해 샤빗 2 발사체2 שביט를 개발했습니다. 샤빗 2 발사체2 שבי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RSA-3 발사체와 합작으로 만든 발사체로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발사체 개발이 목적이었습니다.
- 오펙 정찰위성אופק으로 적국을 정찰하라
이스라엘 우주국סוכנות החלל הישראלית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적국을 감시하는 정찰위성을 개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언제든지 다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잘 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1975년 레바논 내전에 개입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일개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에게 대패하고 철수하며 헤즈볼라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헤즈볼라가 1985년 공식적으로 출범하고 이스라엘을 적성국으로 지정하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테러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오펙 1 정찰위성1 אופק을 개발했으며 샤빗 2 발사체2 שביט에 탑재해 1988년 9월 19일 발사했습니다. 오펙 1 정찰위성1 אופק은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을 감시하고 이스라엘군에 정보를 보내는 정찰위성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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