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르다마나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추구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동안 근교에서 또다른 사람이 만물의 지혜를 탐구했습니다. 그는 바르다마나로 크샤트리야क्षत्रिय였습니다. 그는 브라만교 중 니간타 나타풋타의 종파에 귀의해 그 아래에서 고행하며 지혜를 탐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지혜를 얻지 못했고 니간타 나타풋타의 곁을 떠나 스스로 고행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위대한 영웅, 마하비라
30세에 출가한 바르다마나는 12년간 고행을 지속했습니다. 고행하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태도에 집착하기에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달리 바르다마나는 12년간 고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해탈मोक्ष의 경지에 다다라 윤회संसा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42세에 고행 끝에 마침내 해탈मोक्ष의 경지에 다다른 마하비라는 72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겐지스강 근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해탈मोक्ष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쳐 해탈मोक्ष로 자유로워지게 도왔습니다. 마하비라는 스스로를 고행 끝에 지혜를 터득해 사람들을 인도하는 티르탕카라तीर्थंकर 중 24번째이자 마지막 티르탕카라तीर्थंकर로 불렀습니다.
-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해탈मोक्ष에 이르는 길
마하비라가 된 바르다마나는 자이나교를 창시했고 제자들은 그를 따르며 해탈मोक्ष에 이르는 길을 따랐습니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삼라만상은 영혼जीव과 비영혼अजी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영혼जीव은 완전한 믿음, 완전한 지식, 완전한 능력, 완전한 기쁨을 본연의 특성स्वभाव으로 하는 실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혼जीव은 해탈मोक्ष에 이르러 자유로워진 영혼जीव이 있고 그 외의 영혼जीव은 모두 무지로 인해 속박 상태에 있는 영혼जीव이라고 합니다.
마하바라는 무지는 업보कर्म를 낳고 그 업보कर्म를 받아 영혼जीव이 업보कर्म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박당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업보कर्म를 끊어내야 영혼जीव이 업보कर्म로부터 해방되어 해탈मोक्ष에 이른다고 합니다. 업보कर्म의 굴레를 끊는 일은 바른 믿음, 바른 지식, 바른 행동입니다. 특히 생명을 살생하지 않는 아힘사अहिंसा를 업보कर्म를 청산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아 자이나교의 핵심교리가 되었습니다.
자이나교는 아힘사अहिंसा를 매우 중요시 여기며 해탈मोक्ष을 위해서는 도축 뿐만 아니라 농사로 토양의 작은 생물들을 살상하는 것도 금지했으며 입을 천으로 가려 공기 중의 벌레도 살생하지 않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자이나교는 금욕과 육체고행으로 고행정진तपस्을 해야 바른 믿음, 바른 지식, 바른 행동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행정진तपस्을 통해 업보कर्म를 완전히 청산하면 해탈मोक्ष에 이르고 마하바라가 될 수 있습니다. 자이나교는 불교처럼 철저하게 개인이 노력해 해탈मोक्ष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중용합니다.
- 바르다마나 사후 자이나교
해탈मोक्ष에 이르는 법을 공유한 바르다마나는 72세에 금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바르다마나를 따른 제자들은 그의 법을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하지만 바르다마나 생전에도 자이나교를 어떻게 실천하느냐를 두고 제자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갈등의 내용은 자이나교 교리가 아닌 옷을 입느냐 여부였습니다. 바르다마나는 어떤 소득도 얻어서는 안된다며 옷도 입지 않고 나체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나체로 생활하며 일말의 소득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흰옷을 입는 정도는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흰옷을 입고 입과 코를 흰 천으로 가려 공기 중의 벌레를 다치지 않게 했습니다. 또한 바르다마나를 따라 나체로 생활하는 분파는 여성은 남성이 업보कर्म를 지었기에 된 사람이라며 해탈मोक्ष하기 위해서는 일단 다음 생에 남성으로 태어나 고행तपस्해야 해탈मोक्ष한다고 주장한 반면, 흰옷을 허용한 분파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며 여성도 고행तपस्으로 해탈मोक्ष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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